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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산호초와 에머랄드빛 바다 수심의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햇살을 타고 유영하는 어류의 천국, 그리고 순백의 모래사장과 코끝을 간질이는 따스한 바다냄새. 오키나와는 애초부터 평화의 섬이었다 .1879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령 오키나와 현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까지 그들은 류큐라는 왕국으로 존재했었다. 일본보다는 대륙과 소통하고 푸른 바다에 몸  그고 헤엄치며 딱히 나눌 것 없이 스스로 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5년 4월, 18만 3천명에 달하는 대부대를 끌고 온 미군의 무차별 폭격에 20만 명에 육박하는 섬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1972년 다시 일본에 반환되기까지 27년을 미군의 식민지로 살았다. 이후에도 미군기지는 그대로 남아 현재 일본 주둔 미군병력의 약 80%가 오키나와의 전체면적 20%를 차지하고 있다. 하여 태초의 평화는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에 의해 무너졌다. 오키나와 본섬 북부에 세계최고의 장수마을로 알려진 헤노코가 있다. 거기에는 듀공(dugong)이란 동물도 산다.

2.5m에 300kg나 되는 거구 포유류로 해초만 먹는 것으로 알려진 이 동물은 개체수가 얼마 남지 않는 멸종 위기동물이다. 이 작은 마을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당연히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 때문이다. 1996년부터 논의되던 미군기지 이전문제는 2006년 미일정부의 합의에 의해 더욱 구체화 되었고 가로 1,500m, 세로 600m 규모로, 산호초로 뒤덮인 헤노코 앞 바다는 거대한 시멘트 기지가 기름띠 흘러내리는 비행장이 되어 풀만 먹고사는 바다 포유류 듀공의 생명을 빼앗아는 무기가 되었다.

더욱 이 마을이 주목받는 이유는 2006년 미일 합의이후 1500명의 주민들이 똘똘 뭉쳐 기나긴 반대농성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푸른바다를 삶의 일터로 가꾸고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투쟁은 얼마 전 3000일을 맞았다. "오키나와에 사는 듀공씨에게"라는 연주곡이 있다. 문화 사회적 기업 자바르떼에 소속된 "신나는 섬"이라는 팀의 레파토리이다.

제주 강정에 육지경찰들이 출몰하고 구럼비 바위에 폭약이 장전되는 날, 슬픈 오키나와와 슬픈 강정을 생각하며 들었던 음악. 목사를 포함한 성직자들까지 깔끔하게 구속시키는 장로가 마치 신의 대리인이라도 된 양 같은 부류 따위의 엄숙한 조찬기도를 들으며 대통령 행세를 하는 이 나라에서, 사람보다 적어도 몇 만 년은 더 먼저 살았을 연산호. 발이 붉은 게, 아니 그보다 적어도 몇 억년은 더 먼저 살았을 구럼비 바위의 고통 따위는 그저 제 손에 떨어지는 몇 푼의 이익을 위해 청맹과니가 된 부류들이 장관이다.

군 장성 이다 뻐기는 이 나라에서, 그러므로 애당초 평화란 존재하는 것 보다는 찾아나서는 고단한 과정이라는 상징을 보여준 역설의 평화 오키나와 제주강정이 벙어리 된 언론과 무관심증 환자가 된 국민에 의해 내동댕이처지는 이 나라에서 그때까지 난 듀공이란 동물을 몰랐다. 나중이라도 적당한 기회를 핑계 삼아 듀공이 뭘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볼 심산이었으니까. "에이사" 라는 오키나와 북춤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비교적 단순한 복장에 천으로 만든 머리끈을 질끈 두르고 일제히 두드려대는 류쿠인의 웅장한 북소리에서 나는 종종 침략 받은 자의 설움을 받아내곤 했다. 한눈에 봐도 일본인이 아닌 또 다른 일본 오키나와 인들의 한(恨 )이 우리의 것과 닮아있어 북춤 추는 오키나와 사내의 검붉은 팔뚝과 그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나는 역사속의 내 아버지들이 빚 독촉고지서를 손에 들고 망연해 하는 빼앗기는 자의 슬픈 눈동자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난 듀공을 몰랐다. 듀공이라는 이름이 천년을 이어 살아온 강정이라는 것을 몰랐다. 지금까지 지켜온 날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을 살가운 사람들의 마을에 상징이 되어야 할 구럼비 바위라는 이름과 동격인 것을 몰랐다. 사라지는 날엔 그것과 함께했던 억겁의 모든 생명도 그리고 나도 우리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진행하는 방송에서 멋진 소개와 함께 들었던 음악의 주인공 듀공이란 이름은 여지껏 무지(無知)를 방치했던  몇 달 간 나의 나태함을 꾸짖는 단어가 될 것이다. 오늘은 오키나와의 듀공씨에게 무척 미안한 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지상 씨는 현재 작곡가 겸 가수로 활동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오키나와, #듀공, #후텐마 기지, #제주 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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