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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식구가 출타해서 집을 비운 사이 하수구에 빠져 생사의 기로를 헤매다가 주인의 귀가로 구사일생한 새벽이 새끼의 모습입니다.
▲ 하수구에 빠졌다가 살아돌아온 '새벽이'의 새끼 주인 식구가 출타해서 집을 비운 사이 하수구에 빠져 생사의 기로를 헤매다가 주인의 귀가로 구사일생한 새벽이 새끼의 모습입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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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비울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매사에 둔감한 제가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마치 어린 아이를 혼자 남겨 두고 출타한 부모의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12일 충주 한 호텔에서 있었던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세미나였지만 저희 부부는 하루만 참석하고 어제 밤 늦게 집으로 왔습니다.

두 딸 아이가 염려되기도 했구, 저희 집 지킴이 '새벽이'가 걱정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새벽이의 7남매 어린 새끼들이 더 마음에 걸렸거든요. 먹이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와서 모처럼의 호텔 밤이 마음 편치 않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아이들 학교 야자 끝나는 자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늦어도 2시간 이전에는 충주의 호텔을 출발해야 했습니다.

세미나 준비와 진행을 맡은 스탭들이 일부러 챙겨준 빵과 우유 과일 등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밤길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도 괜찮았습니다. 그것도 아내와 함께 말입니다. 학교 정문으로 가서 아이들을 태우고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 것 있잖아요. 평상시와 같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딘지 좀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그런 분위기 말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집 진돗개 '새벽이'가 풀려 있었습니다. 배가 고팠나 봅니다. 그것 말고 또 무슨 이유가 있어서 견고한 끈까지 풀어 제끼고 '자유의 몸'(?)이 되었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새벽이가 끈을 풀고 날뛰기는 지난 발정기 때 빼고는 오래간만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저를 의아하게 만들었습니다. 우선 먹이를 챙겨 주고 새끼들을 세어 보니까 6마리밖에 안 되는 거예요. 분명 7마리가 되어야 하는데….

먹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새벽이가 날뛰며 도로 가 하수구로 달려갔습니다. 제겐 우선순위가 '새벽이'를 줄에 다시 묶는 거였습니다. 지난 발정기 때 줄을 풀고 동네를 방황할 때, 이웃 사람들이 충고를 하더군요. 새벽이 빨리 묶으라고요. 밭에라도 들어가 비닐이라도 물어뜯으면 사람들이 싫어한다며 충고해 주었습니다. '개'인 새벽이로 인해 듣는 충고는 유쾌한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새벽이가 절대 풀리지 않게 하겠다고 그 때 다짐했습니다.

길가 하수구로 달려간 새벽이가 한참 컹컹 밑을 향해 짓고 있는 것도 그냥 건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시 새끼들이 있는 자기 집으로 어슬렁거리고 돌아와 먹이에 입을 대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자꾸 하수구 쪽을 향해 짖어댔습니다. 아내와 저는 새끼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집 주위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래도 새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잃은 새끼 한 마리"입니다.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새끼가 너무 예뻐 지나가던 사람이 한 마리 데리고 간 것은 아닐까?

아내는 강아지 찾기를 포기하고 들어가고 저 혼자 개를 묶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새롭게 수습하고 들어가려고 할 때, 어디서 강아지 깨갱거리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습니다. 아주 세미한 소리였습니다. 어쩌면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귀를 쫑긋 세워서 소리의 방향 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길가 하수구 쪽이었습니다. 정말 잃은 그 강아지가 하수구에 빠져 벽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손을 내밀어 강아지를 잡아 길 위로 올려 주었습니다.

겨울 건기로 하수구에 물이 없었기 망정이지 생명을 잃었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올려진 강아지는 어미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미 새벽이뿐 아니라 나머지 여섯 마리의 강아지들이 일제히 꼬리를 좌우상하로 흔들어 댑니다. 살아서 돌아온 것을 환영하는 기쁨의 표시입니다. 어미는 '돌아온 탕자'(?)를 혀로 핥아 주었습니다. 머리에서부터 꼬리에 이르기까지 전신을 꼼꼼히 핥아 주었습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니?', '얼마나 걱정했다구!' 말은 하지 못했지만, 이런 애정의 표현입니다.

또 이런 마음도 담겨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 주인은 말이야, 우리 여덟 식구를 하루 종일 방치하고 어디 다녀 온 거야! 아침에 준 먹이로 우리가 하루 종일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지? 네가 하수구에 빠진 것도 먹잇감을 찾다가 그렇게 된 것이잖아! 오늘을 교훈 삼아 우리를 좀 더 잘 대우해 주면 좋겠는데….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저는 요즘 사랑의 개념을 자꾸 확대하려는 유혹에 휩싸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빼면 사람 사랑이 최고의 가치일 텐데, 저는 이것을 자꾸 다른 동물에게도 확산시켜 생각하려고 합니다. 특히 저희 집 진돗개 '새벽이'가 새끼를 낳고 나서 더 그렇습니다. 새벽이에게서 새끼 사랑을 자주 목격하고 나서 의미는 분명 차이가 있을 테지만 '사랑'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개의 새끼 사랑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새벽이'가 매였던 단단한 끈을 풀게 된 것도 자기 생존이 아니라 하수구에 빠진 새끼를 구할 일념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새끼 사랑이 튼튼한 줄을 풀게 만들었습니다. 어미의 치열하면서도 다이내믹한 새끼 사랑의 결과입니다. 제가 차를 몰고 귀가하자마자 하수구로 안내한 것도 도움을 요청한 행위였습니다.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허기를 채우면서도 하수구 쪽을 향해 계속 짖어 댄 것도 빠진 새끼를 좀 구해 달라는 신호였습니다. 개의 새끼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장면입니다.

생명은 소중합니다. 하나님의 걸작품 사람의 생명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해 가고 있습니다. 쉽게 목숨을 던지는 안타까운 소식들을 자주 접합니다. 생활고로 어린 자녀와 함께 목숨을 끊는 경우에는 그 아픔이 더 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생각하면서도, 천하보다 귀하게 여겨야 할 생명이 경시되는 것 같아 몹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개들에게 길을 묻습니다. 우리 집 진돗개 '새벽이'의 새끼 사랑을 목격하고 제게 떠오른 상념(想念)이 이것입니다. 사람에게, 그것도 위대한 스승에게 길을 물어야 할 사람이 한갓 미물인 '개'에게서 길을 묻다니요. 사람의 사랑은 계산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개의 사랑은 본능적입니다. 본능적이라는 말은 '사랑'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즘'새벽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 중 새끼 사랑의 절대성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눈여겨 봐 두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태그:#진돗개, #새벽이, #새끼 사랑, #하수구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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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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