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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에게 인두세를 징수하고, 이후 이들을 이민 대상 민족에서 제외했던 것과 관련, 우리는 전적으로 사과(full apology)한다."

2006년 6월 22일, 캐나다 스티븐 하퍼 총리는 하원에서 6명의 인두세 납부자들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캐나다 정부에 의해 부과됐던 인두세에 대해 사과하고, 광둥어(Cantonese)로도 "캐나다는 사과한다(Canada apologizes)"고 덧붙였다.

아울러 캐나다 정부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두세 납부자 중 생존자와 그 배우자들에게 배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하퍼 총리가 의회에서 사과한 중국인 인두세는 태평양철도 공사 종료와 함께 더 이상 중국인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자, 중국인들의 캐나다 이민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1885년 7월 20일 도입한 세금이었다. 새로 입국하는 중국인 1인당 당시 돈 50달러씩을 부과했다. 이후 중국인 인두세는 1900년에 100달러로 인상됐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의 입국은 끊이지 않았다. 1903년부터 인두세가 폐지된 1923년까지 500달러씩 부과하기도 했다.

캐나다의 인두세 정책은 1923년에 폐지됐지만, 연방정부는 그해부터 1947년까지 중국인 이민자를 아예 받지 않았다. 중국인 이외에는 인두세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 정책은 캐나다 정부가 저지른 대표적인 인종차별 정책으로 역사에 남았다. 캐나다의 수치스러운 기록으로 말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죄인가요

젖먹이었던 자넷다
▲ 자넷다 젖먹이었던 자넷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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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아랫니가 두 개밖에 나지 않은 자넷다는 지난 2010년 10월 용인에서 태어났다. 자넷다는 지난 3일 오후 부모를 따라 인도네시아로 출국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출국하면서 16만 원이라는 과태료를 내야 했다. 그나마 일시 납입을 조건으로 4만 원을 감액받은 금액이다. 자넷다가 과태료를 부과받은 이유는 단순히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것밖에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외국인이 국내에서 자녀를 출산했을 경우에는 30일 이내에 출입국으로부터 체류 자격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출입국관리법 94조에 의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내국인의 경우에는 출생신고 기간은 외국인과 동일하나 위반할 경우 5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시 말해 미등록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은 자국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한 후, 그 서류를 갖고 관할지역 출입국관리소에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에 자녀의 출생사실을 신고한다는 것은, 곧 출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진출국을 희망하지 않는 부모일 경우 출생신고를 1개월 이내에 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미등록'이라는 멍에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출국할 때는 등록 신고를 하지 않은 기간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국경을 넘어본 적도 없고, 비자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가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죄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제도는 현대판 인두세가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멍에를 안고 살아야 하는 아이들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자넷다
▲ 자넷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자넷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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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5일, 오바마 대통령은 "어릴 적 부모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온 사람들은 직장을 구하거나 운전면허증을 딸 때, 학교에서 장학금을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불법 이민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 심지어 반에서 수석을 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 나라 말도 할 줄 모르는 나라로 추방된다고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강제 추방은 합리적이지 않고, 앞으로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가해지는 부조리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다.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젊은 미등록자들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미국에 입국해 미등록자가 된 경우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땅에서 태어난 아이마저 미등록으로 규정짓고 있다. 현실의 무게가 더 가혹한 셈이다.

이 아동들은 부모의 체류 자격으로 인해 출생과 더불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의료보험, 탁아, 보육 등 각종 사회 안전망의 혜택에서 철저히 배제되기 때문이다.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혈연에 기초한 국적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 출생했다는 이유로 국적 취득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앞서 가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따라온다. 그러나 이는 무조건 한국 국적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국내에서 출생한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수립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즉 일정 기준에 부합하는 이주아동과 그 부모에 대해 출국 유예 혹은 특별체류허가를 부여하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지난 2006년 8월부터 2008년 2월 말까지 미등록 이주아동과 그 부모에 대해, 부모의 불법체류 자진 신고를 조건으로 '한시적 출국 유예 조치'를 통해 비자를 발급해 줬던 적이 있다.

다른 나라의 사례도 있다. 일본의 경우 '재류특별허가 가이드 라인을 제정해 '개별적인 사안마다 재류를 희망하는 이유, 가족상황 (중략) 인도적인 배려 필요성 등을 감안'한 개별 심사를 통해 체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출국 유예나 특별체류허가가 '국적이나 영주권 부여'로 이어질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논의가 자칫 '미등록자의 정주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체류 자격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최소한 우리나라가 1991년에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른 아동의 기본적인 권리는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다.

