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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충청북도 영동의 산골마을. 나는 집에서 공부하는 열다섯 살이다. 농사에도 손을 보태고, 어머니가 자그마한 산골 학교를 하고 계셔서 그 일도 돕는다.

우리 집에 들어오면 대문을 지나 조금 왼쪽에 녹색 철망이 처져 있고 안에 뭔가 꿈틀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튼실한 암탉 두 마리, 수탉 한 마리.

전부터 닭을 기르고 있었지만, 있던 녀석들은 다 죽거나 잡아먹어서 지금 남아있는 닭들은 작년 봄에 사온 토종닭이다. 집이 산 밑에 있다 보니 족제비, 고양이, 쥐 등 닭과 달걀을 탐내는 동물들이 많아 닭장을 철망으로 둘러놓고, 천장과 바닥까지 잘 단도리를 해놓았다.

날마다 한번 밥을 주러 닭장에 들어간다. 닭들은 굳이 사료를 사다 줄 필요가 없다. 과일 껍질, 익히지 않은 음식찌꺼기 같은 걸 잘 먹는다. 음식물 처리도 되고, 닭똥으로 밭에 거름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닭들은 보고 있으면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닭은 다 '꼬끼오'하고 우는 줄 알았는데, 암탉은 '꼬꼬' 하고 울고, 닭도 달걀 껍데기를 먹는다는 것 등등. 닭들은 특히 볼일을 볼 때 특이하다. 닭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서 볼일을 본다. 말로 설명하자면 단순하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재밌다(아, 사실 닭들에게 표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봄이 오고, 암탉 두 마리가 달걀을 낳기 시작했다. 하루에 두 개씩 꼬박꼬박. 우리 닭이 낳은 달걀을 바로바로 꺼내먹으니 신선하고, 맛있다. 집에 오는 손님들께 달걀로 요리를 해드리거나 삶아드리면 아주 좋아한다. 판매되는 달걀이 아니라 이 좋은 산골에서 나왔다는 생각에,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시중에 유통되는 달걀은 A4용지 만한 곳에 갇힌 닭들이 낳은 것이다. 달걀을 '낳는'게 아니라 '제조'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을 리 없다(최근 이 문제가 이슈화되기도 했다. 덕분에 세계적으로 닭들의 처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달에 병아리를 부화시킬 생각을 해보았다. 잠자는 방 안에 짚을 잘 말아서 편안히 앉을 수 있게 했다. 간혹 달걀을 꺼내러 가면 닭이 앉아있었는데, 알을 낳는 건지, 알을 품는 건지 아리송해서 확신이 안 섰다.

품도록 두었던 알 무더기
 품도록 두었던 알 무더기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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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지지난주 여행을 다녀왔던 지라 달걀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틀 전 아침, 여러 일들로 다른 생각을 하며 대충 밥을 주고 나왔는데 뒤에서 '삐약삐약'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조그마하면서 동글동글 몽실몽실한 여덟 마리의 병아리들이 껍질 속이 답답했던지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엄마~ 병아리 나왔어!"
밥통을 던져두고 어머니한테 기쁜 소식을 전해주려 달려갔다.
"우와. 신기하네."
"실하게 생겼지?"

 자꾸 어미닭이 병아리를 가리네, 정말 열심히 찍었는데
 자꾸 어미닭이 병아리를 가리네, 정말 열심히 찍었는데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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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다. 자연적으로 부화된 병아리들이라 그런지 걷는 속도도 빠르고, 단단해 보였다. 만져보고 싶었는데 너무 빨리 달려서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귀여운 것들이 앞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 피곤함이 싹 가시면서 하루가 즐거워졌다. 길을 걷는 애기들도 병아리로 보이고, 머릿속이 온통 노란 색이다.

어제까지 없던 생명이 내 앞에 있다는 게 꿈만 같다(가끔 세상이 우리에게 이런 이벤트도 주어야 삶이 살고 싶을 것 같다). 산짐승들이 병아리를 가만히 놔둘지 걱정이 앞선다. 옛날에 고양이가 닭장 안에 들어가서 병아리를 휩쓸고 간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 긴장해야겠다.

아, 드디어 여덟 마리 다 담겼다
 아, 드디어 여덟 마리 다 담겼다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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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들이 지금은 조그맣지만 나처럼 건강하게 자라서 큰 닭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네 살 학생기자입니다.



태그:#병아리, #닭, #부화,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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