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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장한평 중고차 매매시장에서 판매를 기다리는 중고차들이 주차장에 줄지어 서있다.
 8일 장한평 중고차 매매시장에서 판매를 기다리는 중고차들이 주차장에 줄지어 서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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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낳으면 서울로 보냈던 것처럼, 혹은 말을 제주도로 보냈던 것처럼 중고차는 장한평으로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79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장한평 중고차 시장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자동차 매매의 중심지였다. 물론 지금도 중고차 시장에서 장한평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동네마다 있는 족발집이지만 굳이 장충동 족발을 알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8일 장한평 중고차 매매시장을 찾았다. 지하철 장한평역을 나서자 중고차 매매상과 수리업체, 중고차 캐피탈 대리점까지 관련 업체가 빼곡히 자리잡은 중고차 타운이 나타났다. 자동차 백화점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 싶었다. 상품이 전시된 넓은 주차장에는 고객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중고차들이 즐비했다. 반질반질 닦여있는 중고차들은 여름의 햇살을 튕겨내고 있었다. 

시장 입구엔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데도 커다란 우산을 펴든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호객꾼이었다. 따가운 햇살에 우산이 양산이 된 모양이었다. 맑은 날씨와 커다란 우산이라는 조합이 오묘했다. 이들은 서너명씩 모여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면서도 연신 눈길을 돌려 지나치는 사람들을 훑어봤다. 행여 중고차를 알아보러 온 기미라도 보이면 그들의 큰 우산은 마치 거대한 안테나처럼 손님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기자가 중고차 시장으로 들어서자 금방 호객꾼들이 둘러붙었다. 세 명의 호객꾼이 "어떤 차를 찾으세요?", "말씀해 보세요"라고 계속 말을 건넸다. "그냥 돌아보려고 왔다"고 해도 이들은 한동안 기자를 따라다녔다. 한참을 그렇게 따라오다 지쳤는지 "오전 내내 공을 쳤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들의 말처럼 매매상가에서 손님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국토부는 중고차 판매 늘었다지만 장한평은 '제자리'

장한평 중고차 매매시장. 낡고 오래된 한적한 복도에서는 '자동차 매매시장의 중심'이란 활력을 찾기 힘들었다.
▲ 불황의 터널 끝엔? 장한평 중고차 매매시장. 낡고 오래된 한적한 복도에서는 '자동차 매매시장의 중심'이란 활력을 찾기 힘들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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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내리쬐는 햇볕이 무색하게 장한평 중고차 매매시장의 내부는 어두침침하고 썰렁했다. 4개 동으로 이루어진 건물 안을 한참 돌아다녔지만 손님이 있는 매매상을 찾기란 어려웠다. 딜러들은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불쑥 한 업체에 들어갔다. 하루 종일 기다린 첫 손님이 돈이 안 되는 기자라서 미안했다.

20년동안 중고차 판매를 해온 딜러 장아무개씨는 경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숨으로 답했다. 장씨는 "예전에는 경기가 안 좋으면 파는 차라도 많았는데 요즘은 차를 파는 사람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장씨는 "오전은 보통 사무실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 오후에 두 어명 손님을 받으면 그마저도 괜찮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손님이 바글바글했다는 설명이 거짓말같이 느껴질 정도로 기자가 있었던 20여 분 동안 단 한 통의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다.

장씨뿐 아니라 장한평에서 들어본 중고차 시장 경기는 정부의 설명과는 달랐다. 국토해양부 발표대로라면 중고차 시장은 전에 없는 활황을 맞고 있어야 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고차 등록대 수는 332만 3000대로 전년인 2010년보다 18%넘게 증가했다. 신차 등록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다. 하지만 이 지표는 장한평 중고차 시장을 빗겨 나갔다. 200여 업체가 등록되어 있는 서울시중고차매매조합의 판매 대수는 전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근소하게 줄었다.

'중고차=장한평'이란 등식도 상당 부분 깨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판매가 90% 가까이 급증했다. 중고차 업체들마저도 발품보다는 컴퓨터로 '손품'을 분주히 팔아야 좋은 중고차를 살 수 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수원, 부천, 의정부 등 수도권에도 대형 중고차 매장이 대거 들어섰다. 굳이 중고차를 사기 위해 장한평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더불어 국산차 인기가 높이지며 수출 물량이 늘어났다.

수출차량이라고 해서 'OO학원', 'XX관광'이 나붙은 촌스런 트럭이나 승합차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거의 외국 바이어들이 수명이 다한 차를 굴러갈 정도로만 수리해 본국으로 실어 날랐다면 지금의 외국 바이어들은 그와 다르다.

