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람들이 두 손을 모았습니다. 예경의 합장이며 대행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서원의 지극한 몸짓입니다.
 사람들이 두 손을 모았습니다. 예경의 합장이며 대행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서원의 지극한 몸짓입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양치를 하고, 세수도 하고, 옷매무시를 여미며 잠시 절방석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가물거리긴 하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 칠월백중이 다가오면 절에 마지를 올리러 가려면 재계(齋戒)해야 한다며 이삼 일 전부터 만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던 엄마의 모습이 이랬던 것 같습니다. 몇 분 더 호흡을 고르며 그렇게 앉아있다 보면 마음이 잔잔해지는 게 느껴집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양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한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그대로 서 있습니다. 몸을 일으키느라 부스럭거렸던 마음이 다시 가라앉으며 차분해집니다. 절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두 무릎을 꿇고, 합장하였던 손을 차례로 내짚습니다. 엉덩이가 들리지 않도록 새우등처럼 허리를 감아올리며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깊숙한 몸가짐으로 108배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절을 올릴 때마다 백팔참회문을 봉독하듯이 나름대로 의미를 담은 말들을 한마디씩 읊어갑니다. 제일 먼저, '대행스님! 저는 스님이 살아 계실 적에는 뵌 적도 없고,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영결식장에 드리웠던 스님의 그림자에서 느낀바 있어 이렇게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립니다' 하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으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으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때로는 찬탄하고, 때로는 묻고, 때로는 자답하며 절을 이어갑니다. 영결식장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표정, 눈물에 젖어 있고 눈빛에 서려 있던 그 아련함은 도대체 어떤 의미며 무슨 까닭인지를 묻습니다.

한 팔이 의수(義手)로 보였던 30대 남성이 합장을 하고 있던 모습이 기억에서 점점 또렷해지는 건 어인 까닭인지도 물어봅니다. 다비식장에서 보았던 그 처연함, 오매불망이라는 표현 정도로만 겨우 간추려질 것 같았던 그 애절하고도 엄숙했던 분위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이고,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짙게 드리웠던 그 비통함의 양은 얼마나 되었을까도 물어봅니다.  

스님께서 걸어오신 구도의 여정, 수행자로서의 삶도 여쭤보고, 행장으로 기록된 수행이력도 여쭤봅니다.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 묻고 혼자 답하며 그저 허공에 새길 뿐입니다. 공생(共生)과 공심(共心)에 담긴 뜻도 어림해보고, 공용(共用)과 공체(共體)에 담겼을 의미는 여쭤봅니다. 공식(共食)이 무엇인지도 물어보고, 되새김질을 하듯이 '자성본래불'을 반복하며 꾸벅꾸벅 절을 올릴 때마다 자꾸자꾸 물어봅니다.

10년 만에 다시 하는 108배, 누구를 위한 108배인가

처음으로 108배를 올리던 날(5월 27일)은 절을 30번 정도 하고부터는 숨결이 거칠어지고 다리도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다음 날에는 "어구구구∼"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허벅지 뒤쪽이 팽팽하게 당기고 아팠지만 일주일쯤이 지나니 거칠어지던 숨결은 잦아들었고 뻐근했던 다리도 완연하게 풀렸습니다.

가시는 님 그냥 보내드리지 못해 털썩 땅바닥에 엎드려 오체 조아리며 큰절을 올립니다.
 가시는 님 그냥 보내드리지 못해 털썩 땅바닥에 엎드려 오체 조아리며 큰절을 올립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대행스님이 남기신 후학들, 계·정·혜 삼학을 터득한 인천의 스승으로 우뚝 설 제자 스님들이 연화장 세계를 열어가듯 불꽃이 바라춤을 추고 있는 연화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대행스님이 남기신 후학들, 계·정·혜 삼학을 터득한 인천의 스승으로 우뚝 설 제자 스님들이 연화장 세계를 열어가듯 불꽃이 바라춤을 추고 있는 연화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참 오랜만입니다. 마음을 다지기 위해 일 년 동안 108배를 올렸던 2002년 이후 딱 10년 만에 다시 해보는 108배입니다. 그동안에도 절엘 가거나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올린 적은 있었으나 이렇듯 매일 올리는 108배는 10년 만입니다.

