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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 <건축학개론>이 개봉한 후 우리 사회에 '90년대' 열풍이 일었다. 삐삐가 유일한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드라마 <질투>와 <모래시계>가 감성을 자극하던 그 시절 말이다. 잠시 잊고 지내왔으나 언제라도 꺼내보면 아릿하게 저며오는 추억의 그때. 이 기사들과 함께 그때를 떠올려 보시라. 비단 설레게 했던 첫사랑 뿐 아니라 당시의 추억이 '뭉게뭉게' 피어오를테니까. [편집자말]
삐삐? 그게 뭐야?

삐삐를 처음 본 건 95년도 고2 어느 날 야간자율학습 시간이었다. 그날도 여전히 선생님 눈을 피해 밀려오는 잠을 청하고 있는데 옆의 짝궁 녀석이 툭툭 치더니 이상한 물건을 내보이며 이게 뭔지 아느냐는 것이었다. 만보기 같이 생긴 기계였다.

"이게 뭐야?"
"뭔지 몰라? 촌스럽긴. 이게 바로 삐삐라는 거야."

"삐삐? 이름이 뭐 그러냐. 어디다 쓰는 건데?"
"이그. 어디다 쓰긴. 사람들하고 연락하는 거야. 상대방이 여기에다 자신이 받을 전화번호를 남기면 받은 사람은 거기에다 전화를 거는 거지. 목소리도 녹음돼."

"그래? 그래서 누가 이걸 어디다 쓰는데?"
"둔하긴. 요즘 아이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공중전화 박스로 가는 거 안 보이냐? 그거 다 삐삐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가는 거야. 연애의 기본이지."

"아. 연애. 야자 끝나고 어디서 만날 건지 서로 연락하는 거구나!"

 핑클의 이효리가 출연한 삐삐 광고
 핑클의 이효리가 출연한 삐삐 광고

그냥 그러려니 했다. 친구는 소위 반에서 좀 논다는 녀석이었고, 그만큼 연애하기도 바쁜 몸이시니 삐삐는 그냥 연애 하는데 쓰는 물건이려니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럼 연애는 대학 가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내게는 불필요한 물건이겠거니. 다만 녀석 덕분에 야자 쉬는 시간, 왜 많은 아이들이 공중전화 앞에서 줄을 서는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게 모두 삐삐 때문이었구나.

그러나 이런 나의 삐삐에 대한 태도는 97년 대학 입학과 함께 급변하게 되었다. 삐삐가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나만의 번호 

졸업과 함께 구입한 삐삐. 기억하건대 아마도 012로 시작되는 번호였던 것 같다. 끝자리는 집 전화번호 끝자리를 땄을 테니 지금의 휴대폰 번호와 동일했을테고.

삐삐가 생기고 나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으니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을 처음 만나고 사귀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삐삐번호는 필수 정보가 되었다. 이름과 주소, 그리고 삐삐번호가 각자의 다이어리 주소록에 빼곡히 적히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시 상대방의 집 전화번호 대신 삐삐번호를 적는다는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것은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나 내가 나만의 번호를 갖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에게 그 어떤 이의 간섭도 거치지 않은 채 직접 연락할 수 있다는 사실.

따라서 삐삐는 갓 대학에 들어간 나를 포함한 이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언론에서는 90년대 초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낸 우리들에게 X세대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는데, 삐삐는 그런 X세대들의 개인주의 성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약속이 가벼워지는 만큼 집단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세대가 탄생한 것이다.

그 결과 캠퍼스의 가장 큰 변화는 학생운동의 약화 혹은 소멸이었다. 물론 당시 학생운동은 결정적으로 DJ의 정권교체와 96년 연세대사태 후 등장한 비운동권 총학의 득세와 함께 위기를 겪게 되었지만, 이는 학생운동 등을 통해 집단적인 사고에 익숙한 90년대 초 학번들과 달리, 조금 더 풍요로웠던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던 90년대 중후반 학번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삐삐를 가지고 다니며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했던 이들이 대다수였기에 학생운동은 이전의 원동력을 잃은 것이다.

