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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멘탈 붕괴)."

 

총선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느라 약속을 취소해야겠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후배는 '총선 결과 충격으로 쉰다'는 알림을 날리고 셔터를 내리기도 했죠. 야권 지지 성향의 적잖은 유권자들은 이렇게 2주간의 총선 후유증을 앓고 있는 중입니다.

 

4·11 총선이 끝난 지 벌써 보름이 돼 가지만 적잖은 유권자들은 아직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트위터에 떠도는 말처럼, '멘붕' 상태인 걸까요? 국민들이 정말 잘 만들어 놓은 밥상을 민주-진보 정치인들이 제 발로 걷어찬 꼴이 됐으니 국민 다수가 속앓이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선 "고작 뭐 이만한 일로…" 하면서 센 척하지만, 그들도 속으로는 충격이 적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민주통합당] 거리로 나선 문성근... 이해찬·박지원 담합?

 

이번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한명숙 대표가 사임한 민주통합당은 문성근 대행 체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로 경청 투어를 다닙니다. '백만민란' 그때처럼 그는 거리에서 시민과 만나고 있습니다. 일정은 거의 선거운동 기간과 맞먹습니다. 

 

이를 두고 당내 일각에선 "3주짜리 대표가 뭘 그리 많은 일을 하려고 하시나"라며 냉소를 보냅니다. 그러나 문 대표는 그런 소리를 듣는지 못 듣는지 중단 없이 더 많은 시민과 만나려고 노력합니다. 이번주엔 서울을 벗어나 부산과 청주, 춘천과 원주에도 갑니다.

 

대체 그는 무슨 작정을 하고 이렇게 사람들과 만나고 다니는 것일까요? 차라리 욕을 많이 먹더라도, 차라리 시민들에게 욕을 먹고 푸대접을 받는 게 속은 더 편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가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다니는지 적이 궁금합니다.

 

문 대표의 민심투어와 달리 민주통합당 안에서는 원내대표 선거가 한창입니다. 내달 4일 치러지는 원내대표 선거에는 4선의 호남 출신 이낙연 의원과 3선의 전병헌 의원과 박기춘 의원이 도전장을 냈고, 25일 오전엔 유인태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신계륜 의원은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고, 박영선 의원도 원내대표 불출마를 선언했죠. 박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원내대표 출마 권유를 하신 분들이 많아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지금은 민주통합당이 국민의 소리를 듣고 자성하며 제 입장에서는 충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불출마 사유를 밝혔습니다.

 

한데, 이 와중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생겼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의 제안입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25일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만나 "친노무현계와 비노무현계가 싸우지 말고 투톱체제로 가자"며 "원내대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딱히 구도가 형성되지 않는 원내대표 선거였지만, 이렇게 '담합'하는 것에 일반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무엇보다 당내 의원들간에는 "대통령도 낙점하겠다는 것이냐"며 반발하는 분위기입니다. 전병헌 의원은 26일 오전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이해찬과 박지원의 원내대표 합의는 민주당에 독이 되는, 국민보기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밀실에서 나눠먹기식 야합을 하는 것은 총선 민심에 역행하는 꼴"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대명천지에, 그것도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리겠다면서, '국민참여경선' 등을 도입했던 민주통합당의 '혁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쌍팔년도 구태정치인 '야합정치'까지 출몰했으니 입을 다물지 못할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목전에 둔 원내대표 선거뿐 아니라 6월 9일로 예정된 당대표 선거 준비도 물밑에선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그리고 486 정치인 그룹인 '진보행동'에서는 우상호 전 전략홍보본부장이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당대표선거가 벌써 3파전 양상이 되는 건가요? 그밖에 또 어떤 분들이 당권에 도전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윤곽이 드러난 것은 이 정도입니다.

 

대선도 숨가쁘게 돌아갑니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24일 정오까지만 해도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사임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회의 이후에는 '노무현 대통령 3주기 탈상'에 해당되는 5월 23일까지 직무를 계속 맡아 진행하기로 했지요. 탈노무현 행보가 아니라는 점도 꼭 알아달라는 당부도 이어졌습니다. 늦어도 5월말엔 '문재인의 구상'이 드러나는 대선출마 출정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대선을 위해 총선마저 불출마했던 손학규 대표는 지금 유럽순방 중이고, 서울 강남을에서 낙선한 정동영 상임고문도 향후 대선 문제를 깊게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몸살... 차기 당권 물밑 작업

 

민주통합당이 차기 당권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총성을 벌이는 사이,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무려 13석이나 얻었지만, 선거 후유증을 가장 세게 앓는 정당인 셈입니다.

 

물론 이번 부정선거 의혹은 갑자기 불거진 사건이 아닙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선거 초반부터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빚어진 '소스코드 열람'은 향후 당의 심각한 '계륵'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요. 그러나 당내에서는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는 예측 못했던 모양입니다.

 

당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중앙일보>를 통해 기사화된 이청호 부산 금정구의원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이 상당히 거셉니다. "조중동 아가리에 먹잇감을 처넣으니 만족스럽냐"는 힐난부터 "해당행위 첩자"라는 비난까지 개인적으로 견디기 힘든 모욕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집니다.