2002년 10월, 춘천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풀코스를 완주하고 집으로 돌아오다 길거리에서 올렸던 108배는 지금도 가슴을 뿌듯하게 하는 뭉클한 추억입니다. 만산이 홍엽으로 뒤덮이는 10월 말 일요일,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은 단풍객들을 실은 차량으로 서다 가다를 반복하는 정체의 길이었습니다.

계속되는 행락차량의 정체로 밤 12시 이전에 집까지 들어간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무리였습니다. 결국 국도 옆으로 차를 세우고, 차에 싣고 다니던 스펀지매트리스를 땅바닥에 펼쳐놓고 108배를 올렸습니다. 100리 길을 달리느라 풀리고, 성취감으로 흐트러진 다리는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듯이 후들거렸지만 12시가 되기 몇 분 전까지는 108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생자필멸을 알고 애별이고를 알지만 그래도 슬프기만 하니 합장을 하고 애도합니다.
 생자필멸을 알고 애별이고를 알지만 그래도 슬프기만 하니 합장을 하고 애도합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지극한 마음으로 예경의 절을 올립니다. 가신 듯이 오시옵소서!
 지극한 마음으로 예경의 절을 올립니다. 가신 듯이 오시옵소서!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10년 전에 올렸던 108배는 '마음을 다지기 위한 108배'였기에 '하루도 빠트리지 않는 것'이 목표였고 기계적으로 올렸던 육체적 108배였다면, 요즘 올리고 있는 108배, 일주일 후인 7월 9일까지를 기한으로 정해 올리고 있는 108배는 대행스님의 원적을 애도하는 심상(心喪)의 108배, 티끌 같은 마음일지라도 스님의 49재에 공양으로 올리는 예경(禮敬)의 108배입니다.   

'정'으로 엎드리고 '성'으로 일어서는 절

제(祭)와 재(齋)를 정확하게 구분해보지 않은 사람은 멀쩡해 보이는 인간이 매일 새벽, 제상도 차려놓지 않고 허공에 대고 절을 해댄다며 고개를 갸우뚱 했을지도 모릅니다. 절에서 올리는 49재를 제사쯤으로 생각하는 이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와 재는 의미도 내용도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기게 매일 아침 제가 드리고 있는 108배는 신·구·의 삼업을 멸하고자 하는 재계의 절차(切磋)이며 하심을 갈구하는 탁마(琢磨)입니다.

제(祭)가 죽은 사람을 기리는 유교적 의례라면 재(齋)는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뜻으로 지은 신·구·의 삼업을 소멸시키거나 청정히 하고자 올리는 불가의 의식입니다. 49재는 윤회의 굴레, 이생에서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과정인 중음(中陰)에서 머무는 49일 동안 이승에서 짓거나 쌓은 업장을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청정히 소멸시켜 드리고자 올리는 살아있는 자들의 정성이며 기도입니다.

사람들이 흘리고 있는 이 눈물, 통곡을 하듯이 흐느끼는 이 설움은 어떤 의미며 무슨 까닭인지를 묻습니다.
 사람들이 흘리고 있는 이 눈물, 통곡을 하듯이 흐느끼는 이 설움은 어떤 의미며 무슨 까닭인지를 묻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눈빛에 서려있던 그 아련함은 도대체 어떤 의미며 무슨 까닭인지를 묻습니다.
 눈빛에 서려있던 그 아련함은 도대체 어떤 의미며 무슨 까닭인지를 묻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어떤 이는 49재를 이승에서의 재판과 비교해 쉽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승의 울타리에서야 제아무리 중대한 일이라도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에서 판결을 받는 삼심제로 모든 것이 결판납니다. 하지만 이승의 울타리를 벗어나 저승으로 이어지는 중음의 세계, 윤회의 간이역이 되는 중음의 세계에서는 7일마다 7번의 판결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 7번의 판결 중 이승에서의 대법원 판결과 같이 최종적인 결심 판결이 열리는 날이 49일째 열리는 7·7재일이라고 합니다.  

