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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랭이질. 쉽게 지으려면 평평하게 가공된 돌을 쓰면 되겠지만 울퉁불퉁한 돌을 따라 기둥을 다듬어 짓는 게 우리네 한옥입니다.
 그랭이질. 쉽게 지으려면 평평하게 가공된 돌을 쓰면 되겠지만 울퉁불퉁한 돌을 따라 기둥을 다듬어 짓는 게 우리네 한옥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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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규모로 건설되고 있는 아파트 공사 현장을 지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한창 공사 중인 현장을 보며 "요즘 아파트들은 콩나물 크듯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사람이 "맞아, 맞아"라며 맞장구를 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무색하게 만드는 곳이 방방곡곡에서 건설되고 있는 아파트 시공현장입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삶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나 어떠한 가치에 대한 견해를, 간결하고도 형상적인 언어 형식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정의되는 게 '속담'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역시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졌겠지만 요즘은 속절없는 구어로 전락한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전답이나 야산이었던 곳이 길게 잡아도 4~5년이면 사람 북적거리는 아파트단지로 변해 있는 걸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퇴계 이황의 선비정신을 기리고 있는 도산서원
 퇴계 이황의 선비정신을 기리고 있는 도산서원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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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이황. 1501년에 태어나 70세가 되는 1570년에 세상을 떠났다.
 퇴계 이황. 1501년에 태어나 70세가 되는 1570년에 세상을 떠났다.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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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세대가 거주하게 되는 대규모 아파트단지, 십수 개 내지 수십 동의 고층건물을 짓는데 3~4년밖에 걸리지 않지만, 퇴계 이황은 단층으로 된 도산서당을 짓는 데 5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퇴계가 도산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한 때가 1557년입니다. 450여 년 전의 일이니 건축 기술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현재와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세월과 기술력 차이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요즘 시대의 셈으로 봤을 때 서당 한 채를 짓는 데 5년이나 걸렸다는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5년이나 걸린 도산서당, 그 이유는?

요즘 세대의 셈으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답들을 책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퇴계가 짓고자 했던 집, 선비의 이상향을 반영해 퇴계가 지은 집이 바로 도산서당입니다.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 표지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 표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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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은 무엇을 얻기 위해 도산서당을 지을 때까지 다섯 차례가 넘도록 터를 옮기고 집을 새로 지었을까? 그가 마침내 지은 도산서당은 과연 어떤 모습의 집이었고 또 이황은 이 집에서 무엇을 했나? 이황이 세상을 뜬 후에 제자들이 세운 도산서원은 도산서당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나? 이런 물음들의 답을 찾아 길을 나서보자."(본문 39쪽)

"지금 남아 있는 도산서당 건물은 마치 흰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선비를 연상시킨다. 벽은 흰 회벽을 바르고 창문은 작고 간단한 살만 가로세로를 이루고 어디 한군데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다."(본문 127쪽)

저자 김동욱은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을 통해 밝히거나 들려줄 이야기를 넌지시 건네고 있습니다. 퇴계가 지으려고 했던 집은 먹고 잠자는 생활만을 위한 거주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화려하고 큰 고대광실도 아니었습니다.

요새 사람들에게 집은 '재산적 가치', 하지만 이황은...

예나 지금이나 내 집을 마련하려면 검토하거나 고려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주거 환경, 교통, 교육 환경 등등. 하지만 요즘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 생각하는 것은 '재산적 가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퇴계가 도산서당을 지으면서 우선한 것은 선비의 이상향이었습니다. 주변이 아름다운 곳에 터를 잡고, 아름다운 주변을 거스르지 않으며 조화를 이루도록 짓고자 했던 이상을 구현한 곳이 바로 도산서당입니다. 터, 기와 한 장, 창살 하나에 까지 선비의 기개와 정신을 쏟아 부으며 지은 곳이 도산서당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황이 생각한 집은 단지 벽으로 감싸고 지붕을 덮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연못을 둔 마당과 샘과 화단과 울타리가 다 갖추어진 곳을 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은 집에 대한 현대인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서양식 건축술에 익숙해져 집은 튼튼하게 벽을 쌓고 비가 새지 않도록 지붕을 덮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황에게 집은 단지 벽과 지붕으로 감싸인 공간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마당과 울타리와 화단까지 갖춘 곳이었다."(본문 139쪽)

