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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올수록 시원하고 담백한 음식이 입맛을 자극한다. 그 중 메밀국수도 여름을 즐겁게 해주는 메뉴 중 하나다. 일본 말로 '소바(そば)'라 불리는 이 음식은 이제는 분식점에서도 흔히 즐길 수 있는 대중 음식이면서, 일본에 대해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매개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운 철에 즐기는 음식이란 고정관념과 달리 원래 소바는 일본의 겨울 풍경을 담은 음식이었다.

일본에서는 해마나 12월 31일이 되면 도시코시소바(としこしそば)를 먹는 풍습이 있다. 연말과 연초를 이어준다는 의미를 가진 이 음식에는 보다 궁극적으로는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1년의 마지막 식사를 도시코시소바로 해결하기 위해서 이날은 온 일본의 소바집이 붐빈다. 가족들과 소바집을 찾아가서 한 그릇 씩 먹으며 지난 1년을 돌아보고 다가올 1년에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최근에는 수퍼마켓에서 사온 포장용 소바를 가정에서 끓여 먹으며 연말을 보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소바가 일본의 연말음식이란 점에선 변함이 없다.

이렇듯 일본인의 일상에 자리한 소바는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산나물, 버섯, 잎, 작은 뿌리가 들어가는 산사이소바는 재료가 전부 산에서 나는 것들이고, 구운 두부를 얹은 키네츠소바는 매우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기름에 튀긴 작은 반죽 경단이 들어있는 다누키소바는 따뜻한 국물 맛이 일품이며, 잘 말린 청어를 간장양념으로 조려서 메밀면 위에 얹은 니싱소바는 시간과 정성이 가득한 서사의 음식이란 면에서 이채롭다. 담백함을 잘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는 음식이지만 역설적으로 오리고기나 카레 등의 강한 맛을 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한편 소바는 도시의 음식이다. 17세기 무렵에 사무라이 도시인 에도(지금의 도쿄)지방을 중심으로 소바가 발달했는데, 검술 등으로 수분 배출이 많은 사무라이들에게 나트륨을 보강해 주기 위해 짜고 강한 국물의 소바를 먹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도쿄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해서 일본의 대중 음식이 됐고, 이제 라면의 스피디한 매력과 더불어 유행이 지나간 듯이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밀보다 더 많은 단백질과 적은 탄수화물을 가진 메밀로 만들었기에 다이어트식이나 건강식이란 장점은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이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바 종류를 들자면 자루 소바가 있다. 가장 흔하면서도 소바의 특징을 잘 살린 이것은 오감으로 먹는 음식이란 것이 장점이다. 대나무 받침 살대를 의미하는 '자루'위에 놓인 소바 뭉치 위로 흩뿌려진 구운 파래는 암갈색의 면과 어우러져 꽤 식감을 자극한다. 곁에 놓인 국물그릇에다 잘게 다진 파를 집어넣고, 여기에 와사비를 한 젓가락 녹여낸 후, 메밀면 한 젓가락을 그 국물에 담궈 후루룩거리며 먹으면 담백하면서도 알알하고, 한편으론 달콤하면서도 쫀득한 국수의 식미가 더 없이 강조된다. 그러기에 소바의 맛을 아는 사람은 차갑게 먹음으로써 각각의 재료가 가진 풍미가 더욱 강조되는 자루소바를 찾는 것이다.

면을 끊지 않고 단숨에 먹기에 소바는 '씹는다기 보다는 마신다'고 표현되곤 한다. 그러기에 먹을 때는 후루룩 소리가 날 수 밖에 없고, 이것은 청각적 효과까지 가미되어 그 맛을 더욱 강조해 준다. 더욱이 소바를 삶으면서 빠져나온 영양분을 소바 차(茶)로 마심으로 해서 메밀의 영양을 오롯이 섭취할 수 있게 해 주므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음식이다.

우리의 냉면처럼 소바도 원래는 겨울이 제철이다. 메밀이 10월 말에서 11월 사이에 수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더운 철이 오면 냉면을 떠올리듯 여름에 먹는 소바 도 맛있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국수에 비해 칼로리가 낮으면서도 깊은 만족과 포만감 까지 주는 소바. 우리 풍습에 결혼식에 국수를 먹듯이 일본에서도 결혼식에 소바가 등장한다는 점도 재미있다.


태그:#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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