이승에서 재판이 열리면 우리는 직접 또는 변호사 같은 법률전문가에게 매달려서라도 열심히 변호합니다. 호소도 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설명하고, 탄원도 합니다. 7일마다 올리는 재에 참석해 열심히 기도를 올리는 것은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 대법원 재판에 참석해 열심히 변론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백발 성성한 노보살님도 가슴에 두 손을 모았습니다.
 백발 성성한 노보살님도 가슴에 두 손을 모았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작은 허물이 있을지라도 인지상정에 호소하고, 지성으로 변호하면 정상이 참작되어 죄과가 감면되듯이 49재를 올리는 마음 또한 지극하면 지극할수록, 극진하면 극진할수록 판관들의 마음을 감동케 할 것이기에 한 번, 또 한 번의 절을 올릴 때마다 '정(精)'으로 엎드리고 '성(誠)'으로 일어섭니다.
좁쌀 크기의 모래도 그냥 물에 넣으면 퐁당 가라앉지만 집채만 한 바위도 뗏목에 실리면 강물에 두둥실 떠 있는 것을 봤습니다. 티끌 같은 정성이나마 이제 능파교를 건너야 할 대행스님께서 오르셔야 할 뗏목, 반야용선에 소용될 작은 조각으로라도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리는 티끌 같은 절입니다. 

열반을 위한 윤회, 윤회에 따른 원적

여느 사람들 역시 108배로 대행스님의 왕생극락을 빌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나 그들이 올리는 108배는 대행스님을 위한 108배가 아니라 결국은 자신들을 위한 108배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날, 영결식이 봉행되던 5월 26일, 영결식장과 다비식장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대행스님은 소멸해야 할 업장이 없는 보살이었습니다. 스님의 삶은 지행합일이었고, 주변을 광명천지처럼 훤하게 밝히는 여명의 햇살 같은 각자(覺者)의 삶이었습니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당달봉사의 눈에는 연화대에서 솟아오르던 불꽃이 스님의 육신을 불태우는 화마로만 보였겠지만 그날 연화대에서 피어오르던 불꽃은 연화장세계를 열어가는 바라춤사위, 너울거리는 장삼자락으로 무명 걷어가며 펼쳐가는 적정 열반의 밝음(明)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스님의 몸짓 하나하나는 보현보살의 행원이었고, 사람들이 입으로 전하는 대행스님의 말씀 한마디는 문수보살의 지혜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주는 대행스님의 서원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대원이었고, 이타행이자 보살도 인데 청정히 해야 할 업장이 무엇이며 사(赦)해야 할 인과가 무엇인지를 어림할 수가 없을 겁니다.

대행스님이 한암스님을 만나 구도의 삶을 결심하게 된 계기의 장소였던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고양이상
 대행스님이 한암스님을 만나 구도의 삶을 결심하게 된 계기의 장소였던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고양이상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은혜를 갚은 꿩의 전설로 유명한 치악산 상원사 일주문. 대행스님이 수행을 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은혜를 갚은 꿩의 전설로 유명한 치악산 상원사 일주문. 대행스님이 수행을 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어린이까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가 궁금합니다. 대행스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이 아이도 '자성'을 깨닫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어린이까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가 궁금합니다. 대행스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이 아이도 '자성'을 깨닫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대천세계의 섭리(攝理)이며 자연계의 흐름이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사부대중의 가슴에 행원과, 지혜, 대원을 뿌리시고 지으셨습니다. 그렇게 뿌리고 지으신 인과는 '한마음'으로 거두셨습니다. 무릇 인천의 스승, 계·정·혜 삼학을 터득한 후학들로 거두시니 이것이야 말로 자작자수를 보이고 설법하신 법사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만 아미타부처님도 전생이 법장보살이었고, 석가모니부처님 또한 본생담(本生譚)에서 읽을 수 있듯이 다생다겁의 전생을 두고서야 부처의 열반에 오르셨으니 대행스님 또한 부처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또 한 겁의 전생으로 오욕과 칠정이 출렁거리고 인생팔고가 궤적(軌跡)을 그리는 이 사바세계에 나투셨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반을 위한 윤회, 윤회에 따른 원적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백여섯 번, 백일곱 번, 백여덟 번, 고두례.

대행스님! 도솔천의 하루는 사바세계의 400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행스님의 세납을 도솔천의 시간으로 어림해보니 채 한나절도 되지 않는 촌음의 시간입니다.