국산 고급·중대형차도 이들의 거래 품목에 들어온 지 오래다. 한 업체 관계자는 "출고 1년이 안 된 신차급 차량까지 수출하면서 국내 중고차 시장에 나오는 물량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수출업체라도 숨통이 트여야 하지만 이마저도 상황이 녹록지가 않았다. 수출업체 관계자는 과다 경쟁으로 경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말한다.

ㅈ업체를 운영하는 이 아무개 대표는 수출업체 경기를 묻는 질문에 손사래부터 쳤다. 그는 "수출업체가 너무 많이 늘었다"며 "폐업하는 업체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중고차 경기가 활성화됐다는 지표에 그는 "거래량이 늘어난 만큼 업체가 늘었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수출업체가 늘어 이제는 외국바이어가 배짱을 부린다"고도 말했다. 한명의 외국 바이어에게 여러 명의 국내 수출업자가 붙다보니 가격 결정권을 외국 바이어가 가지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외국 바이어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대금 결제를 받지 못해 부도가 나는 업체도 생겨난다.

"중고차 시장도 변해야 살아남는다"

8일 장한평 중고차매매시장을 찾은 고객이 판매상과 함께 중고차를 살펴보고 있다.
 8일 장한평 중고차매매시장을 찾은 고객이 판매상과 함께 중고차를 살펴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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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들과 상인들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중고차 시장을 찾은 김강현(48)씨는 두 번째 차를 마련하기 위해 중고차 시장을 찾았다. 당초 중형급의 국산 신차를 고려했지만 여의치 않은 주머니 탓에 준중형차로 눈높이를 낮췄다. 김씨는 지인을 통해 중고차 딜러를 소개받은 터였다.

하지만 김씨와 같은 경우는 크게 줄고 있다. 대부분 손님들이 인터넷을 통해 미리 차량을 보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형차를 구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장 아무개씨(32)씨는 이미 중고차 판매 사이트에서 차량을 점찍어두고 온 경우였다. 장씨는 "인터넷으로 차량을 검색한 후 매장에서는 실물을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사인 ㅇ업체 직원 김 아무개씨는 "요즘은 인터넷에서 해당 차량과 시세까지 알아보고 오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그냥 오시는 분들은 차를 소개해주기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터넷에서 중고차를 거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보니 규모가 영세한 매매업자는 변화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위기가 높아진 것은 확실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를 위한 시도도 눈에 띈다. 일부지만 업자들을 중심으로 판매공간을 온라인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장한평에서 자동차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이선중 대표는 "언제까지 오는 손님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장한평에서 중고차 매매업체도 함께 운영중인 이 대표는 "다른 업체와 달리 우리는 판매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적극적인 온라인 마케팅을 꼽았다.

이 대표는 "수도권 중고차 매매상가는 현대적 시설과 젊은 직원들이 고객들을 맞는데 장한평은 낡은 분위기를 준다"며 "젊은 감각으로 인터넷을 통한 판매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고차 매매업자들이 말하는 "내가 중고차를 산다면?"
1. 인터넷에서 먼저 중고차를 찾아보고 시세를 알아보라. 지나치게 저렴한 차는 한번쯤 의심을 해봐야 한다. 당신이 판매자라면 좋은차를 시세보다 싸게 팔 이유가 없다.

2. .적당한 차량이 있다면 전화를 해서 허위매물 여부를 따져야 한다 허위매물일 경우 시간 허비는 물론이고 불필요한 스트레스까지 받게된다.

3. 개인 간 직거래는 추천하지 않는다. 다만 차를 잘 알거나 중고차 매매에 상당한 식견이 있다면 개인 간 직거래도 나쁘지 않다. 단 개인 간 직거래의 경우 문제가 발생할 때 해결하기가 복잡해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4. 딜러증을 확인하라. 딜러에게 구매하기로 했다면 해당 딜러가 정식으로 등록된 판매딜러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정식 딜러가 아닐 경우 이후 문제가 발생해도 구제받기가 힘들다.

5. 성능상태점검기록부를 보라.차에 대해 잘 모른다면 성능상태점검기록부를 꼼꼼히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성능상태점검기록부와 차량의 상태가 다를 경우 이후에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확실하게 하고 싶다면 카센터같은 곳에서 따로 차량 점검을 받아볼 수도 있다. 보험개발원의 사고이력정보와 차량등록원부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태그:#장한평, #중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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