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계명산 정상에 이르는 길

계명산 오르는 길에 보이는 충주호유람선 선착장
 계명산 오르는 길에 보이는 충주호유람선 선착장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마즈막재에서 계명산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에 꽤나 힘이 든다. 그것은 해발 250m에서 615m에 있는 전망대까지 비교적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간에 한 두 번 쉬고는 내달아 전망대까지 올라간다. 숨이 상당히 가쁘다. 그렇지만 전망대에 오르니 사방으로의 조망이 탁 트이고 속이 시원하다. 특히 동쪽 충주호 쪽으로의 전망이 좋다. 마즈막재에서 이곳까지 우리는 1㎞를 올라왔다. 그리고 우리가 올라갈 계명산 정상까지는 아직도 1.6㎞나 남았다.

여기서 다시 300m를 가면 해발 710m 지점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 도착하니 평평한 공간이 있어,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모두 도시락을 싸 왔기 때문에 반찬을 내놓고 함께 둘러앉는다. 각자 가지고 온 반찬을 내 놓으니 풍성한 점심이 된다. 아침 8시 반부터 시작한 산길 탐사여서 모두들 배가 고픈 표정이다. 밥을 먹고 나서 막걸리도 한 잔 마신다. 산에서 먹는 곡차는 별미다.

계명산 정상석의 모습
 계명산 정상석의 모습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식사 후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한 것이 1시 10분이다. 이제 정상까지는 1㎞쯤 남았다. 식사 후 산행이 쉽지는 않지만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이어서 큰 부담이 없다. 우리는 헬기장을 거쳐 1시 45분쯤 계명산 정상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오석으로 만든 정상석과 화강석으로 만든 정상석이 함께 있다. 오석은 조금 밑에 있어선지 계명산의 해발이 774m로 적혀 있고, 화강석은 위에 있어선지 775m로 적혔다.

우리는 이곳에서 역시 단체사진을 찍는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고봉치고는 주변으로의 조망이 시원한 편은 아니다. 이곳 계명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세 가지다. 하나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범골로 해서 충주댐으로 내려가는 코스다. 다른 하나는 북쪽으로 가다 바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종민동 종댕이 마을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명산을 종주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중 마지막 종주 코스를 선택한다. 충주 둘레산길을 점검하는 것이 이번 탐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계명산의 옛 이름은 심항산이다

18세기 중엽의 <해동지도>에 심항산 봉수와 마산 봉수가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18세기 중엽의 <해동지도>에 심항산 봉수와 마산 봉수가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럼 계명산이라는 이름은 대체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선시대 나온 지리지에는 계명산이라는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심항산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보면, 심항산(心項山)은 주 동북쪽 9리에 있다. 그리고 '봉수(烽燧)'조에 보면 심항산 봉수는 동쪽으로 청풍군(淸風郡) 오현(吾峴)에 응하고, 서쪽으로 마산에 응한다.

그러므로 심항산은 충주의 주산으로서 뿐 아니라, 봉수로 상에 있는 산으로 그 의미가 컸다. 경상도에서 올라오는 봉수가 안동과 죽령을 넘어 오현, 심항산으로 이어졌고, 상주와 조령을 넘어서는 주정산, 대림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두 갈래의 봉수가 충주시 대소원면에 있는 마산 봉수에서 하나로 합쳐졌던 것이다.
 
1872년에 만들어진 <충주목 지도>와 1898년(광무 2년)에 나온 <충청북도 각군읍지>에 보면, 심항산이라는 이름 대신 계족산(鷄足山)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심항산이 1800년대 중반쯤부터 계족산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계족산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충주 심항산에 지네가 많아 고을의 골칫거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고성 성주의 딸이 심항산 기슭에서 지네에게 물려 죽는 일이 발생했다. 성주는 백성을 동원하여 지네를 퇴치하려 하였으나, 지네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성주는 심항산 정상에 제단을 마련하고 하늘과 산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7일째 되던 날 신선이 나타나, '지네를 없애려거든 산에 닭을 먹이도록 하라'고 계시하였다. 성주는 백성들을 시켜 산에 닭을 풀어 놓았고, 닭이 지네를 잡아먹으면서 지네가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심항산을 계족산이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계명산 줄기: 지네 형상으로 볼 수도 있다.
 계명산 줄기: 지네 형상으로 볼 수도 있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심항산이 닭의 발가락 형상을 하고 있어 계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면 계족산이 계명산으로 바뀐 것은 언제일까? 이것 역시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1959년 발행된 <예성춘추(蘂城春秋)>에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해방 전후에 바뀌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계명산은 옛날부터 심항산으로 불렸다. 이후 산의 형세가 닭의 발가락모양을 하고 있어 계족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계족산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충주에 부자가 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닭이 먹이를 찾으며 땅을 헤짚어 충주고을의 재산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을 알리는 닭 울음이라는 계명산(鷄鳴山)으로 또 다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심항산이 계족산으로 그리고 다시 계명산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심항산과 계족산은 역사적인 이름이 되었다. 그렇지만 충주 시내 학교의 교가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난 회 글에서 언급했듯이 마즈막재라는 이름 속에도 심항(心項: 마슴목)이 남아있다. 

