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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을 무조건 두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자긍심을 잃고 시나브로 월급쟁이가 되가는 이유를 함께 고민하자는 이야기다. 사진은 영화 <완득이>에 나오는 담임 교사 '동주'. 완득이에 관한 그의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교사들을 무조건 두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자긍심을 잃고 시나브로 월급쟁이가 되가는 이유를 함께 고민하자는 이야기다. 사진은 영화 <완득이>에 나오는 담임 교사 '동주'. 완득이에 관한 그의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 유비유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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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은 대한민국 스승의 날이자,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입니다. 2012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교사로서 참담함과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승의 날을 거부합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하면, 학생들이 그동안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일 테지만 저는 학생들에게 감히 고마움을 받을 자격이 없기에 스승의 날을 반납합니다. 그동안 저는 이 땅을 살아가는 교사로서 밥벌이를 위하여, 비겁함과 두려움 때문에 학생들에게 무수한 거짓말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늦게나마 이제라도 제가 교사로서 살아오면서 해 온 거짓말들과 비겁한 행위들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첫째, 저는 제가 만나는 학생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첫해에 만난 학생은 학급 문집의 시에서 '학교는 감옥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그 시를 학급 문집의 제일 첫 장에 실으면서도 학생의 절박한 외침은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시간의 학습 노동을 학교에서, 학원에서, 집에서 학생들에게 강요, 강제하고 학생들은 고통스러워하지만 저는 모르는 척 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그것들을 저는 '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당신들의 미래'를 위함으로 그렇게 침묵하고 때로는 독려했습니다. 당신들이 인간으로서 노동과 학습의 자유를 가지고 있음을, 배움의 기회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며 원하지 않는 나의 수업은 거부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저는 학생들이 서로를 친구가 아닌 '적'으로 느끼도록 만들었습니다

잔혹한 입시 전쟁과 생존 경쟁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저는 늘 '협동하자, 배려하자, 함께 살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말은 일제고사 앞에서, 대입 수능 앞에서, 정규직 취업 시험 앞에서 무력함을, 허구임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습니다. 협동학습을 하고, 인권교육을 하려고 애를 써보아도 일등부터 꼴등까지 학생들은 스스로 이미 줄을 세우고 있었고, 그 줄 안에서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절망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셋째, 저는 학생들에게 공부만 하면 다 잘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일류대를 나와도 취업을 못하는 현실,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이며 짱돌을 들 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는 차마 당신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재능 노조 사람들이, 콜텍 노동자들이 어떻게 오랜 기간을 투쟁해오고 있으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22번째 죽음에 대해서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쓰러져간 사람들에 대해서도 당신들에게는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학습 노동에 지친 당신들에게 '그래도 대학가면', '그래도 공부 열심히 하면'이라는 마지막 희망마저 벌써부터 빼앗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고, 앞으로 당신들의 미래일 수도 있다고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만 잘 산다고 해서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서로가 연대하고 협동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이미 서로가 적이 되어버린 교실에서는 허구에 불과했습니다.

넷째, 평화를 말해왔지만 평화로운 학교,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폭력에 길들여진 사회에서 평화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교사가 되어서 체벌하지 않는 교사가 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 봅니다. 다른 교사가 당신들을 체벌하는 것을, 학원에서는 학원 선생님이, 집에서는 부모님이 때로는 길에서 어른들이 당신들에게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을 막는 것은 혼자서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는 가르쳤으면서도 총을 들고 군대에 가야 하는 것을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당신들에게 병역거부도 인권이라고, 기성세대로서 대체복무제를 아직도 만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전쟁에서 인간들이 서로를 죽이는 것은 마치 별개의 일인양 그렇게 모르는 척 했습니다.

다섯째, 저는 학생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때로는 이 나라의 정부와 군대와 경찰이 우리들을 함부로 죽이고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진지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평택 대추리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터에서 어떻게 쫓겨났으며, 용산 참사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이며, 쌍용자동차 노조가 어떻게 탄압을 당했는지, 지금 제주도 강정 마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척 그렇게 말입니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했던 무수한 거짓말과 비겁한 행위들을 늦게나마 고백합니다.

'선생님 말씀은 잘 들어야 한다'고 어제도 가르쳤지만, 사실은 그 또한 거짓말임을 이제야 밝힙니다. 제 이야기만 잘 듣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당신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함을, 아니 오히려 저보다는 여러분께 배울 것이 더 많음을 이제는 말하겠습니다.

'나 혼자만 편하게 잘 살면 안 되겠다, 힘든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며 진실한 가르침을 주는 아홉 살 우리 반 학생들에게 더 이상의 거짓말을 정말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교사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 능력이 부족해서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스승의 날'이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괴로운 날입니다. 스승은, 누군가에게 스승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일텐데 저에게는 지금 그런 자격이 없으니까요.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진실만을 말할 수 있는 시대가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와 진리를 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스승의 날을 거부합니다.

2012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한국 스승의 날
교사 박지선


태그:#스승의날, #세계병역거부자의날, #양심교사선언, #스승의날거부, #교육불가능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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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부족해서 공부를 먆이 해야하지만, 앞으로 교육 관련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신자유주의와 관련하여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학교 현장 및 교육 관련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이 묻혀서 소리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낍니다. 또한,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폭력들에 대하여 더이상 눈 감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시민기자를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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