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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승을 기념하여 찍은 사진.
 첫승을 기념하여 찍은 사진.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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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초에 고향에 반가운 내용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사회인 야구단을 창단하기 위해 동호인들을 모집한다는 내용이다. 야구를 해보기도 했고 좋아도 하는지라, 보자마자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야구단에 참여하는 일이 쉽게 결정할 사안도 아니었다. 우선 몸이 운동을 따라가 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고, 연습과 시합이 있을 때마다 시간을 낼 수 있을지도 문제였다. 그래서 10여 년 전에 사회인 야구를 함께 했던 멤버들과 우선 상의를 했다.

논의를 거친 결과, 40대 올드들 대부분이 구단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서 서른을 갓 넘긴 후배들과 상견례와 회의를 거친 후 곧바로 팀 구성에 들어갔다. 최종적으로 17명의 회원이 야구단에 참여해다.

회원은 연령별로 40대가 8명, 30대가 9명이었다. 40대 회원들은 대부분 사회인 야구를 했던 경험을, 30대 회원들은 경험 대신에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창단총회에서 대표와 감독, 코치는 40대 회원들이 맡기로 하고, 선수들은 30대 위주로 기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팀을 만든 후, 주말마다 야구 연습을 했다. 지금은 매주 경기가 열린다.
 팀을 만든 후, 주말마다 야구 연습을 했다. 지금은 매주 경기가 열린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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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부터 주말마다 모여 팀 연습을 했는데, 30대 회원들 상당수가 야구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감독이나 코치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린 회원들을 지도할 입장도 아니었다. 또, 체력으로도 그들을 능가할 자신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팀 연습을 하는 동안 그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빈자리를 채우는 정도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야구 개막전이 가까워진 어느 날, 두 살 아래 후배가 문득 내게 한마디를 던졌다.

"형, 옛날에 공이 묵직했는데 공 한번 던져보세요. 내가 받아줄게."

정말 서른 즈음에는 공이 빠르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게 10년도 더 지난 옛날 얘기다. 마흔 넷에 배 나온 몸으로 투수라니, 게다가 그동안 공을 만져도 보지 않았는데.

그래도 연습인지라 후배의 요청대로 공을 던져봤다. 그랬더니 후배가 공의 위력이 여전하다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계속 연습구를 던져보니, 점점 투구에 자신이 생겼다. 예상보다 투구를 잘 할 수 있어서 나도 내심은 놀랐다.

첫 경기에서 콜드게임 승리... 하지만 깊어진 팀 내 소외

사회인 야구대회를 알리는 현수막
 사회인 야구대회를 알리는 현수막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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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회인 야구는 더욱 그렇다. 특히, 볼넷으로 누상에 주자를 많이 내보내는 팀은 타선과 수비가 아무리 좋아도 경기를 풀어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볼넷을 내주지 않는 투수진을 가진 팀이면, 실점 위기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투수는 가급적이면 경기 경험이 풍부한 선수를 기용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 4월이 되었고, 서귀포시생활체육야구연합회에서 주최하는 리그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첫 경기 상대는 리그에 참가한 16개 팀 가운데 전력이 강하다고 알려진 팀인데, 그 경기에 난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섰다.

오래전에도 그랬고 나이가 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야구장은 늘 나를 설레게 하고, 마운드는 항상 긴장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 짜릿한 설렘과 긴장감에 중독되어 자꾸 야구를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 긴장된 첫 경기에서 우린 콜드게임 승리를 기록했다. 그리고 첫 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나는 경기 MVP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첫 경기가 끝나고, 우린 승리를 자축하며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런데, 겉으로 환희가 넘치는 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소외가 깊어가는 법. 첫 경기가 쉽게 그리고 빨리 끝나버리는 바람에 교체선수로도 경기에 참여해보지 못한 회원들이 있었는데, 우린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그들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을 잊어버렸다.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 풍경. 지난 5월 27일까지 우리팀은 4승3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 풍경. 지난 5월 27일까지 우리팀은 4승3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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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몇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경기에 출석하는 인원이 점점 줄어들었다. 생업에 쫓겨 출석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경기에 참가하는 인원이 줄어들다보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실책도 늘었다. 그리고 경기 도중 어이없는 실책을 하는 것을 지적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상황도 있었다.

첫 경기에서 잠시 파란을 일으켰던 우리는 조금씩 활력을 잃고 있었다.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린 후배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스스로 경기에 최선을 다해 승리를 일궈야 한다.

지난 5월 27일까지 7경기를 치르는 동안 우리 팀은 4승 3패를 기록했다. 우리는 첫 경기에 낙승하며 다짐했던 우승의 목표는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회원들이 경기장에서 어울리며 중위권에 진입하는 것으로 팀의 목표를 수정했다. 그리고 나는 남은 경기에서 어린 후배들과 살갑게 지내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다.

마흔 넷에 다시 시작한 사회인 야구,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어렵다. 사회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 직업에 쫓기고 처지가 다양한 이들이 모여 뭔가 통일된 행동을 만들어내고, 결실을 만들어내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나?

중년의 뱃살 투수,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랴 후배들 눈치 살피랴 심신이 피곤하지만, 야구를 다시 할 수 있고 젊은 후배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그래도 행복하다.


태그:#사회인 야구,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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