충주 시내가 품안에...

계명산 풍경길
 계명산 풍경길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계명산 정상에서 막은대미재로 내려가는 서쪽 능선은 길고 지루하다. 4.5㎞쯤 되는 거리로 계속해서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산을 내려가면서 보니 해발이 높은 곳에는 참나무가 많고 낮은 곳에는 소나무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에 조림이라는 이름으로 소나무를 심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산을 내려오면서 우리는 충주 시내를 좀 더 가까이 조망할 수 있다. 옅은 안개가 끼어 있어 조망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충주시가 동서보다는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간에 우리는 샘이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 샘은 여름철에는 건수가 스며들어 먹을 수 없지만, 겨울철에는 식수로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이곳에서 목을 축인다.

여기서부터 길은 더 평탄해진다. 그리고 북쪽으로 용탄동과 목행동의 공단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계명산의 서쪽지맥은 남쪽의 안림동과 연수동, 북쪽의 용탄동과 목행동을 경계 지운다. 충주 사람들은 계명지맥의 안쪽을 통상 시내라고 부른다. 계명지맥은 충주 시내를 끼고 도는 산줄기이기 때문에, 그 품안에 충주 시내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계명산 풍경길에서 충주 풍경길로

금봉산과 계명산 답사 지도: 고도와 거리를 표기했다.
 금봉산과 계명산 답사 지도: 고도와 거리를 표기했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충주댐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송전탑을 지나 전망바위에 이른다. 전망바위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충주 시내를 조망한다. 여기서 다시 길을 조금 더 내려가면 작은 민재에 이른다. 작은 민재는 옛날 연원역과 사래실을 이어주는 지름길로 사람들의 통행이 꽤나 있었던 곳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연수동과 목행동을 이어주는 도로가 크게 나면서 등산객들이나 다니는 등산로가 되고 말았다.

작은 민재부터는 표지판이 아주 촘촘히 세워져 있다. 소위 계명산 풍경길이라는 이름의 안내판도 붙어 있다. 우리는 곧 이어 막은대미재에 닫는다. 막은대미재 역시 옛날 연원역과 학골을 연결하는 고개로 작은 민재보다 통행량이 훨씬 더 많았다. 그것은 이 고개가 연원역에서 북진나루로 가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풍경길 주변에는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운동시설과 정자 등 휴게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금릉초등학교
 금릉초등학교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풍경길을 따라 우리는 이번 답사의 최종 목적지 금릉초등학교로 내려간다. 아침 8시 30분 석종사에서 출발한 충주 둘레산길 탐사를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마무리했다. 우리가 탐사한 거리를 측정해 보니 이차원으로는 16.67㎞이고, 삼차원으로는 17.62㎞이다. 건국대 후문에서 석종사까지 1차 탐사한 17.68㎞를 합치면, 이틀 동안 충주 둘레산길 총 35.3㎞를 주파한 셈이다.

이번 탐사는 충주 둘레산길을 확인하고, 충주 풍경길로서의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산행이었다. 이번 탐사는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산경, 역사와 문화, 문화유산, 생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종합적인 답사였다. 그렇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어서, 초목과 꽃 등 생태적인 측면의 조사에서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에 비해 산경, 역사와 지리, 민속과 전설 등 문화유산 스토리텔링 분야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탐사결과를 반영하여 더 나은 충주 풍경길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태그:#계명산, #심항산, #계족산, #계명산 풍경길, #막은대미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