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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게닌(芸人)'이라는 연예인 계층이 있다. 말하자면 한국의 '개그맨'과 같은 포지션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신 이들의 활동 영역은 한국의 개그맨들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입니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DJ OZMA와 '톤네루즈'가 결성한 '야지마 미용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런던하츠>에서 시작됐던 카노 에이코의 '50TA'. 일본을 대표하는 개그 콤비인 '다운타운'이 코무로 테츠야와 함께한 'H jungle with T'와 같은 팀들이다.

이들은 모두 게닌들이 결성한 음악 그룹으로, 이들 노래들의 인기는 실제로 상상을 초월한다. 톤네루즈의 경우 발표한 정규 음반만 하더라도 10여 장이 넘어가고, 'H jungle with T'의 경우에는 음반 판매 200만 장을 돌파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일본 자살률을 떨어트린 주인공은 바로 '게닌'

경기침체에 빠진 일본국민들을 위해 과감히 옷을 집어던지고 오직 희망과 웃음을 전하겠다는 목적으로 음악을 발표한 '핫파타이'.
 경기침체에 빠진 일본국민들을 위해 과감히 옷을 집어던지고 오직 희망과 웃음을 전하겠다는 목적으로 음악을 발표한 '핫파타이'.
ⓒ 포니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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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일본의 경제가 바닥을 쳤던 2000년대 초, 국민들에게 오직 희망과 웃음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유명 게닌들이 힘을 합쳐 완성된 '핫파타이(はっぱ隊)'의 'YATTA!'같은 명곡들은 '무기력증에 빠진 일본 국민들의 자살률을 낮췄다'는 기사가 날 정도로 그 영향력은 엄청났다.

어떤 순간에는 너무 진지한 가사와 옷차림에 웃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그들이 갖고 있는 열정에 눈물이 날 정도의 감동을 전해주기까지 하는 이들 게닌. 이들의 행보는, 이제 일본연예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볼 수 있는 그들만의 활동이다.

물론 한국의 개그맨들도 과거 캐럴 음반이나 '컬트삼총사'의 음반들로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한국 대중음악계 전반에 변동을 일으켰다고 하기엔 역시 조금은 부족했다. 물론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발표한 음원들의 경우에는 그 궤를 달리하긴 하지만, 개인들이 직접 프로그램에서 나와서 정식으로 음반을 발표하는 사례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분명히 다르다. 대형기획사에서 발표하는 아이돌 그룹들의 신보가 위협을 받을 정도로 개그맨들이 발표하는 음악들의 인기는 바람을 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개가수'(개그맨+가수)라 불리며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UV] 한국 최고의 댄스듀오... 이젠 록 페스티벌까지

이제는 확고한 뮤지션으로 자리를 굳힌 'UV'.
 이제는 확고한 뮤지션으로 자리를 굳힌 'UV'.
ⓒ 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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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의 첫 번째는 진원지는 역시 유세윤, 뮤지가 함께 결성한 'UV'.

이제 UV하면 더 이상 자외선이 아닌 이들 댄스듀오가 먼저 떠오르게 된 건 역시 온전한 이들의 음악성 덕택이다. 'X세대'의 스타일을 보고 자란, 흔히 말하는 8090세대의 감성을 건드리는 이들의 노래는, '뼈그맨' 유세윤의 재기발랄한 가사와 손대신 발을 흔들며 관객들에게 '풋쳐핸섭!'을 외치는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단연 발군이다. 

그리고 등장 초반에만 해도 미국의 'The lonely Island'와 곧잘 비교되던 이들이었지만, 이제 이들의 음악적 활동은 전 방위적인 확고한 정체성까지 가지게 됐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싱글 '문나이트90'을 통해 보여줬던 힙합과 올드 스쿨에 대한 가감 없는 경외. 'Who am I'에서 들려준 상당히 노골적인 브릿팝. '이태원 프리덤'에서 들려준 세련된 디스코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간섭하지 않는 장르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력은 결국 박진영과 이현도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끌어냈고, 그들의 음악에 '음악의 신' 정재형과 유희열을 참여시키기도 했으며, 2011년에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출연하기까지 이른다. 이쯤 되면 UV는 정말 진정한 뮤지션이라 해도 이젠 무리가 없을 듯.

