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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4월 6일 오전 9시 20분]

(중략) 이 지도는 북쪽의 에조(홋카이도)부터 남쪽의 쓰시마, 그리고 조선까지 그려져 있고, 각 지역 간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중략)이 지도는 18세기에 유행한 여행안내도로서 위치가 자세하며 지명과 도로를 상세히 표현했을 뿐 아니라 바닷길도 표시했다. 쓰시마에서 부산까지의 바닷길은 표현되어 있으나, 울릉도와 독도로 추정되는 두 섬으로의 길 표시는 없다.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부분에 표시되고, 일본으로부터의 바닷길이 표시되지 않은 점을 통해 두 섬을 조선의 영역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 <독도 사전>에서

1846년에 이즈마야 이치베에서 초판 제작된 지도 <대일본국순로 명세기대성>을 1850년에 야마자키 규사쿠가 교정, 증보 채색 인쇄한 <개정증보 대일본국순로 명세기대성>(일본, 18x833cm, 개인 소장)에 대한 양보경 교수의 글 중 일부다.

우리나라 최초의 독도사전으로 69명이 공동 집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독도사전으로 69명이 공동 집필했다.
ⓒ 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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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증보 대일본국순로 명세기대성>은 세로 18cm, 가로 9cm 크기의 절첩식 지도로, 이를 모두 펼치면 98쪽, 폭 833cm 크기의 대형지도가 된다.

'서로 접힌 두 쪽이 하나의 번'이 되는 형식으로 1번부터 37번까지 숫자를 매기는 방식으로 일본 35도를 그려 넣고, 나머지 번에는 우리나라와 중국, 쓰시마섬의 지도, <대일본여지지장전도>라는 명칭의 일본 전도를 넣었다. 그리고 앞과 뒤에 발문과 범례를 넣었다.

이중 독도와 관련된 번은 29번 오키와 이즈모인데, 동해란 명칭과 울릉도와 독도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섬 두 개만 그려졌을 뿐, 두 섬에 대한 어떤 명칭도, 이 지도의 큰 특징인 바닷길도 전혀 표시되지 않고, 황색으로 칠한 정도란다.

절첩식으로 만들었는지라 수첩 크기이지만, 모두 펼치면 8.3미터나 넘는 대단한 크기의 지도다. 당시의 지도 제작 환경을 미뤄 짐작해 볼 때 이런 지도를 제작함에 여러모로 신경을 썼을 것 같다. 게다가 이미 제작된 지도의 미흡함이나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여 제작했다. 다시 말해, 실수의 가능성이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지도에 동해란 명칭은 있지만, 울릉도와 독도란 명칭 자체가 아예 없다? 즉, 이 지도는 제작된 1850년 당시 일본인들에게 울릉도와 독도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독도와 관련된 것들만을 모아 엮은 <독도사전>(푸른길 펴냄)에는, 몇 페이지만 읽어도 일제강점기 직전까지 독도가 이처럼 일본에 어떤 존재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고지도나 관련 기록 등이 꽤나 많다.

<가에이연간 동서지구만국전도>(1848년 제작, 이하 연도만 표기)에는 태평양쪽 바다는 '일본해', 동해는 '조선해'로 표기되어 있고 <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1833)에는 일본 부분에 표시되어 있는 경위선이 울릉도와 독도에는 표시되지 않았으며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과 함께 전혀 채색되지 않았다.

사다 하쿠보란 사람이 일본 국가 최고 기관인 태평관의 지시로 '조선과의 국교 재개와 정한(正韓)'가능성을 조사하고자 부산에 왔다가 귀국해 <조선국교제시말 내탐서>를 작성 보고 했다(1870~1875).

그런데 이 보고서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섬이 된 전말'이란 항목이 있다. 제목 자체가 이미 두 섬이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울릉도에 대해서는 기술했지만 독도는 '서류가 없다'며 스스로 기재를 미흡해 하고 있다.

때문일까. 사다 하쿠보가 보고서와 함께 작성한 <개정신전 조선전도>(1875)와 <개정신호 조선전도>에는 독도의 위치마저 불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보고서대로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이미 인정하고 있으며 이 섬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19세기 후반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는 지리 인식이 계승되고 있음을 담고 있는 <관허 일본여지전도>(일본. 나카지마 호. 1872년 제작. 132x86cm.개인 소장)
 19세기 후반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는 지리 인식이 계승되고 있음을 담고 있는 <관허 일본여지전도>(일본. 나카지마 호. 1872년 제작. 132x86cm.개인 소장)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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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고노스케가 조선전기형 지도를 저형으로 경위도를 넣어 제작한 <개정신전 조선전도>(1882)에도 독도를 울릉도 아래에 그렸으나 지명은 없고 <관판 실측일본도>(1870년)에는 독도가 아예 빠졌다. 경위도 표시를 기본으로 제작된 <관허 일본여지전도>(1872)에도 울릉도와 독도 주변은 채색도 되어 있지 않고 경위도 전혀 표시되지 않았다.

