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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그림이었다. 전반 14분 이니에스타는 파브레가스에게 볼을 찔러준다. 정교했다. 파브레가스는 보란 듯이 반대쪽으로 볼을 올렸다. 골문으로 달리던 실바는 머리를 갖다댔다. 그들 만의 완벽한 패스워크였다.

지난 2일 세계 축구팬의 새벽잠을 빼앗았던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유럽축구선수권(EURO 2012) 결승전. 세계 축구팬은 90분 동안 스페인의 환상적인 패싱 축구에 푹 빠졌다. 그들은 그렇게 축구 역사를 새롭게 썼다. 유로2008년과 월드컵에 이은 3연속 메이저대회 우승... 펠레가 있던 브라질도, 베켄바우워가 있던 독일도 이루지 못했던 역사였다.

축구 전문가들은 이들의 호흡을 '예술의 경지'로까지 표현한다. 과거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던 축구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세윤 전 국가대표팀 기술분석관은 지난 2일 <경향신문> 관전평에서 "경기 내내 팀 전체가 볼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적었다.

스페인 축구가 강한 이유, "볼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니까"

현재 FC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유니폼에는 카타르 재단의 로고가 박혀 있다.
 현재 FC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유니폼에는 카타르 재단의 로고가 박혀 있다.
ⓒ FC바르셀로나·카타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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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는 스페인 유명 구단인 FC 바르셀로나의 전임 감독이었던 과르디올라의 축구관(觀)을 소개했다.

"축구는 볼을 소유하는 게임이 아니라 공유하는 게임이다.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소유와 공유는 분명히 다르며, 볼을 동료들과 공유하고 생각을 동료들과 공유하는 것이 축구다."

이번 대회 우승 주역들은 FC 바르셀로나 구단 소속이다. 이니에스타부터 파브레가스, 부츠케츠, 피케, 사비 등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바르셀로나 팀의 경기가 그렇다. 동료들간의 볼을 공유하며, 환상적인 패싱 기술을 보인다. 특히 볼을 공유하기 위해선 동료들 간의 신뢰가 생명이다. 서로 믿고 따르지 않으면, 볼을 맡길 수 없다. '예술적인' 팀플레이가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구단이 이처럼 강한 이유는 따로 있다. 다른 세계 유명 구단과 다른 지배구조 탓이다. 1899년 11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에서 만들어진 축구 클럽의 주인은 바로 시민들이다. 17만3000여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돈을 내 만들어진 협동조합이다. 구단주도 이들이 직접 뽑는다. 대기업 총수가 구단주를 임명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 회원들이 회장(구단주)을 뽑고, 이사회를 구성한다. 모든 결정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총회에서 결정한다.

FC 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의 유니폼에 기업 광고를 싣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신 국제 자선단체인 유니세프(Unicef)의 이름을 새긴다. 2011년 시즌부터는 비영리재단인 카타르 재단 이름이 함께 들어가 있다. 클럽의 재정적인 적자를 만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연대와 신뢰의 힘,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위기의 대안

'빨간도시'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도시 전체에 붉은 벽돌의 건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중세 르네상스양식의 건물들을 가지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그리고, 19세기이후 좌파 정치 성향을 보이면서, 자본주의 보다 여전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빨간도시'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도시 전체에 붉은 벽돌의 건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중세 르네상스양식의 건물들을 가지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그리고, 19세기이후 좌파 정치 성향을 보이면서, 자본주의 보다 여전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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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각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사무국장은 "FC 바르셀로나가 강한 이유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지배구조를 가진 협동조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사무국장은 "협동조합의 바탕은 조합원의 참여와 신뢰"라며 "팀 선수들도 오래전부터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운동을 해왔고, 경기에서 볼을 공유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르셀로나 축구 클럽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협동조합은 많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협동조합 모델이 부각되고 있다. 한마디로 고장 난 자본주의 대안적 경제모델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은 "경제위기 이후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모델이 바로 협동조합"이라며 "해고 없는 따뜻한 경제, 그러면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협동조합 기업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이어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주(州)는 사람 사이의 신뢰를 통해 나오는 협동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라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관련기사 보러가기).

사회적 경제의 권위자인 볼로냐대학의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경제학) 역시 <오마이뉴스> 와 만난 자리에서 "과거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성장의 원리였던 '경쟁'이 이제는 뒤로 밀려나고 있다"며 "오늘날 경제발전의 키워드는 '협동'의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최근 경제위기속에 정부 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조차도 해고 등 힘겨운 과정을 겪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협동조합 기업들은 여전히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일자리까지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협동조합 기업이 새로운 기업모델로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협동조합기본법 12월 시행... "경제민주화의 대안"

이탈리아 로마냐 주 볼로냐 시내에 위치한 아파트. 주택 수요자들의 협동조합인 '무리'에서 공급하는 집은 최대 20%까지 값이 저렴해 이 지역의 집값 안정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2010년 8월 5일 촬영>
 이탈리아 로마냐 주 볼로냐 시내에 위치한 아파트. 주택 수요자들의 협동조합인 '무리'에서 공급하는 집은 최대 20%까지 값이 저렴해 이 지역의 집값 안정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2010년 8월 5일 촬영>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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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유럽이나 미국 등의 경우 거의 모든 경제분야에서 협동조합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돼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약 25만 개에 달하는 협동조합이 있다. 조합원만 1억6300만 명에 달하고, 540만 개에 달하는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300대 협동조합의 총 매출이 무려 1조600억 달러에 이른다. 세계 9위 경제규모 나라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을 정도다. 유엔은 올해를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8가지 종류의 협동조합만 법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가운데 협동조합 이름을 쓰고 있는 곳이 농업협동조합(농협), 수산업협동조합(수협), 신용협동조합(신협),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 엽연초생산협동조합, 중소기업협동조합 등이다. 협동조합 이름을 쓰지 않지만, 협동조합으로 간주되는 곳이 산림조합과 새마을금고다.

이들 8개 협동조합은 모두 각각 개별적인 법률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생협을 제외한 대부분은 정부차원의 지원과 통제 등으로 제대로 된 협동조합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올 12월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국내서도 처음으로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5명 이상이면 누구나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을 만들수 있다.

정원각 사무국장은 "유럽 등 선진국처럼 금융 분야까지 협동조합을 만들수 없는 한계는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주택, 보건 등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이 생겨날 수 있다. 그만큼 일자리 창출 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협동조합의 활성화가 올 대통령 선거의 이슈로 떠오른 경제민주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법제연구원 강현철 박사는 6일 열린 협동조합 심포지엄에서 "협동조합과 같은 민주적인 운영조직을 육성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제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협동조합은 시장에서 소외되거나 제외될 수 있는 경제 주체들의 시장 참여를 돕고, 시장의 단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며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독과점의 패해를 고쳐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7일 서울광장에서 협동조합의 날 기념식을 갖는다. 이어 8일까지 협동조합 관련 심포지엄과 각종 체험프로그램을 연다.


태그:#협동조합, #볼로냐, #FC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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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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