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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한국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됐다. 그동안 강행군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물갈이로 학생들은 피로가 누적돼 웬만한 구경거리가 아니면 감탄을 하지 않는다. '여행 피로증'이랄까. 적응이 돼서 괜찮다는 학생이 대부분이지만 투덜거리는 학생도 몇 명 있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밀린 빨래를 시키고 푹 쉬라고 했다.

 

아직도 일탈을 꿈꾸는 몇 명의 학생과 볼게 없다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은 중요하다. 일행은 히말라야 산행에 대비한 행군 훈련에 나섰다. '강가' 강을 끼고 숙소인 람 줄라에서 락시만 줄라를 돌아오는, 정말 아름다운 코스다.  입을 열지 않고는 한시도 견디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들로 하여금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을 뒤돌아보는 침묵수행을 하게 했다.

 

출발지에서 5㎞ 구간에서는 긴급 상황이 아니면 일체의 말을 금지시켰다. 만약 이를 어기면 1㎞씩 행군거리가 늘어난다는 협박까지 했다. 처음에 힘들어 하던 학생들은 3㎞쯤부터는 체념하고 잘 따라왔다.

 

경훈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매년 8박 9일간 지리산 종주를 한다.

 

"선생님, 처음에는 다 힘들어 하지만 체력의 한계점을 넘으면 깨달음이 와요."

 

"즐거운 방학기간을 접고 인도까지 와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학생들에게도 깨달음이 오기를 빈다. 락시만 줄라의 목적지에 들러 "잘했다"는 칭찬과 더불어 얼어붙은 그들의 마음도 풀어줄 겸 강변으로 내려갔다. 마침 래프팅을 시작하는 캠핑장이다. 따끈한 짜이를 마시며 강변의 돌과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구경하다 캠핑장 주인과 예정에 없던 래프팅을 약속했다.

 

예정에 없던 래프팅과 축구시합으로 분위기 반전

 

심드렁했던 아이들은 "와! 신난다!"를 외치며 단박에 힘을 낸다. 게스트하우스 주인과는 리쉬케쉬 조기축구클럽과 시합을 하기로 약속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래프팅과 축구시합을 한다는 소리에 학생들의 분위기가 금방 살아났다.

 

래프팅을 시작하는 곳은 물이 깊고 물살이 빨라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위험지역이다. 우리는 래프팅 가이드한테서 "안전이 최선"이라는 주의사항을 듣고 래프팅을 시작했다.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히말라야의 물이 일으키는 급류와 소용들이에 휘말린 보트가 곧 뒤집힐 것 같아 소리를 지르는 사이 남진이가 물에 빠졌다. 하지만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절대 당황하지 말고 가이드가 구조 조치를 할 때까지 가만 있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방 보트에 노로 물장구를 치며 즐거워하던 일행이 중간에 내려선 곳은 다이빙코스가 있는 자그마한 절벽. 높이 5m밖에 안 돼도 겁먹어 꽁무니를 빼는 여학생들을 보며 즐거워하던 남학생들은 공중에서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기도 했다.

 

리쉬케쉬 조기축구회원들과 친선 축구시합, 히딩크 스코어로 지다

 

장거리 여행으로 지친 남학생들은 틈만 나면 축구얘기를 하며 공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등에 올려놓고 묘기를 부린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축구보다는 크리켓을 선호한다. TV에서는 매일 크리켓 중계를 하고 공터만 있으면 크리켓 시합에 열중이다. 중고등학생과 교사 2명 포함, 11명이니 조그만 동네 조기축구팀 정도는 가볍게 이길 줄 알았다.

 

약속된 날이다. 평소에 늦잠을 자던 학생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장으로 나왔다. 약속된 운동장에 가니 동네 사람들까지 여러 명 나왔다. 심판을 보는 내가 호각을 불자 시합이 시작됐다. 축구화와 복장까지 갖춘 그들은 발이 척척 맞았고, 우리 팀은 교사 2명과 고등학생 몇 명을 제외하곤 그들과 대결이 되지 않았다. 쉴 틈 없이 날아오는 슛을 몇 개나 막아낸 건 골키퍼 도하의 수훈이다.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달리고 조직력에서 떨어진 일행은 결국 히딩크 스코어인 5대0으로 졌다. 안타까운 건 김성주 교사와 누리팀 학생 대표인 서남진군의 슛이 크로스 바를 맞고 튕겨 나가 버린 것. 약속대로 아침을 사고 짜이를 먹으며 조기축구팀 대표인 '나리 램(Nari lamb)'과 즐거운 담소가 시작됐다. 그는 현직 경찰관이었다.

 

"인도인은 축구보다 크리켓을 좋아하지만 나는 크리켓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크리켓은 경기가 연속되지 않고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요. 이 운동장에서 두 달 동안 크리켓 경기가 있었는데 어제 저녁에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축구 골대까지 세웠어요. 나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박지성을 압니다.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까지 간 것도 알고요. 아무튼 재미있었고 행복했어요. 다음에 다시 리쉬케쉬를 방문할 때 다시 한 번 시합 합시다."

 

학생들은 그들을 너무 몰랐고 자신들을 과신했던 것이다. 누리팀 학생대표인 서남진군의 경기 소감이다.

 

"처음에는 정말로 게임도 안 될 줄 알았는데 인도 사람들이 생각보다 팀플레이도, 헤딩도 잘 했어요. 마지막 5:0으로 휘슬이 울렸을 때 창피했어요. 5:0으로 이기겠다고 큰소리 뻥뻥 쳤는데…. 하지만 비록 엄청나게 깨지긴 했지만 서로 살아온 방식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축구를 통해 뭉쳐졌다는 것이 신기하고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너무 즐거웠습니다. 아! 축구화만 있었더라면…."

 

리쉬케쉬 마지막 날이다.  일행은 히말라야 트래킹에 대비해 2000미터 높이의 '카야르키' 마을을 방문했다. 20여 가구가 사는 마을은 한 번도 외지인이 방문하지 않아서인지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손을 흔든다. 동네에서 떨어진 뒷산에는 밤에 호랑이가 출몰하기도 해서 밤이면 밖에 나다니지 않는다는 동네 사람의 말을 들으며 산위에서 아름다운 리쉬케쉬의 경치를 바라본다. 참! 아름답다. 인도여행 중 몇 번 만난 여승이 이웃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러 학생들에게 강의를 부탁했다.

 

"여러분 자신을 낳고 키워준 부모님과 이웃들에게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씀드려 본 적이 있어요? 없으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 보세요. 그보다도 지금 한 말을 자기 자신에게 해 보세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남도 사랑합니다."

 

"교회 다니기 때문에 불교는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감명 깊었다"는 한 학생의 소감도 있었지만, 강의 중에도 여전히 딴 짓을 하고 있는 학생을 보며 스님의 귀한 말씀이 그 학생에게도 새겨지길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리쉬케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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