이 모든 지도들이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이미 전제로 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독도사전>를 잠깐 넘겨 읽으며 만나는 몇 가지 항목에 불과하다. 1800년대 이전에 제작한 일본의 고지도들과 외국에서 제작된 것들, 우리의 고지도들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셀 수조차' 없다.

"(중략) 다케시마(울릉도)는 조선국 강원도에 속하는 한 소도로 마쓰시마(독도) 서쪽에 솟아 있다. 둘레가 10리 정도로 조선 본토에서 떨어지기를 약 40리, 우리 오키국에서는 100리 남짓 떨어져 있다. 거기서 마쓰시마에 이르는 거리도 다시 40리 정도라고 한다. 다케시마는 조선국 영토로, 우리한테는 요원한 땅에 속한다"

고이즈미 노리시다(1851~1922)는 일본 향토 사학자이자 지방 정치가로 사립 도서관을 창설하여 향토 사료의 수집과 간행에 노력했는데, 그는 1903년에 간행한 <오키지> 후편 제49절에 이처럼 기록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서기관이었던 기타자와 마사노부(1840~1901)의 기록에도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조선령임을 인정하고 있음이 보이는데, 앞서 말한 고지도들처럼 일본의 문서에 독도가 조선령임을 이미 인정하고 있는 기록은 셀 수 없이 많다. 

220쪽에 의미 있는 지도 하나가 실려 있다. '영국 외무성 대일 평화조약 임시초안(1951.4.7)에 첨부된 지도로 당시 세계 여러 나라들의 일본의 영토 분쟁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과 견해가 반영된 근거 자료다. 지도는 일본령과 일본령이 아닌 곳을 명확하게 표기했는데, 독도를 일본령에서 배제해 한국령으로 표시하고 있다.

대일 평화회담 준비 및 진행과정에서 영국 정부의 유일한 지도이자 연합국의 견해를 반영한 유일한 지도라는 것, 영토 문제와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집중 로비를 받은 미국과 입장이 다른 영국 정부가 객관적인 제3자 시각으로 그렸다는 것, 캐나다나 호주 등 당시 여러 국가들의 시각과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무척 의미있는 지도인 것이다.

<독도사전>은 독도와 관련된 용어, 관련 인물이나 지명, 역사적 사건과 외교문서, 관련 단체, 고지도, 독도의 환경이나 동식물과 자원 등 무려 1000여의 항목을 다루고 있다. 참고로 69명이 공동집필했으며, 뒷부분에 30여 점 가까운 고지도 및 독도를 한눈에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독도 연표가 실려 있다.

고지도와 기록 등을 우선 이야기해 자칫 딱딱한 설명이 되고 있는데, 이처럼 독도 관련 거의 모든 것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누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읽는가에 따라 사전의 활용은 다양해 질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독도의 식물·곤충·동물·조류 등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중략) 이후 일본은 여러 도서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는데, 이때 근거로 삼은 논리는 무주지(無主地)에 대한 선점(先占) 논리였다. 여러 사례 가운데서도 미국과의 외교적 충돌 위기를 넘기면서 일본 영토로 편입하는데 성공한 미나미토리시마가 가장 대표적인데, 이 사례는 차후에 이루어진 도서 편입의 모델이 되었다. 일본의 도서 편입은 대체로 ①무주지 발견→②자국민의 이주와 경제활동→③해당 도서의 귀속에 대한 확인·영토 편입 후 대하(貸下) 청원→④각의 결정→⑤(지방)고시→⑥대하(貸下)라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1905년의 독도 편입 역시 형식적으로는 이와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일본은 미국 등 서구 국가에 대해서는 사전 통보나 협의 등을 진행시킨 것과 달리,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협의나 통고 없이 일방적으로 독도 편입을 강행했다. 다른 섬들과 달리 독도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며 17세기에 양국 간 분쟁의 대상이 되었던 울릉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러일전쟁기의 군사적 필요로 인해 한반도에 대한 침략적 우위를 배경으로 삼아, 여타 도서와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여 자국 영토로 편입했던 것이다. -허영란 글 '일본의 영토편입과정'중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 중 하나다. 2012년 3월 27일 오늘 저녁, 일본 극우세력이 한국 공관 앞에 '독도는 일본 땅'라 쓴 비석을 세웠다는 3월 26일자 보도에 이어 일본 교과서 60%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것을 채택했다는 보도가 전해진다.

독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다. 우리나라 주권의 상징이자 우리가 지켜야 하는 우리의 영토다. <독도사전>의 발간 취지는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우리 독도를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 흩어진 자료들을 모아 통일시키고 모음으로써 일본의 계속되는 망언에 마땅히 대응함과 동시에 통합적 관점에서 독도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있다. '국민들에게 좀 더 정확한 독도 관련 지식을 제공'하는 것 또한 발간 취지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에게 <독도사전>이 특별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독도 사전>ㅣ엮은이:한국해양수산개발원ㅣ출판사:푸른길ㅣ2011-11ㅣ값:50,000원



독도 사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엮음, 푸른길(2011)


태그:#독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독도 망언, #일본 교과서, #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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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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