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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는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일을 해줄 사람이 불가능한 일이고, 기계가 좋다고 해도 기계를 다룰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집을 지으면서 전혀 뜻밖의 사람을 많이 만나고 있다. 시공업자인 김사장은 거의 매일 얼굴을 본다.
그리고 집을 짓는데 분야별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사실 집을 짓는 일은 개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중대사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이 짓는 집에 누가 사느냐 하는 관심보다 집짓는 일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런 노동자들에게 집을 맡긴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솔직히 떠도는 노동자들이 무책임하게 망치질이나 톱질 한 번 소홀하여 집에 흠이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때문에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비록 길면 열흘 짧으면 이틀 동안의 집을 지어주는 노동자들과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했다.

거러면서 내 집을 잘 지어달라는 부탁을 담고, 시원한 물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의 집을 지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정성과 도리를 다하는 것이 집에 대한 기원을 담은 마음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 집 일을 해주는 하는 노동자들에게 날마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팀이 바뀌면 점심이라도 한 번 쯤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노동자들에게 명품은 아니지만 튼튼한 집, 하자 없는 집을 부탁했던 것이다.

허지만 그렇게 내가 보여준 성의에 비례하여 노동자들의 일하는 태도는 기대한 만큼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문제는 노동자들의 기술 수준이 일의 성과를 좌우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분야별로 인간문화재가 있고, 건축 현장, 특히 한옥건축 현장에는 인정받는 유명한 도편수들이 있다고 알고 있다. 또 전기 공사 등 특정한 분야는 시설하는 기술자들이 일정한 면허를 취득한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목수 설비 창호 기와 조적 미장 등의 기술자들에게는 국가 공인 면허나 자격증 제도가 거의 없다고 했다.

몇 년간 도제식 수업으로 기술을 배웠다는 사람, 개인의 취미와 특기를 살려 건축 현장으로 나온 사람, 그도저도 아니면 생계수단으로 마지못해 건설현장으로 나온 사람 등 다양한 경력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러나 내 집을 짓는 건설노동자들의 기술력을 검증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개인이 짓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집이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분업과 협동으로 이룬 공동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짓기에서 좋은 시공사를 만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아울러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은 잘 만나야한다. 그래야만 튼튼하고 하자 없는 집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누가 집을 잘 짓는 사람이냐 하는 점은 개인이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무조건 시공업자를 믿기로 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시공업자가 능숙하고 노련하면서 성실한 기술자 혹은 노동자에게 맡겨 집을 지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집짓는 사람들의 기술적인 차이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만 성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장 일은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만으로 기대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내벽에 단열재 작업을 하는 과정이다.
▲ 단열재 작업 내벽에 단열재 작업을 하는 과정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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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고 인상 좋은 사람이 꼭 훌륭한 기술자는 아니었다. 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사람이 일을 정확하고 빈틈없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착한 태도와 망치질 하는 기술은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집짓기는 본질적인 인간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지닌 기술의 문제였고, 노동자의 기술 수준은 인간적인 교감을 이루려는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동안 기초공사, 골조 공사, 창호 설치, 설비, 전기 등 분야별로 집짓기에 들어온 팀들의 노동자들은 다행스럽게도 대부분 착하고 열심이었다. 활발하고 친절하면서도 성심껏 정확하게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자신이 비록 노동자이지만 자신의 일을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강조하는 대단한 긍지를 지닌 목수들도 있었다.  숙지원을 거닐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숙지원 같은 곳에 집을 지어 살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특히 유능한 팀장은 자신의 분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분야까지 발견하고 시정하려는 모습을 보여준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일에 자부심은 물론 열심히 하려는 의욕도 없고 틈만 있으면 꾀만 부리면서 시간을 때우려는 노동자도 보였다. 실수를 지적하면 다른 현장에서도 다 그런다는 퉁명스러운 말로 현실을 모면하려는 노동자도 있었다. 아무 곳에나 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버리는가 하면 어수선한 실내 한 구석을 소변소로 착각하는 사람을 보는 것도 불쾌한 일이었다. 

단열재를 넣은 후 석고보드로 벽을 가렸다.
▲ 석고보드 붙이기 단열재를 넣은 후 석고보드로 벽을 가렸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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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 지켜보기 힘들었던 일은 내벽에 붙이는 합판이나 석고보드를 제대로 재단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 창문 하나 정확하게 설치 못하는 사람, 집의 특성에 맞는 미적 감각을 발휘하기보다 다른 집의 사례만을 들먹이며 뒷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한 엉성한 사람도 있었다. 건축자재를 야무지게 관리하고 자투리 자재를 활용하여 자재 손실을 최소화하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한 부적격한 기술자 아닌 기술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전문적인 기술력 제고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공업자의 자격 요건, 그리고 목수와 실내 인테리어만이라도 일정 요건을 갖춘 사람들에게 면허제도라를 검토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노동자의 기술력 제고는 개인의 재산을 지키는 사안일 뿐 아니라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가 제도적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비록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으로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건축 현장은 선량하고 힘없는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에서 땀 흘리는 곳이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대접해 주는 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인간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미숙한 사람들도 쉽게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 건설현장이다. 그런 현장에서 노동자의 기술력을 알아볼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내 집을 지어줄 사람을 선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좋은 기술자를 만나는 일은 집주인의 복불복(福不福)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지난 두 달 동안 현장을 지켜보면서 건축 현장에서 사람을 믿어야할 존재냐 믿어서는 안 될 존재냐 하는 시비를 가리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좋은 사람이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기술적으로 빈틈없고 깔끔한 사람이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사람이 오면 우선 말 잘하고 인상 좋은 지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감시하는 것 같지만 지근거리에서 일하는 사람의 자세와 솜씨부터 살핀다. 정확한 치수와 각도에 맞추어 재단을 하는지, 단열재는 빈틈없이 채우는지를 살핀다. 집을 짓는 일이란 겉보기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정확하지 않으면, 그리하여 집에 하자가 발생하는 날이면 그야말로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측면의 외벽에 시멘트 사이딩을 붙이는 작업이다.
▲ 외벽 공사 측면의 외벽에 시멘트 사이딩을 붙이는 작업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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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는 중반전을 넘은 것 같다. 지난 월요일(11일)부터 오늘(18일)까지 단열재 시공, 석고보드와 합판으로 내벽을 치기, 외벽의 측면과 후면에 사이딩 작업까지 마쳤다. 설비 쪽에서는 주방과 욕실의 냉온수 공급 시설을 끝냈다. 그렇지만 아직도 보일러, 실내 인테리어, 조명, 주방시설 등 중요한 일이 많이 남아 있다.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노동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짝 얼굴을 익힐 쯤 헤어질 것이다.

좋은 기술을 가진 사람을 고르는 일, 쉽지만은 않다. 남은 기간, 전문적인 기술을 가졌으면서도 내 집을 짓는 것처럼 일해 주는 따뜻한 사람을 만났으면 싶다.  2012.6.17.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단열재, #시멘트사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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