[형돈이와 대준이] 진정한 갱스터 랩을 들려주마!

대한민국 갱스터랩의 새로운 패러다임 '형돈이와 대준이'.
 대한민국 갱스터랩의 새로운 패러다임 '형돈이와 대준이'.
ⓒ 로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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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에서 '에픽하이'와 함께 "마더! 파더! 김미어 원 달러! 엄마! 아빠! 천이백 원 주세요! 엘니뇨, 라니뇨! 더블유티오 예에~!"라는 경악스러운 라임을 통해 정형돈의 힙합정신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이런 그의 가능성이 데프콘을 만나면서 이번에 완전히 꽃 피웠다. 2년 전 개화동에서 데프콘과 같이 낮술 먹다가 이뤄진 프로젝트 치고는 너무나 성공적인 데뷔.

데프콘 역시도 과거 4집 <마초 뮤지엄(Macho Museum)>에서 들려주던 강력한 모습은 조금 감춰둔 채, 정형돈과 완벽한 화합을 이루며 대한민국 갱스터 랩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물론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그룹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음악성을 쉽게 예단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빅뱅과 원더걸스의 신보를 위협하는 존재는 바로 이들이라는 점!

[용감한 녀석들] 안 될 놈은 안 되지만, 될 놈은 된다

지난 4월 12일 오후 서울 신사동 일지아트홀에서 열린 씨스타 1st 미니 앨범 쇼케이스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용감한 녀석들이 익살스러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4월 12일 오후 서울 신사동 일지아트홀에서 열린 씨스타 1st 미니 앨범 쇼케이스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용감한 녀석들이 익살스러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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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가 낳은 최고의 힙합그룹 '용감한 녀석들'. 이들은 앞선 두 그룹 보다 멤버들의 경력은 짧고 발표한 곡 역시 2곡 정도밖에 되진 않지만, 입지가 넓어지는 속도만큼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그 인기의 비결에는 물론 현재 예능 최고의 시청율을 자랑하는 <개그콘서트>에 힘이 묻어있긴 하지만, 개그맨 윤형빈이 주축이 되어 <개그콘서트>멤버들이 함께 결성한 밴드 '오버액션'이나, 개그맨 박휘순이 발표한 싱글 '보이나요 내 눈'과는 확연히 다른 속도.

그 중심에는 홍일점인 신보라의 인기를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그녀가 부른 드라마 <유령>의 OST <그리워 운다>는 지난 15일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다. 그녀의 본업이 의심스러울 정도. 역시 될 사람은 뭘 해도 되는 걸까.

개그맨이 부르는 노래, 그 인기의 지속성은?

정규 2집 [Turtleneck & Chain]을 발표한 미국의 가수 겸 코미디언 그룹 'The Lonely Island '.
 정규 2집 [Turtleneck & Chain]을 발표한 미국의 가수 겸 코미디언 그룹 'The Lonely Island '.
ⓒ 유니버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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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인기는 계속해서 지속될 수 있을까.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과거와는 달리 홈 레코딩이라는 방식을 통해 어느 정도 쉽게 만들어지는 환경에서는, 싱글 방식으로 개그맨들이 음원을 발표하는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작곡가들이나 기획사 역시 현재 엄청난 입지를 자랑하는 가수들과의 작업보다는, 인지도가 있는 개그맨들과의 작업이 훨씬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증명됐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음악적 수준을 떠나 어떠한 방식으로 음악이 알려지느냐가 더 중요한 숙제가 된 지금, 이렇게 환경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개그맨들의 음악이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개그맨들이 발표하는 음악은 '본업을 벗어난 부업활동'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앞서 소개한 그룹들이 정규 음반은 아직 한 장도 발표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앞선 일본의 사례나 미국의 'The Lonely Island'처럼 개그맨들의 음악이 꾸준히, 그리고 확고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결국 화제성을 뛰어넘는 음악성과 웃음에 대한 코드가 필수다. 이런 실력을 바탕으로 일종의 쏠림 현상이 아닌, 굳건한 장르로서 그들 음악은 완성될 수 있을까. 앞으로 그 행보를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자.


태그:#개가수, #UV, #용감한 녀석들, #형돈이와 대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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