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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5일 오후 서울 금융위원회, 서울역 등 도심 곳곳에서 3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99%행동준비회의> 주최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다(Occupy 서울)' 집회가 열리는 가운데, 오후 6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기로 한 집회가 경찰 봉쇄로 불가능해지자 참가자들이 광장 부근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청년들의 힘든 삶을 표현하기 위해 일명 '박스고시원'에 들어가 있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15일 오후 서울 금융위원회, 서울역 등 도심 곳곳에서 3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99%행동준비회의> 주최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다(Occupy 서울)' 집회가 열리는 가운데, 오후 6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기로 한 집회가 경찰 봉쇄로 불가능해지자 참가자들이 광장 부근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청년들의 힘든 삶을 표현하기 위해 일명 '박스고시원'에 들어가 있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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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신촌 외각의 작은 건물 3층.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6평 남짓한 방에 들어서자 벽면을 빼곡히 메운 옷걸이가 눈에 띈다. 한쪽 벽에는 싱크대가 붙어있고, 오른쪽의 싱글 침대 밑 바닥에 이불이 깔려 있다. 하나뿐인 앉은뱅이 책상 위에는 화장품과 전공서적이 빽빽히 놓여 있다. 서강대 학생 고아무개(24)씨가 같은 학교 학생과 함께 사는 집이다.

이 비좁은 원룸에서 고씨가 살며 내는 돈은 월 15만 원. 보증금은 없다. 1인용 월세방에 집주인 몰래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월 35만 원을 내고 원래 이 집에 살고 있던 학생이 룸메이트를 구했고, 마침 이사를 고민하던 고씨가 함께 살게 됐다.

고씨가 내는 15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월세와 공과금, 보증금은 모두 원래 입주해 살던 학생이 낸다. 고씨는 돈을 적게 내는 만큼 옷걸이를 한쪽 벽면만 쓰고, 바닥에서 자기로 합의를 봤다. 다행히 룸메이트인 언니가 매일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고 수업도 오후에 있는 터라, 아침 수업 위주로 시간표를 짠 고씨와 생활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 이들과 같은 '룸메이트족'이 20대 신 풍속도로 자리 잡고 있다.

기숙사-고시원-하우스메이트 전전한 고씨

고씨는 "지난 4년간 이사를 몇 번이나 다녔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제주도 출신인 고씨는 지난 4년간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주거 형태를 거쳤다. 처음 2년 간은 학교 기숙사에 살았다. 기숙사비는 한 학기에 120만 원으로 그리 비싸지 않았지만 4인 1실인 탓에 사생활을 전혀 보장받을 수 없었고, 2층 침대 위에 앉으면 허리조차 제대로 펼 수 없었다. 게다가 식사의 질이 낮고 통금 등 지켜야 하는 규칙이 엄격했다.

기숙사를 나온 고씨는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고시원도 여럿이 함께 생활해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무엇보다 월세 45만 원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고씨는 몇 개월만에 고시원을 나와 '하우스메이트(house mate)'를 구했다. 방 3개짜리 일반주택에 3인이 입주해 살면서 방 크기 순으로 월세를 부담하는 것이었다. 가장 큰 방을 쓰는 세입자가 집주인과 반전세로 계약을 맺고 나머지 두 방을 세놓는 식이었다.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의 좋은 조건이었지만 고씨는 또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집이 워낙 외진 곳에 있어 치안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씨는 "집 주변에서 지난 학기에 두 번이나 성추행을 당할 뻔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지난 겨울 내내 집을 구하러 다녔지만 하우스메이트식의 집은 대학가에 흔치 않았다. 대부분의 원룸은 보통 보증금 5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 가량에 월세 50만 원 안팎이었다. 하숙 역시 보증금만 없다 뿐이지 시세는 다르지 않았다. 결국 고씨는 좁고 불편하지만 경제적인 '룸메이트족'의 길을 택했다.

"주거권도 교육권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고씨는 이번 해부터 정부가 시행하는 '대학생전세임대주택'을 신청하려고 했으나, 자격요건이 워낙 까다로워 그만뒀다. 대학생전세임대주택에 당첨되어도 조건에 맞는 전셋집 찾기가 쉽지 않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경우 수도권은 7000만 원까지 전세비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대학가에 전세 7000만 원 이하의 집은 드물다. 게다가 집주인들은 월세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지난 2010년 '집을 찾는 달팽이'란 모임을 만들어 대학생들의 주거실태를 고발하고 주거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후 이 모임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모여 2011년 5월 '민달팽이 유니온'을 출범시켰다.

이 모임의 창립멤버 구민정(24)씨는 "연대 기숙사 수용률이 전체 학생 2만 명의 5% 밖에 안된다"며 "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한국 대학생은 집이 없는 민달팽이다"라고 말했다.

'집을 찾는 달팽이'의 초창기 목표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주거권' 개념을 공론화시키는 것이었다. 집을 찾는 달팽이는 서대문구 구청에 대학생 주거 실태를 보고하고, 정식으로 대학생 공공임대주택을 설립해줄 것을 요청했다. '집이 없으니 학교에서 자겠다'며 텐트를 치고 학교에서 자는 시위성 행사를 통해 학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집을 찾는 달팽이의 활동 덕에 연세대는 새 기숙사 설립을 건물 증축 계획에 포함시켰다.

지난해 5월 출범한 민달팽이 유니온은 교내 생활협동조합과 함께 '민달팽이 장학금'을 신설해 주거환경이 열악한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구씨는 "대학가 주변 집세가 너무 비싸 방을 같이 쓰는 룸메이트족이 늘고 있는데도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턱없이 미흡하다"며 "주거권도 교육권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룸메이트족, #민달팽이 유니온, #대학생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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