정리하자면, 지난 3일 출국한 자넷다와 그의 부모 역시 출국 유예 혹은 특별체류허가를, 나아가 국적이나 영주권을 받아야 하는 게 합당하지 않았을까.

유엔아동권리협약 준수하지 않는 대한민국

돌 잔치
▲ 자넷다 돌 잔치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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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협약당사국으로, 그 협약을 준수할 국제적인 의무가 있고, 정부는 그를 준수하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 협약을 이주노동자 자녀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협약 당사국은 18세 이하의 인종·국적·종교를 초월한 모든 어린이에게 가장 유익한 방향으로 모든 조치, 정책들을 결정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 원칙 아래 어린이는 생존할 권리, 보호받을 권리, 발달할 권리, 참여할 권리의 4가지 기본 권리를 누려야 한다.

생존할 권리에는 주거권과 의료권 등이 포함되는데, 우리나라는 미등록이주노동자 자녀에게 의료 혜택을 주지 않는다. 보호받을 권리에는 각종 차별대우와 착취, 학대와 방임, 가족과의 인위적인 분리, 형법 등의 폐습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데,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현실을 보면, 이들은 출생과 더불어 차별에 노출되고 있다. 또한 발달할 권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국적과 이름을 가질 권리가 특이하다 하겠다.

이는 비록 이주 아동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부모 국적을 보유하고, 모국을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을 갖고 생활할 권리를 갖게 함으로써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보호받을 권리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주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마저도, 이 땅에 사는 이주아동에게 한국식 이름을 붙이는데 너무 익숙하다. 이는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발달할 권리에 대해 무지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와 자기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인 참여할 권리가 있다. 이는 사회가 아동의 의견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대상이 아동의 부모든, 아동이든 간에 이주아동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강제추방을 아동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과감하게 처리해 버린다.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우리나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 당사국이긴 하나, 그 협약을 철저하게 준수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발달한 권리, 국적과 이름을 가질 권리

걸음마를 시작한 자넷다
▲ 자넷다 걸음마를 시작한 자넷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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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아동이나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들은 이주아동의 모국어로 이름을 쓰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는 외국식 이름이 한국인들이 부르기에 어렵다는 이유도 있지만, 한국 아이들과 다른 이름을 사용하다 보면 이주아동이 한국 아이들과 국적이 다르다는 사실이 쉽게 드러나고, 이는 차별의 빌미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주아동의 모국어로 된 이름을 밝힐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의 국적과 이름을 가질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는 아동이 모국에 대한 정체성을 잃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 주라는 말이다. 물론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동들은 그 정체성에 있어서 한국인과 다를 바 없는 경우가 없지 않다. 비록 그럴지라도, 그 뿌리를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자신의 국적과 모국어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하는 것은 아동의 발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미등록 상태인 부모가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주아동은 자신을 노출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호해 준다면, 이주아동도 당당히 자신의 모국어로 이름을 말할 수 있고, 우리는 이주아동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김춘수 시인이 자신의 시 <꽃>에서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이주아동의 이름을 불러줌으로, 서로에게 좀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가 이주아동 보호에 무신경한 이유

부쩍 큰 자넷다
▲ 자넷다 부쩍 큰 자넷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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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이주아동 보호에 무신경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주노동자는 '곧 돌아갈 사람' '정착하지 않을, 혹은 못할 사람'이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우리 정부는 외국인력 정책을 단기순환이라는 원칙을 대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반드시 돌아갈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가족 역시 '정착하지 않을, 혹은 정착하지 못할 존재'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독일이나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게 있다. 이주노동자는 '반드시 돌아갈 사람'이라는 전제가 틀렸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든지 가족을 데려와서 같이 살려 하고, 또한 이주한 국가에서 가족을 구성하며 살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이주노동자 중에는 결혼적령기에 이른 젊은이들이 아주 많다. 이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결혼과 그에 따른 자녀출산과 양육·보육·의료 문제가 당연히 생길 것임을 말해 준다. 우리 사회가 그 문제에 대해 눈 감는다면, 이주아동 보호는 다른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태그:#인두세, #이주노동자, #유엔아동권리협약, #미등록이주노동자, #이주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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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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