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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이 지난 29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밀실처리' 논란을 빚고 있는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과 관련, 정부 측에 처리 보류 및 유예를 공식 요구했다고 말하고 있다.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이 지난 29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밀실처리' 논란을 빚고 있는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과 관련, 정부 측에 처리 보류 및 유예를 공식 요구했다고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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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기습 강행 처리하고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해 새누리당의 입장을 내놓았다. 지난 27일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국가 안보를 위한 외국과의 군사협력을 괜한 반일 감정으로 자극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 여론을 '반일 감정'으로 치부했다. 또한 "한일 군사협정을 계기로 한·중 군사협력의 기회도 만들어가고, 이를 통해 동북아 지역의 다자간안보협력도 구체화할 수 있도록 하는 큰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이 협정과는 별도로 독도와 위안부 등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일본의 반성과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하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해 줄 것을 바란다"며 한일 군사협정과 과거사 문제는 별개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28일 황우여 대표 등 지도부가 독도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독도와 위안부 등 한일 과거사 문제와 같이 묶어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러면서 "독도,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비상식적 행위에는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 다짐했다.

이러한 입장은 MB 정부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는 새누리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면, MB 정부의 몰역사적이고 자해적인 대외정책 노선이 유지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그러나 파문이 확산되자 새누리당은 협정 체결 연기를 요청했고,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29일 오후 4시로 예정되었던 서명식을 연기키로 했다.

그러나 협정 체결 자체가 취소된 것이 아니다. 또한, MB 정부는 국회에서 최소한의 보고 절차만 밟고 협정 체결을 강행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29일자 <연합뉴스>가 "여야의 요구에 따라 서명 전에 국회에 먼저 설명키로 했다"고 외교소식통을 인용 보도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자칫 국회 보고 절차가 한일 군사협정에 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는 일본 군국주의의 산물

지난 5월 13일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지난 5월 13일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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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한일 군사협정이 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밀실처리'로 상징되는 민주적 절차의 무시와 더불어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정부 여당의 굴절된 인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데 있다.

또한, 명분이 없고 구체적인 실익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내세우는 것이 바로 막연한 '국익론'이다. 그러나 그 껍질을 벗겨보면 편협한 정파적 이익을 국익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 군사협정 역시 마찬가지다.

먼저 과거사 문제와 군사협정은 결코 별개일 수 없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독도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로 일컬어지는 사안들의 근원은 바로 일본 군국주의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일 군사협정 체결은 일본의 군사대국화 및 우경화의 산물이자 이를 촉진하는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이 이러한 경향을 견제하지는 못할망정 부추기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국가 정체성과 이익 훼손이다.

둘째, 외교의 세계. 특히 한일 특수관계에서 별개란 존재하기 어렵다. 이는 한국 외교부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일부 외교관은 한-미-일 3자 대화에서 한일 군사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독도와 과거사 문제 등에 있어서 전향적인 조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한일 군사협력 강화와 한-미-일 3각 동맹을 강력히 원하던 이명박 대통령의 선호에 막혔다. 그 결과 일본의 경거망동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한국은 수수방관, 아니 군사협정 체결을 통해 이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셋째, 대일 발언권의 약화이다. 실제로 일본은 최근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놓고 우주의 군사적 이용까지 명문화하는 단계까지 가고 있지만, MB 정부와 새누리당은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일 군사협정까지 추진하는 마당에 이를 반대할 근거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한일 군사협정에 담고 있는 의미는 일본 평화헌법에서 금지한 '군대 보유'를 한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다는 것과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지지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군사협정을 통해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도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독도, 위안부, 청구권, 교과서 문제 등 한일 관계 최대 현안에 대해서도 일본의 실질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할 지렛대가 약화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한일 군사협정하면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추진?

29일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열린 '한일 군사협정 체결 철회촉구 민족진영 기자회견'에서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독립유공자유족회, 한민족운동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이명박 정부는 을사오적이 되길 원하는가"라는 현수막을 들고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명박 정부는 을사오적이 되길 원하나" 29일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열린 '한일 군사협정 체결 철회촉구 민족진영 기자회견'에서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독립유공자유족회, 한민족운동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이명박 정부는 을사오적이 되길 원하는가"라는 현수막을 들고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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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황당함은 "(한일 군사협정)을 계기로 한·중 군사협력의 기회도 만들어가고, 이를 통해 동북아 지역의 다자간안보협력도 구체화할 수 있도록 하는 큰 안목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미 "이웃과 친해지기 위해 다른 이웃을 적으로 만들지 말라"며 한일 군사협력 추진에 강한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중국은 한일 군사협력이 결국 한-미, 미-일로 양자화된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 체제를 3각 동맹으로 재편하기 위한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최근 미국의 '아시아 귀환 전략'이 보여주듯, 그 목표 역시 중국 포위·봉쇄에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MB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러한 기류를 차단하는 데 기여하는 지는 못할망정, 한미 전략동맹 추진에 이어 한일 군사협정까지 체결하려 한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와 한-미-일 3각 동맹에 편입되어갈수록 한중 관계의 전략적 위험과 동북아 신냉전의 출현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 바로 한반도와 동북아 지정학의 핵심이라는 점을 애써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9·19 공동성명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추진의 전제조건은 6자회담의 재개 및 활성화이다. 그런데 MB 정부는 임기 초부터 6자회담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고, 이는 한중 관계 악화의 중대 원인이다. 이에 따라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을 추진하는 길은 한일 군사협정이 아니라 6자회담 재개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정치의 선순환을 도모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볼 때, 새누리당이 말하는 "큰 안목"이 도대체 제대로 된 현실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강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에게 '큰 안목'을 요구하기에 앞서 새누리당 스스로가 최소한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 비전에 대한 인식부터 가져야 한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들을 보면, MB를 포함한 대선 캠프 참모들이 미국 대사를 만나 노무현 정부를 맹비난하면서 자신들이 집권하면 한일 관계를 개선해 한-미-일 군사안보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하는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이것이 자신들의 철학인지, 아니면 미국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 국민이 뽑는다는 점이다. 국민 여론과 국익을 저버리고 한일 군사협정을 옹호하는 데 바쁜 새누리당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태그:#한일 군사협정, #이명박,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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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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