 

통합진보당은 애당초 이 문제와 관련해 조준호 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꾸렸고, 늦어도 5월초까지 조사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20일 '당 비례대표 선거 부정의혹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제기된 의혹에 대한 검증과 함께 투표 과정에 대한 진상을 책임 있게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5월초 1차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며,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문제가 있었다면 당원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철저하고 책임있는 진상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 등 불필요한 언행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도 곁들였습니다.

 

당내에서는 이번 조사 결과가 나오면 어느 선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놓고 갑론을박 중인 것 같습니다. 실제 이번 부정선거에 가담한 혐의가 있는 사람들의 당직 박탈 및 출당은 물론이고 당 중앙선관위위원장인 김승교 변호사의 해임, 공동대표단 사임까지 총체적으로 당 지도부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항래 통합진보당 정책위 공동의장은 지난 21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부정선거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당연히 공동대표단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통합진보당에 다시는 이런 부정선거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당내 선거관리규정 등도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가운데,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은 지난 23일 '당 비례대표 투표과정에 대한 의혹제기 관련 대표단 회의 결과'를 통해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을 중심으로 원활하게 조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한다"며 "이번 주내로 신속하게 1차 조사를 매듭짓고 다음주 중에 당원과 국민들께 책임 있게 조사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통합진보당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온-오프 상에서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전부 해명하고 해소해 드릴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습니다. 5월초 통합진보당이 어떤 조사결과를 내놓을지 벌써부터 주목됩니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24일 오후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지도부 선출 일정과 당헌 개정안에 대한 설명에 나섰습니다. 차기 당 지도부를 어떤 절차로 뽑게 되는지, 당권과 대권 분리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부정선거 의혹은 부정선거 의혹이고, 당내 일정은 당내 일정대로 추진하는 것 같습니다.

 

뻥 뚤린 국민 마음... 야권 행보에 시큰둥한 이유

 

이처럼 민주통합당은 민주통합당대로, 통합진보당은 통합진보당대로 각기 정해진 정치 일정을 밟고 있는 중입니다. 적어도 이번 총선 이후 보름간 국회 정론관에서 벌어진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연결하면 대략 이쯤 되는 것 같습니다.

 

민주-진보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정권교체'를 주장하며 '대선승리'에 대한 말의 성찬을 벌이지만, 정작 국회 안의 정치인들은 당면한 원내대표 선거와 당권경쟁에 더 열을 올리고 누가 되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통합진보당은 부정선거 의혹이 어디까지 튈지 여론에서 얼마나 질타를 받게 될지 어느 선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지 여론의 눈치를 살피고 있습니다. 당내에선 "당권파가 납작 엎드린 상태"라는 말도 나옵니다. 동시에 차기 당권과 대권 도전 시나리오가 작성되는 분위기입니다.

 

저마다 바쁜 정치일정을 보내느라, 정작 중요한 국민은 안중에 없어보입니다. 정치인들에게는 표가 눈앞에 있을 때만 국민이 중요한 것일까요? 원내대표선거를 준비하는 정치인들은 유권자인 19대 당선자들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그들이 유권자니까요.

 

전부 '자기 정치'에 바쁘니, 평소 그토록 강조했던 '진보의 재구성'이나, 민주통합당의 정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은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또, '무엇으로 정권교체를 할 것인지' '정치교체는 어떻게 할 것인지'조차 생각지 않은 채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2007년 12월 이명박 정부가 탄생한 뒤, 자성과 성찰을 기반으로 한 '진보의 재구성' 논의는 '혁신과 통합' 의제로 옮아갔지만, 결국 한국정치가 혁신한 것은 무엇이고 통합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짚어보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MB정권 심판론에 열을 올리고 각을 세우지만, 누구 하나 허탈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는 정치인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가 나온 뒤, 한 후배는 회사 게시판에 20년 전 박재동 화백의 만평을 올렸습니다. 가슴이 뻥 뚫린 사람들의 출근길을 다룬 그림이지요. 국민의 가슴은 뻥 뚫린 상태인데, 그 뻥 뚫린 가슴을 채워줄 진심어린 정치인은 어디 있는 것일까요?

 

킬러 콘텐츠 없이 시간 허비... 민주진보정치의 오늘

 

야권의 정치인들은 24일부터 또 다시 'MB심판론'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국회 본청 계단에 모여 집회도 열었습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즉각 구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래도 국민들은 시큰둥합니다. 왜일까요?

 

이 즈음, 문용식 민주통합당 SNS위원장은 당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습니다. 그는 25일 뉴스레터를 보내 "반성없는 민주당의 행태가 참으로 가관"이라며 "역사적인 참패를 당하고도 정신차릴 기미가 안보인다"고 걱정했습니다. 

 

이어 문 위원장은 "모두가 계파논리에 빠져 있다"며 "친노는 어떻고, 호남은 어떻고... 486은 어떻고... 참으로 반성할 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이라고 일갈했습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얻어야 할 교훈을 단 하나만 들겠다"며 "국민들의 반MB 정서에만 의지해서는 안 되고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할 비전과 구체적인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문 위원장의 말처럼 '도대체 야권이 어떻게 MB심판을 할 것인지' 그 대안을 보여달라는 것 아닐까요? 세력만 규합할 게 아니라, 어떤 의제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감동을 줄 것인지? 언제까지 의제설정도 못한 채 킬러 콘텐츠조차 없는 상태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인 것일까요? 여러분은  '민주진보 정치의 오늘'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태그:#멘붕, #총선패배,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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