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작년 한 해 전국을 들썩이게 한 영화 <도가니>의 실제 배경이 된 광주 인화학교 사건,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고 하여 공소시효를 늘리거나 형량을 높이는 등 정부와 정치권에서 온갖 대책들을 내놓고 법과 제도를 바꾸겠다고 소리 높여 외쳐댔습니다. 아울러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무총리실 중심으로 정부종합대책이 마련되고 전국의 특수학교와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인권실태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영화 <도가니>로 인한 우리들의 분노는 이들에 대한 피해구제와 근본적인 문제해결로 이어진 걸까요? 하지만 광주 인화학교 사건은 완전히 해결된 것으로 어느새 우리들에게서, 언론의 관심에서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합니다.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충동조절장애, 심지어 수시로 자살의 충동을 느끼는 등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끔찍한 성폭력과 상해의 충격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화학교 학생들이 현재를 즐겁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미래를 위한 꿈을 꿀 수 없다면 정부와 정치권에서 외쳐대던 그 어떤 약속도 거짓되고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 이후에도 전국 곳곳에서 제2, 제3의 도가니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울산도가니(메이리청각장애특수학교 성폭력사건), 천안도가니(천안인애학교 성폭력사건), 원주도가니(자신보육원 폭행 및 성적 학대사건), 인천도가니(중증장애인생활시설명심원 노동착취사건) 그 외에도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에서 사회복지서비스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와 시설비리는 서울/지역, 대형/소형, 합법/불법 등과 무관하게 보편적인 현상을 띠고 있습니다.

왜 매번 이 같은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에서는 성폭력과 같은 심각한 인권침해와, 부식비와 수당 등을 횡령하는 시설비리가 끊이지 않는 걸까요? 이런 사건이 속출하는 이유는 정부의 잘못된 사회복지정책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우리사회의 약자들인 노인, 아동, 장애인 등 사회복지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에게 인권(권리)차원에서 이들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지역사회와 고립되고 폐쇄적인 공간인 '시설'이라는 곳에 '수용', '방임·방치'되고 있으며, 이를 대가로 정부와 지자체는 국민의 세금으로 시설운영자에게 운영비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설운영자들은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수급비와 수당 등을 횡령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실정입니다. 이는 마치 유흥업소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삥을 뜯어서' 먹고사는 조폭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광주 인화학교 사건의 피해자들은 가해자 개인에 대한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경찰), 광주시, 광산구청, 광주시교육청 등 정부와 지자체를 상대로 한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합니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은 악질적인 가해자만이 형사처벌되고 돈으로 무마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들이 뻔뻔하게 나쁜 짓을 하도록 조장한 법과 제도를 바꾸고, 이를 방치하고 방임한 국가와 지자체에 대한 책임 또한 무겁게 받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헌법에서는 국가에게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은 가해자 개인과 국가(지자체)가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이 글을 쓴 본인은 물론, 읽고 계신 여러분들도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과 같은 끔찍한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접근과 해결방안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관심과 분노가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이렇게 잊혀져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영화 <도가니>는 상영 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도가니, #사회복지정책, #인화학교, #시설, #장애인
댓글

홈페이지 : cathrights.or.kr 주소 : 서울시 중구 명동길80 (명동2가 1-19) (우)04537 전화 : 02-777-0641 팩스 : 02-775-626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