서럽습니다. 참 서럽습니다. 마음의 등불이었던 스님과의 사별은 애별이고의 고통입니다.
 서럽습니다. 참 서럽습니다. 마음의 등불이었던 스님과의 사별은 애별이고의 고통입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꽃이 지면 열매가 열리고, 열매가 영글면 씨앗으로 되어 새싹을 틔우듯이 스님께서 행으로 보이신 '실천'은 감화의 꽃이 되고, 감화의 열매가 되고, 감화의 씨앗이 되어 만인의 가슴에서 불심으로 싹트고 행복으로 영글어 가고 있음을 찬탄하며 백 여덟 번째의 절을 올립니다.
배어나온 땀으로 이마는 송글송글하고 등줄기는 촉촉하게 젖었습니다. 감로의 땀방울입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목탁소리에 장단 맞춰 방울방울 쏟아 낸 감로의 땀방울입니다.

정으로 엎드리고 성으로 일어서며 108배를 올리다보니 30여 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이 30여 분 또한 오롯이 대행스님만을 기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행스님을 기리며 올리는 108배도 내일, 모레, 글피…, 일주일만 더 올리면 회향합니다.

회향을 일주일 앞둔 지금, 곰곰이 되돌아보니 그동안에 올렸던 108배는 대행스님을 기리는 49재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한 49재, 제 자신의 업장을 소멸시키는 관욕 같은 108배였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달무리는 휘영청 밝은 달빛에 의지해 맺힙니다. 대행스님께서 일생동안 행으로 보여주셨다는 '실천'을 아주 짧은 44일(5월 27일부터 7월 9일까지) 동안이나마 이렇듯 108배를 올리는 것으로 실천의 그림자로 무리(暈輪) 짓기를 서원해 봅니다.

마음 사르고, 오체 조아리며 올리는 예경의 108배로…

대행스님의 원적과 49재에 즈음하여 첫새벽마다 올리던 108배는 부지불식간에 지었을 이런 악업을 청정히 하고, 저런 과를 소멸시키는 하심의 시간이었습니다.

소리 없는 법문에 귀 기울이고, 흔적 없는 대행을 훈습(薰習)하고 있었으니 한 번 한 번의 절을 올리는 순간순간이 생전예수재를 올리는 치성(致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는 일요일에는 108배를 올린 후 새벽 들길을 걷고, 갑천을 건너 집에서 머리만 내밀면 빤히 건네다 보이는 도솔산에라도 다녀와야겠습니다.

지수화풍으로 환원한 스님의 4대가 들길로, 아침이슬로, 햇살로, 강바람으로 돼 도솔산 가는 길에 자재(自在)하게 펼쳐졌거나 맺혔을 지도 모르고, 비추고 있거나 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 도솔산 가는 길 지수화풍으로 환원한 스님의 4대가 들길로, 아침이슬로, 햇살로, 강바람으로 돼 도솔산 가는 길에 자재(自在)하게 펼쳐졌거나 맺혔을 지도 모르고, 비추고 있거나 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지난 5월 26일, 서산정에 꽃피운 연화대에서 염화미소를 짓듯이 오롯이 지수화풍으로 환원한 스님의 4대가 들길로, 아침이슬로, 햇살로, 강바람으로 천화(遷化)해 그 길에 자재(自在)하게 펼쳐졌거나 맺혔을 지도 모르고, 비추고 있거나 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도솔천 내원궁은 아닐지라도 산 이름이 도솔산이고 지번 또한 낙도안민(樂道安民, 도가 즐겁고 백성이 편한 곳)라는 유래를 갖고 있는 도안동 7번지이니 도솔천으로 가는 길목쯤으로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르고, 돌고 있을 뿐인 바닷가 수레바퀴처럼 머물다 바랑을 걸머 멘 운수납자의 발걸음으로 타박타박 내려 걷겠습니다.

시공을 초월할 능력이 없는 저로서는 공양(供養)으로 올릴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생전에 뵙지 못한 인연 역시 인연이 없었던 게 아니라 시절 인연이 닿지 않았음으로 자위하며 인연법으로 달래렵니다. 다만, 향 대신 추모하는 마음을 사르고, 청수 대신 오체 조아리며 올리는 예경의 108배로 스님의 왕생극락과 극락정토 상품상생을 기도하고 서원할 뿐입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스바하.

덧붙이는 글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스바하'는 진언이지만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가는 자여! 가는 자여! 저쪽으로 가는 자여! 완전하게 저쪽으로 가는 자여! 깨달음이여 행복이 있어라'라는 뜻이 됩니다.



태그:#대행스님, #한마음선원, #49재, #자성본래불, #상원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1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