 콘크리트로 벽면을 찍어내듯 짓고 있는 요즘 집들과 달리 예날에는 벽돌 한 장 한 장을 만들고 쌓아서 짓습니다.
 콘크리트로 벽면을 찍어내듯 짓고 있는 요즘 집들과 달리 예날에는 벽돌 한 장 한 장을 만들고 쌓아서 짓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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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도시인, 40대를 넘긴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꿈꾸고 있는 노후는 어쩜 전원주택에서의 생활일지도 모릅니다. 채마밭에서 푸성귀를 뜯어 먹으며 사는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전원주택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꿈꾸는 '전원주택'이 딱 이 정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내 집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커다란 주춧돌

'전원주택'이라는 타이틀로 분양되는 요즘의 집들은 획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들이 짓고 있는 집들은 한두 달 사이에 '뚝딱' 시공되기도 하니 이상은커녕 최소한의 욕구조차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인지 의아합니다.

"도산서당은 규모도 크지 않고 세부 장식도 없는 소박한 건물이다. 규모로 친다면 궁궐이나 사찰에 장대한 집이 얼마든지 있고 화려한 치장이나 장식을 자랑하는 건물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산서당은 이런 집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명종이 도산서당이 있는 이곳을 병풍으로 그려 침소에 걸게 한 것은 바로 그 집에서 지내는 주인공을 기리려는 의도다. 건축의 품격은 기둥의 치장이나 날아오를 듯한 지붕의 아름다운 곡선으로 얻어지기보다는 주인의 인품에서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여기에 도산서당의 진정한 건축적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본문 211쪽)

퇴계가 도산서당을 짓는 데 5년이나 걸린 것은 지금보다는 기술력이 떨어졌을 450년 전이기 때문도 아니고 자재가 부족해서도 아닐 것입니다. 마음으로 그리던 집을 설계하고, 선비가 꿈꾸던 이상향을 하나하나 반영시켜가며 짓느라 그 정도의 세월이 걸렸을 겁니다. 당대의 임금까지 감복시킨 선비정신이 그대로 느껴지는 건축물이었기에 그 정도의 세월이 소요됐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들보, 서까래 어느 것 하나 손길이 가지 않는게 없는 게 한옥입니다.
 들보, 서까래 어느 것 하나 손길이 가지 않는게 없는 게 한옥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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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가 도산서당을 지으며 단지 주거공간만으로 생각하고, 재산적 가치만을 셈했다면 제아무리 좋은 자재를 사용하고,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이 지었을지라도 채 100년도 지나지 않아 허물어졌거나 또 다른 재산 가치를 목적으로 부서졌을 겁니다.

도산서당이 450년이 지난 현세까지 성성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자재나 기술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집, 세월의 풍상쯤 가소롭게 넘길 수 있는 선비의 이상형이 주춧돌과 기둥, 서까래와 기와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내 집 마련, 전원주택에서의 노후를 꿈꾸고 있을 사람들에게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는 커다란 힌트가 될 것입니다. 도산서당과 도산서원의 차이, 건축학적인 도산서원은 물론 도산서당에 깃든 퇴계의 이상과 선비정신까지 실감 나게 익히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황과 같은 선비의 이상향은 아닐지라도 내 집을 마련하거나 지을 때 무엇을 꿈꾸고 마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리라 기대됩니다. 내 평생, 자손 후대에까지 대물림될 수 있는 멋진 집을 마련하는 데 꼭 들어가야 할 주춧돌 같은 토대를 찾거나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덧붙이는 글 |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 (김동욱 씀 | 돌베개 | 2012.06 | 1만3500원)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

김동욱 지음, 돌베개(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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