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베페 그릴로가 쓴 <진실을 말하는 광대> 겉 표지
 베페 그릴로가 쓴 <진실을 말하는 광대> 겉 표지
ⓒ 호미하우스

관련사진보기

<진실을 말하는 광대>를 쓴 베페 그릴로는 이탈리아 사회운동가이자 전직 코미디언입니다. 베페 그릴로에 견줄 만한 한국인은 누가 있을까요?
웃기는 것만으로 비교한다면 전성기 때의 코미디언 이주일 정도를 들 수 있을까요? 혹은 정치적 외압을 받아 방송에서 퇴출당하고 공연을 통해 직접 관객을 만난다는 점은 김제동과 비슷할까요?

베페 그릴로의 닮은꼴로 전직 대통령 추모제 사회를 맡은 후 '괴씸죄'로 방송에서 쫓겨난 김제동을 떠올릴 수 있고,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뿐만 아니라 국민을 향해 권력에 '쫄지 마'라고 선동하는 <나는 꼼수다>를 견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언론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시작된 시사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는 10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진실'을 듣는 새로운 미디어가 되었습니다. <나는 꼼수다>의 성공사례를 따라 수많은 시사 팟캐스트 방송이 잇따라 생겨나는 사상 초유의 현상이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이탈리아에서 '베페 그릴로'는 전성기의 이주일과 지금의 김제동 그리고 <나는 꼼수다>를 합쳐 놓은 것만큼 막강한 인물인 듯합니다. 1987년 방송에서 쫓겨났던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6년 만인 1993년 국영방송 '라이(RAI)'에 잠시 출연하였는데, 무려 1600만 명이 시청하는 경이적인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베페 그릴로, 6년 만의 방송 출연... 1600만 명 시청

이탈리아 코미디계의 간판스타였던 베페 그릴로가 방송에서 퇴출된 이유는 그가 방송프로그램에서 당시 총리였던 크락시를 조롱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체로 유럽 여러 나라들이 대한민국보다는 표현의 자유가 잘 보장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탈리아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이 일로 베페 그릴로는 방송에서 퇴출당하였습니다만, 크락시 총리는 베페 그릴로가 방송에서 퇴출당한 지 불과 6년 만에 이탈리아 정재계인사 3000명이 연루된 부정부패 사건으로 해외로 도주하였다가 결국 튀니지에서 사망합니다.

1993년 정권에 의해 또 다시 방송출연을 금지당한 베페 그릴로는 그때부터 아예 방송 복귀를 스스로 거부하고 매년 100회가 넘는 국내외 공연을 통해서 대중과 만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관객과 직접 만나는 베페 그릴로의 공연은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한 인기를 누리지만 정작 이탈리아 언론들은 모두 외면해버렸다고 합니다. 오히려 호주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그의 정치적 행보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MBC 국제시사프로그램 <W>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젊지 않은 나이지만 블로거로서, 사회운동가로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베페 그릴로가 쓴 <진실을 말하는 광대>는 20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부패추방운동인 V데이 운동(Vaffa-day, <나는꼼수다> 식으로 표현하면 '씨바 데이'쯤 될까?), 물, 환경, 교통, 관계, 성장을 주제로 하는 '파이브스타 운동'과 관련 있는 에세이 혹은 칼럼 같은 글들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전화회사는 흡혈귀?

이 책에 담긴 많은 글 중에 눈에 띄는 글 몇 편을 골라 소개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계 지출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탈리아 역시 전화요금이 터무니없이 비싼 모양입니다.

"휴대전화든지 기존의 유선전화든지 전화 사용료는 모두 무료화되어야 한다. 또 통신사에서 멋대로 지정한 전화요금 역시 반드시 제대로 된 가격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실제 이탈리아의 전화 통화료는 무척이나 비싸다."

그는 '흡혈전화기'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탈리아 텔레콤이 국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와 다름없다고 한 표현이지요. 우리나라 역시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매년 가계 지출에서 휴대전화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끊임없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통신회사의 신기술개발과 신규 투자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기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비싼 요금의 통신기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VOIP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하여 인터넷을 이용한 공짜전화를 사용하고, 부당한 통화료를 몰아내고 통신회사를 무력화시키자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짜 전화 사용법을 더 많은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한국과 닮은꼴 이탈리아, 토건족이 설치는 나라

방송 출연을 금지 당하고 시민들과 직접 만나는 베페 그릴로
 방송 출연을 금지 당하고 시민들과 직접 만나는 베페 그릴로
ⓒ 호미하우스

관련사진보기


2011년까지 총리를 지낸 베를루스코니 총리하의 이탈리아와 MB정부하의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닮은꼴입니다. 이탈리아 총리를 세 번이나 연임한 베를루스코니는 건설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후 총리가 된 후 각종 법규를 개정하여 이태리 전국 미디어의 90%를 장악하고 민영방송사 3사를 소유하였더군요.

대통령 측근이 공영방송사의 낙하산 사장이 되고, 조중동 친재벌, 친자본, 수구언론이 판치는 우리나라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이탈리아 언론이 실시한 엉터리 여론조사를 폭로하는 '깨끗한 에너지 더러운 정보'라는 글도 날카롭습니다.

<라 레푸블리카>라는 일간지가 가스자원의 위기에 관한 글을 쓰면서 시민 여론조사를 하였는데, 그 질문이 가관입니다.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을 유심히 비교하시기 바랍니다.

"가정과 회사에서 에너지 절약을 하는 것이 옳은가?"
"핵에너지를 포함한 대체에너지를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어쩌면 우리나라 조중동하고 이렇게 닮았을까요? 핵에너지가 대체에너지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엉터리 질문을 통해 사람들을 속임수에 빠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엉터리 질문으로 답을 유도하여 국민들이 핵에 찬성한다는 엉터리 여론을 만들어내더라는 겁니다.

