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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1년을 맞아 예년에 비해 폭락한 돼지고기 도매가격을 놓고 업계 관계자 및 연구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양측 모두 '구제역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FTA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이들은 FTA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농가 생산성 향상이 가장 급선무라고 입을 모았지만 뾰족한 방법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는 대표적 FTA 대책인 축산시설현대화 사업의 신청 기준이 현실적으로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에 대해서 사실상 기준을 완화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제공하는 돼지도체 육질/육량 등급별 경락가격 자료. 왼쪽이 2011년 6월 29일, 오른쪽이 2012년 6월 29일 돼지 가격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제공하는 돼지도체 육질/육량 등급별 경락가격 자료. 왼쪽이 2011년 6월 29일, 오른쪽이 2012년 6월 29일 돼지 가격이다.
ⓒ 축산물품질평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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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들, "품질 높이고 생산성 높여야 살아남는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29일자 1등급 돼지도체 가격은 kg당 4598원. 1년 전 가격인 6869원에 비해 33% 가까이(2271원) 떨어졌다. 김원태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연구원은 "현재 돼지가격이 예상보다 확실히 낮은 것은 사실"이라며 "지난해 구제역 때문에 돼지가 모자랄 때 무관세로 들여온 물량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수입고기 관세는 냉동이 25%, 냉장이 22.5%. FTA로 인해 관세장벽이 낮아졌지만 지난해 무관세 물량 때문에 FTA 효과를 측정하기는 어렵다는 게 김 연구원의 말이다. 지난해 정부는 물가안정 명목으로 무관세 적용 물량을 포함 37만 톤을 수입했다. 2011년 국내 돼지고기 공급량은 약 94만여 톤이다.

반면 육가공업체인 '아이포크' 김종필 회장은 '구제역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관세철폐' 라는 FTA의 본질적인 면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는 "농가 입장에서 보면 FTA로 가격이 낮아지든 정부가 무관세로 들여와 가격이 낮아지든 가격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면에서는 같다"며 "FTA로 관세가 완전 철폐된 것을 훈련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FTA 때문에 관세가 내려가면 수입고기 가격도 내려간다"며 "최근 대형마트와 식당, 육가공업체에서도 수입고기 비율이 늘고 있는 것은 가격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FTA 영향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이유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의 경우 2010년 5%에 불과하던 수입산 돼지고기 비중이 올해는 37.9%까지 늘었다. 

김 연구원과 김 회장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농가가 환경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유럽연합 쪽에서는 어미돼지 한 마리당 25마리의 새끼를 시장에 출하할 수 있는 반면,, 한국 농가는 15마리 밖에 안 된다"며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구제역 이후 도축되는 국내 돼지들을 보면 예전보다 질이 높다"고 말했다. 구제역 이후 돼지를 물갈이하는 과정에서 국내 양돈농가들이 축사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 그것이 고기 품질로 이어졌다는 게 김 회장의 분석이다. 그는 "농민들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결국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품질 개선 말고는 답이 없다"고 못 박았다.

농협경제연구소에서 3월 31일 발간한 '돼지고기 부위별 소비형태와수출입 현황에 대한 국제비교' 자료 중 '관세인하에 따른 국내산-EU산 삼겹살 가격차이 전망'.
 농협경제연구소에서 3월 31일 발간한 '돼지고기 부위별 소비형태와수출입 현황에 대한 국제비교' 자료 중 '관세인하에 따른 국내산-EU산 삼겹살 가격차이 전망'.
ⓒ 농협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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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농가 지원사업 기준 비현실적이지만 개선 여지는 없어"

2011년 국내 양돈업 생산 규모는 약 5조 6290억 원으로 전체 축산업의 1/3을 차지한다. 그러나 양돈 농가수는 2006년 1만 1300호에서 2011년 5700호로 절반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농 비중은 늘고 소규모 농가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FTA 이후 수입 돼지고기와 가격경쟁이 심해지면 농가 수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지만 양돈농가에서는 정부에게 뾰족한 지원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장 공무원들은 대표적 FTA 지원책인 축사시설 현대화사업의 비현실적인 기준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기준이 변경될 가능성은 낮다는 반응이었다.

축사시설 현대화사업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농장 내 무허가 건물이 있어서는 안 되며 건폐율 위반일 경우 기존 시설을 부셔야 신청이 가능하다. 축사 신축 지원도 불가능하다.

올해 경기도 화성시의 양돈농가 107호 중 이런 조건을 통과해 축사시설 현대화사업 신청이 받아들여진 양돈 농가는 1군데뿐이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농장내에 무허가 건물을 가지고 있어 신청조차 어려운 상황. 화성시 축산과의 김용선 계장은 "생산농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생산성을 늘려 수지를 맞추려고 무허가 축사를 지었을텐데 안타깝지만 기준은 농림부가 정하는 거라 어쩔 수가 없다"고 답했다.

농림부 역시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는 반응이다. 이동민 농림부 축산경영과 주무관은 "기준에 대한 현장의 평가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다"면서 "개선책을 마련 중이지만 법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기준의 핵심으로 꼽히는 무허가 축사에 대해서는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전국 시·군에서 조사한 무허가 축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돼지 사육농가 전체 축사 면적 중 무허가 축사의 비율은 15.9%로 조사됐다.


태그:#FTA, #돼지, #양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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