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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강골마을 오랜 전통의 백미로 꼽히는 열화정. 돌담길 따라 숲 우거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보성 강골마을 오랜 전통의 백미로 꼽히는 열화정. 돌담길 따라 숲 우거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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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마을이다. 이른바 전통마을이다. 고택이 즐비하다. 모두가 문화재급이다. 이금재 가옥, 이식래 가옥, 이용욱 가옥 등이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이들 가옥에선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툇마루와 아궁이는 물론 마당의 우물까지 우리 선조들의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담쟁이 우거진 돌담 고샅길을 따라 가다 만난 '열화정'은 최고의 건축미를 보여준다. 중요민속자료 162호로 지정돼 있는데, 우거진 숲과 연못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분위기 좋고 모양도 아름답다.

1845년 이진만이 지역에서 동량을 길러 내려고 지은 누정이다. 공부방이었다. 때로는 마을회관 역할도 했다. 대한제국 말엔 의병장의 거점으로 쓰이기도 했다. '벌교에서 주먹자랑 하지마라'는 말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머슴출신 의병장 안규홍이 일본 헌병을 피해 숨어 지낸 곳이기도 하다.

양반집 안의 우물과 바깥 세상을 연결해주는 네모난 구멍. 양반집에서 우물을 파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대신 주민들의 여론을 듣는 창구로 활용했다.
 양반집 안의 우물과 바깥 세상을 연결해주는 네모난 구멍. 양반집에서 우물을 파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대신 주민들의 여론을 듣는 창구로 활용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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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욱 고택에 자리하고 있는 공동우물과 돌담에 뚫린 네모난 구멍. 양반집과 서민들의 소통창구로 쓰였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용욱 고택에 자리하고 있는 공동우물과 돌담에 뚫린 네모난 구멍. 양반집과 서민들의 소통창구로 쓰였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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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있는 샘이 지니고 있는 사연은 애틋하다. 광주이씨 종가인 이용욱 고택 옆에 있는 공동우물인데, '소리샘'이다. 이씨 종가에서 주민들을 위해 우물을 파서 개방해 주고, 대신 여론수렴 창구로 활용했다.

'소리샘'의 핵심은 네모난 구멍이다. 우물 바로 옆 담벼락으로 뚫려 있다. 종가에서 이 구멍을 통해 제사나 잔치음식을 나눴다. 종가에서 주민들의 애환을 듣는 통로이기도 했다. 양반과 서민의 소통 공간이었던 셈이다.

"소리샘이었지라. 옛날엔 양반과 서민이 소통하던 곳이었어요. 샘에서 물을 긷는 아낙들을 통해 마을의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 들었지라. 대놓고 들을 수 없는 것을 엿들은 모양새지만 얼마나 현명했소. 그 마음이 정말 이쁘지라. 지금은 우리 마을이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소통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곳이라고 봅니다."

전남 보성 강골마을 정보화위원장이자 마을 지킴이 박홍주(39)씨의 말이다. 박 위원장이 말하는 소통의 연결고리는 바로 농촌의 전통체험이다.

문화재급 한옥이 즐비한 보성 강골마을 풍경. 오래된 마을로 남도의 대표적인 전통마을 가운데 하나다.
 문화재급 한옥이 즐비한 보성 강골마을 풍경. 오래된 마을로 남도의 대표적인 전통마을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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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숲과 연못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정 열화정. 지역의 동량을 길러 내던 공부방이었다. 때로는 마을회관으로, 대한제국 땐 의병장의 거점으로 쓰였던 문화유산이다.
 우거진 숲과 연못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정 열화정. 지역의 동량을 길러 내던 공부방이었다. 때로는 마을회관으로, 대한제국 땐 의병장의 거점으로 쓰였던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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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의 체험은 여느 전통 농촌체험마을과는 차원이 다르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선결조건이다. 이들에게만 전통의 참맛을 허락한다. 핵심은 농촌은 농촌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 체험은 '불편함 속에 여유 있는 강골마을 여행'이다.

안락한 펜션에다 근사한 여행지를 찾을 심산이라면 피하는 게 좋다. 주민들도 그리 반기지 않는다. 대신 마음 한구석에 마을을 담아갈 수 있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휴식처로 손색이 없다. 주민들도 대환영이다.

체험프로그램도 독특하다. 안개 자욱한 차밭과 전통한옥에서 불편한 하룻밤이 있다. 마을 여행과 신나는 갯벌체험도 있고, 쌀눈 발아엿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도 가능하다. 이밖에도 시골마을에 친척집 만들기, 두 그루 철쭉제, 차향 맡으며 떠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색다르다.

허기진 배는 시골 밥상으로 채우면 된다. 득량만 간척지에서 난 쌀로 밥을 짓고 머위대, 돌미나리, 죽순, 쑥, 동치미에다 꼬막, 고등어조림 등이 나온다. 식재료는 모두 마을에서 난 것들이다. 조청, 매실 등 천연조미료만을 써 자극적이지도 않다. 은근하고 깊은 맛이 스며난다.

강골마을 주민들이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피고 조청을 달이고 있다. 쌀눈발아엿을 만드는 과정이다.
 강골마을 주민들이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피고 조청을 달이고 있다. 쌀눈발아엿을 만드는 과정이다.
ⓒ 보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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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 주민이 양편으로 앉아 조청을 밀고 당기며 쌀눈발아엿을 만들고 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쌀눈발아엿은 강골마을의 특산품이다.
 강골마을 주민이 양편으로 앉아 조청을 밀고 당기며 쌀눈발아엿을 만들고 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쌀눈발아엿은 강골마을의 특산품이다.
ⓒ 보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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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체험 못지않게 전자상거래를 통해 파는 쌀눈 발아엿과 조청도 마을의 자랑이다. 마을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방법을 통해 엿기름과 쌀눈만으로 엿을 만든다. 아궁이 불을 지펴 졸이고, 온종일 방안에 앉아 손으로 당겨 만든 수제 엿이다.

치아에 달라붙지 않고 바삭바삭 맛도 있다. 지난해 11월 특허 등록까지 마쳤다. 음식을 만들 때 설탕 대용으로 쓰는 조청도 색다르다. 김치를 담글 때 넣으면 감칠맛을 더한다. 떡이나 식빵을 찍어 먹으면 별미다.

이 강골마을은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에 속한다. 광주이씨 집성촌으로 30여 가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와 '1박 2일', '무한도전'을 통해 이 마을이 소개되기도 했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서편제', '태백산맥', '혈의누' 등을 통해 스크린에 소개돼 이목을 끌었다. 청정의 자연과 박제되지 않은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쌀눈발아엿 만들기 체험장. 마을을 찾은 여행객들의 체험장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다.
 쌀눈발아엿 만들기 체험장. 마을을 찾은 여행객들의 체험장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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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은 텔레비전과 영화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됐다. 사진은 열화정에서의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촬영 모습이다.
 강골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은 텔레비전과 영화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됐다. 사진은 열화정에서의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촬영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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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골마을, #열화정, #소리샘, #쌀눈발아엿, #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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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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