국영출판사처럼 운영되는 이탈리아 언론사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세금으로 신문과 잡지를 지원하는 것에도 반대합니다. 총리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우리 상식으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정치운동 조직이 발행하는 각종 신문들에 막대한 세금이 지원되고 있더군요.

"북부 연합당 발간의 정치 일간지 <파다니아> 4백만 유로, 사회주의당에서 발간한 좌파 정치 일간지 <루니타> 6백8십만 유로, 정치가 줄리아노 페라라가 창간한 일간지 <일 폴리오> 3백5십만 유로, 우파 정치일간지 <오피니오니 누오베-리베로 쿠오티디아노> 5백3십만 유로, 가톨릭 일간지 <아베리레> 5백9십만 유로, 좌파 일간지 <일 마니페스토> 4백4십만 유로, 스포츠 경마잡지 <스포츠맨-카발리 에 코르사> 2백5십만 유로 등 셀 수 없이 많다."

이탈이아 국민들은 신문을 구독하지 않아도, 신문값을 내지 않아도 세금으로 이미 엄청난 신문값을 부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신문과 잡지가 세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신문사 사장들이 정치인들의 하수인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결국 이탈리아의 신문사, 잡지사는 모두 국영출판사나 다름없다는 것이 저자의 비판입니다.

자동차 사망사고는 속도에 비례... 속도를 늦춰라

시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베페 그릴로
 시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베페 그릴로
ⓒ 호미하우스

관련사진보기


자동차문화와 관련한 아주 인상 깊은 글이 있습니다. '과속 매우 값싼 죽음의 경제학'이라는 글인데 그는 이탈리아에서 매년, 매일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한 해에 약 7000명의 사람이 이탈리아의 도로 위에서 목숨을 잃는다. 하루로 치면 대략 20명, 정말 충격적인 숫자다. 더군다나 다치거나 영구적인 불구가 되는 사람은 한 해에 약 7만 명에 달한다. (줄임) 최근 30년간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의 숫자는 대략 20만 명에 달한다."

그는 도로가 늘어나는 것만큼 무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 자동차 회사들은 점점 더 빠른 속도의 자동차를 사라고 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속도위반이 가장 큰 사고원인이지만 빠른 속도의 자전거 광고를 규제하거나 제조과정에서 자동차 속도를 제한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자동차에 의한 경제적인 죽음은 전쟁에서의 죽음보다 가치가 없지만, 자동차 때문에 발생하는죽음은 전쟁터에서지뢰를 밟고 죽는 것 보다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시속 220km로 질주하는 뛰어난 성능의 자동차 광고가 끝날 때마다 영안실에는 젊은 시신이 늘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자는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자고 제안합니다. 자동차 속도를 3km만 줄여도 매년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5000~6000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고, 감속으로 얻게 되는 경제적 효과는 자그마치 200억 유로나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내 주행속도가 30km에서 50km로 증가하면 교통사고 사망은 8배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왜 못해봤을까요? 왜 과속에 의한 교통사고의 책임은 운전자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였을까요? 베페 그릴로는 이 글을 통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것은 분명히 정부의 잘못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휴대전화기 '전자파' 계란도 익는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또 하나있습니다. 전자파의 위험을 경고하는 '달걀껍데기 속의 뇌'라는 글에는 가까운 거리에 휴대전화 두 대를 통화 상태로 두고 계란을 올려놓으면 마치 전자레인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몇 명의 과학자들이 실험했다. 먼저 도자기로 된 계란 받침에 날계란을 얹어서 두 개의 휴대전화기 사이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이 전화기들은 서로 통화 상태로 두었다. 처음 15분 동안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25분 후 계란의 껍데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40분 후 계란의 흰자 부분이 익었다. 65분 후 계란이 완전히 잘 익었다."

저자는 휴대전화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이탈리아 사람들의 뇌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데도, 통신회사들은 휴대전화 사용 시 방출되는 전자파의 유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또 30대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였던 프란체스코 대통령은 휴대전화 전자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비꼽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일자리에 관하여 이야기 하면서 젊은이들이 현대판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노동자들 산재는 사고가 아니라 범죄라고 주장합니다. 노동자 안전에 대한 투자는 기업의 이윤을 줄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산재 사망은 곧 자본가들의 소득 증가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2006년 한 해 동안 건설현장에서 죽은 246명의 죽음과 사망원인을 일일이 열거한 후에 차라리 아프가니스탄이나 레바논으로 일하러 가는 것이 덜 위험할 것이라고 풍자합니다.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것에 비하면 은행이나 주요소를 습격하는 것은 위험한 축에도 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광대>는 풍자와 독설로 가득합니다. 베페 그릴로는 블로그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매년 10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대중들과 직접 소통합니다. 이탈리아는 여러모로 우리나라와 닮은꼴이 가득합니다. 특히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명박스러운' 혹은 '2MB' 같은 지도자들이 많은 것은 정말 닮은꼴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베페 그릴로는 세상의 부패와 거짓을 향해 거침없이 독설과 조롱을 퍼붓는 공연으로 뜨거운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 일부입니다.  아쉬운 것은 이탈리아에 대한 부족한 사회 역사적 배경지식, 그리고 문화의 차이, 딱딱하게 느껴지는 번역 때문에 기발한 풍자와 독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광대

베페 그릴로 지음, 임지영 옮김, 호미하우스(2012)


태그:#베페 그릴로, #이탈리아, #나꼼수, #정치풍자, #독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