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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를 방문한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슬로베이아)이 금속노조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과 연대의 뜻으로 손을 굳게 맞잡고 있다.
▲ '연대의 손' 굳게 잡은 제젝과 쌍용차 지부장 29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를 방문한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슬로베이아)이 금속노조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과 연대의 뜻으로 손을 굳게 맞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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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싸움은 작은 상처여도 꾸준히 아픈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행복한 삶'이란 환상에 갇히지 않고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기에 국제연대가 매우 중요하다. 저를 활용해라. 쌍용차 투쟁에 착취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29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옆 쌍용차 희생자들의 분향소를 방문한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좋은 친구란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러분에게 제가 그런 친구가 되길 바란다"며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연대할 뜻을 밝혔다.

슬로베니아 출신인 지젝은 헤겔과 마르크스, 라캉을 접목해 현실정치와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으로 유명한 철학자다. 그는 연구뿐 아니라 1990년 슬로베니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고, 지난해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현장에서 즉석연설을 하는 등 현실에도 적극 참여해왔다.

지난 24일 한국을 찾은 지젝은 방문 전 '한국의 분단현실을 나타낸다'며 자신이 꼽은 비무장지대(DMZ·26일 방문) 외 "한국에서 꼭 봐야 할 장소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추천받은 곳이 바로 대한문 분향소였다.

'배제된 자'... 쌍용차 노동자들에 지지 뜻 밝히려 대한문 분향소 찾아

지젝의 방한 일정을 조율했던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한국의 정치상황을 잘 보여주는 곳이라 추천했다"며 "쌍용차 노동자들의 싸움은 보통의 노동운동이 아니라 고립된 싸움이며 그들은 '배제된 자'들이라는 설명에 지젝이 '꼭 지지의사를 밝혀 그들의 중요성을 부각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슬라보예 지젝이 대한문앞 쌍용자동차 분향소에서 22명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보며 놀라고 있다.
▲ 쌍용차 22명 합동분향소 보고 놀라는 슬라보예 지젝 슬라보예 지젝이 대한문앞 쌍용자동차 분향소에서 22명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보며 놀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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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쯤 대한문 분향소에 도착한 지젝은 영정 사진 등을 보고 놀라며 "파업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돌아가신 분들도 있느냐"고 물었다. "정리해고로 찾아온 고통 때문에 사망한 22명을 추모하는 곳"이란 김정우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지부장의 설명에 지젝은 "이 분향소 위치가 참 적절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업이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면서 일반인들이 그 의미를 알 수 없도록 '구조조정'이란 중립적인 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문처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이 싸움의 의미를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젝은 이어 "오늘은 (피해자가) 쌍용차 노동자이지만, 내일은 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며 "이 분향소는 쌍용차뿐 아니라 모두를 대표해 싸우는 곳이다, 여러분의 싸움은 대한민국의 혼을 지키고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경찰이 강제로 분향소를 철거하려 했다는 이야기에 "여기를 꼭 지켜야 한다"고 김 지부장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지젝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을 "작지만 꾸준히 아픈 상처"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이 '행복한 삶'이란 환상에 갇히지 않고 사회의 모순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가 바로 대한문 분향소란 뜻이다. 그는 "민주주의는 투표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상"이라며 "당신이 어떻게 일자리에서 대접받는가, 일상에서 자유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나아가 "이것은 전 세계적인 사안이고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며 자신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리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외신들은 한국을 성공한 사회로만 다루지 이런 끔찍한 일(정리해고)이 있었다는 걸 잘 모른다"며 "정부와 자본이 부끄러워하도록 이 일을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곳에 있던 쌍용차 합동분향소가 지난 5월에는 강제 철거되어 쓰레기차에 실려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슬라보예 지젝은 "오 마이 갓"이라고 놀라워하며 김정우 지부장에게 "여기를 꼭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곳에 있던 쌍용차 합동분향소가 지난 5월에는 강제 철거되어 쓰레기차에 실려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슬라보예 지젝은 "오 마이 갓"이라고 놀라워하며 김정우 지부장에게 "여기를 꼭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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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바보... 쌍용차 해결하려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지젝은 정부와 언론이 쌍용차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궁금해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은 절대 협상하려 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자마자 그는 "당신들의 대통령은 바보(Stupid)다. 선거가 있는 해인데, 많은 사람들을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했다. 김 지부장이 "(쌍용차 문제를)일부 매체만 보도하는데 오늘 당신 덕분에 기자들이 많이 왔다"고 하자 "저를 활용하라"며 또 한 번 연대를 약속하기도 했다.

분향소를 나오는 지젝에게 한 시민이 "용산 참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알고 있다"며 "다만 일반 경찰 같은 평범한 사람(Small people)'이 아니라 정부와 자본을 비난해야 한다.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물어야 책임자가 나온다"고 답했다.

김 지부장과 이야기를 마친 지젝은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쓰인 스카프를 매고 희생자들에게 분향을 했다. 그는 쌍용차 노동자 등 정리해고자를 지지하는 뜻을 담은 '함께 살자, 함께 웃자' 티셔츠도 선물 받았다. 지젝은 "내일(30일) 오전 출국할 때 공항에서 꼭 입겠다"고 말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투엑스 라지(XXL)를 입는 지젝에게 엑스라지 사이즈(XL)가 맞겠냐'며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파리 제8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 : 폭력에 대한 6가지 삐딱한 성찰>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등의 책을 썼다. 패션브랜드 마인드 브릿지와 아트앤스터디가 주최한 '인문학 콘서트'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27일 경희대, 28일 건국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한국 독자들과 만났으며 30일 출국할 예정이다.


태그:#지젝, #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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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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