삐삐는 단순한 연락수단이 아니었다. 삐삐는 곧 독립된 개체로서의 나를 의미했고, 동시에 나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주요 수단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삐삐의 연결음과 멘트 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야말로 나를 축약적으로 가장 명확히 설명해주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삐삐 멘트를 어떻게 남겼는지, 연결음에 무슨 음악을 깔았는지가 그 사람을 아는 기준이 된 것이다.

"오늘은 음성사서함 비워둘게요"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수단으로서의 삐삐. 그러나 대학교에 올라와 처음 가지고 다닌 삐삐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난 삐삐를 가지고 다님으로써 생전 처음 구속감을 맛봐야 했으며, 내가 지금 삐삐라는 문명의 이기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뉴 메시지가 울리기를 바라는 한심스러운 나의 모습.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삐삐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삐삐의 음성녹음 기능 때문이었다. 10개 정도로 발신자의 목소리를 남길 수 있는 삐삐의 기능. 그것은 특히 처음 사랑을 시작하고자 하는 내게 최고의 기능이었다. 편지지 대신 수화기에, 연필 대신 나의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삐삐.

대학교 2학년 어느 날. 그날도 난 친구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필름이 중간 중간 끊겨 그 다음날 아침에 생각나는 거라곤 귀가 중 어느 공중전화 박스에서 누군가에게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해서 남겼다는 사실. 누구한테 전화를 걸었지? 삐삐를 친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한 거지? 실수를 한 건 아닐까?

그렇게 쓰라린 배를 움켜쥐고 해장을 하며 머리를 썩이고 있는데 저 멀리서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여자 후배가 내게로 걸어왔다. 캠퍼스의 봄, 그녀의 새내기 시절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차마 좋아한다고 고백하지 못했던 그녀였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네는데, 갑자기 그녀가 빙긋이 웃으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선배, 잘 들었어요."
"응? 뭘?"

"음성 메시지요. 제가 5개를 장기 저장해서 5개까지 밖에 녹음 못 하셨더라고요.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오늘은 10개 다 비워둘게요."
"…" 

순간 얼굴은 빨개졌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결국 내가 전화 걸었던 이가 그녀의 삐삐였으며, 난 그녀의 음성 메시지 함에 술에 취한 채 취중진담을 하고, 녹음이 끊기면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그랬던 것인가.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고백 아닌 고백을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당시에는 부끄러웠지만 그 결과 후배와 나의 사이는 더욱 가까워졌다. 내가 군대를 가고 하는 바람에 사귈 시간은 없었지만, 어쨌든 난 그렇게 얼떨결에 그녀에게 고백했으며, 그녀는 그런 나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삐삐의 음성사서함 덕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이다.

비록 나의 경험을 예로 들었지만, 당시 삐삐의 음성사서함 기능은 실로 획기적이었다. 그것은 마치 쓰다 만 편지지의 느낌이었다. 밤새 우수에 젖은 감성으로 녹음했다 지우고, 녹음했다 지우고. 혹여 기다리던 이의 목소리가 삐삐를 통해 들릴 때면 그날은 너무 설레 잠도 자지 못할 지경이었다. 전화해서 무한 반복 듣기.

이런 삐삐에 대한 달콤한 추억 때문일까? 난 99년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처음 휴대폰이라는 것을 접했을 때 매우 부정적이었다. 삐삐는 시간차를 둠으로써 음성을 남긴 이나 기다리는 이 모두 설레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휴대폰은 바로 통화함으로써 그와 같은 설렘을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한 것이다. 삐삐보다 편하기야 하지만 왠지 삐삐보다 덜 낭만적이고 천박한 듯한 휴대폰.

제대 이후 휴대폰의 폭증과 함께 삐삐는 어느새 구식 물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삐삐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그때 그 시절 추억과 함께.


태그:#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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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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