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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사들 입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나 또한 가끔 이 말을 되뇔 때가 있다.

"이제 교사도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 "아이들이 무서워 선생 하겠냐?"

수업시간, 개념 없이 교권에 도전하는 아이들과 마찰을 피하고자 선생님은 참고 또 참는다. '참을 인(忍)' 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라는 말을 되뇌며 수업에 임할 때가 잦다.

아마도 그건, 아이들의 잘못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수업진도가 늦어질 뿐만 아니라 아이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일 것이다. 많은 교사가 아이의 행동이 그다지 눈살을 찌푸리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곤 한단다. 특히 여선생님들은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기 싫어 시간 내내 밖을 바라보며 수업을 하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고 한다.

점심 후, 오랜만에 교사 휴게소에 들렀다. 문을 열자, 식사를 마친 몇 명의 선생님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 탓인지 얼굴들이 많이 지쳐 보였다. 잠깐의 휴식을 그 누구한테 방해받고 싶지 않은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오수(午睡)를 청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잠시 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강 선생이 빵과 우유를 들고 휴게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4교시 때 무슨 일이 있는 듯 표정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냥 눈치만 살폈다. 그러자 강 선생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화가 난 이유를 설명했다.

"김 선생님, 요즘 아이들 정말이지 개념이 없는 거 같아요?"

"아니, 무슨 일 때문에 그래요? 스트레스 받지 마요. 건강 생각해야지."

4교시 종소리가 난 뒤, 수업을 몇 분 더했다고 한 녀석이 짜증내며 교실을 나가더라는 것이었다. 물론 다음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수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리를 박차고 나간 학생의 행동에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불러다 야단을 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사실 강 선생의 과목이 수학이라 문제를 풀다 보면 시간이 초과하는 때가 가끔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학생의 양해를 구하는 것도 조금은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강 선생은 녀석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나 점심까지 걸렀다며 분을 삼켰다. 항상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는 강 선생이었기에 그 녀석의 행동이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으리라 생각했다.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이 선생님을 때론 울게, 때론 웃게 한다

이렇듯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가끔 교사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더러 있다. 한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쏟는 강 선생과 같은 초임교사들이 이런 일로 의욕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찌감치 교직에 환멸을 느껴 교사로서 사명감을 저버리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선배교사로서 이번 일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빨리 잊을 것을 주문하고 난 뒤, 교무실로 왔다.

교무실은 며칠째 계속되는 무더위에 후덥지근하기까지 했다. 마의 5교시를 위해 조금이나마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자리로 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을 목격했다. 누군가가 갖다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스크림이 녹아 책상 위가 온통 물기로 젖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옆에는 물기에 잉크가 번져 글씨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메모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아이스크림의 출처를 알기 위해 조심스레 메모지를 집어 들어 행여 찢어질세라 조심스레 펼쳤다.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으나 무슨 내용인지 아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선생님, 저희 때문에 속 많이 타시죠? 시원한 아이스크림 드시며 열 좀 식히세요. 그리고 선생님 곁에는 저희가 있잖아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파이팅! 2학년 ○반 천사 일동"

요즘 아이들 때문에 속상해하는 담임을 위해 아이들이 쓴 응원의 메시지였다. 이 메모를 쓴 아이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딘가에 나를 응원하는 제자들이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아이스크림은 녹아 먹지는 못했지만 내 속은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 이상으로 뻥 뚫린 듯했다.

그러고 보니 3월부터 지금까지 일부 악동(惡童)들에게 신경 쓰느라, 정작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묵묵히 학생으로서 본분을 지키며 불만 한 번 토로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사실 어떤 때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야속하고 괘씸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 보니 아이들은 나의 속마음을 다 읽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최근 보도에 의하면, 교직에 환멸을 느껴 교단을 떠나는 선생님들이 많다고 한다. 교직 경력 20년이 넘은 나 또한 순간 힘들 때마다 내심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힘듦을 참지 못해 아이들 앞에서 짜증 낸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 눈치를 살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무튼, 오늘 이 아이들은 내게 교직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해 주었다. 그리고 힘들지만 교직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을 해주었다. 앞으로 생활하면서 이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이 아이들을 생각하며 교단을 지켜갈 것을 다짐해 본다.

"얘들아,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덧붙이는 글 | 한교닷컴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교직, #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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