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꽃이 어우러지면?봄이 왔다고 느낄 때는 바람이 달라진다. 차가운 바람일지라도 매서운 기운이 사라지고 차가운 기운만 남는다. 아직 두꺼운 옷을 벗어버리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멋쟁이들은 나름 용기를 내어 훌훌 벗어버리기도 한다.
봄이 왔다고 느낄 때는 꽃이 피어날 때다. 제주도에는 유채꽃이 피겠지만, 남도인 여수에는 아직 이르다. 물론 동백이야 피겠지만 진정 봄꽃은 땅바닥에서 피어나는 꽃이 아니겠는가? 겨우내 추위를 이기고 언 땅을 녹이고 피어나는 꽃이야 말로 진짜 봄이 왔음을 알린다.
바람과 꽃이 어우러지면? 바람꽃이다. 바람꽃 중에서도 우리나라에만 자란다는 꽃이 있다. 변산바람꽃이다. 그래서 봄이 오면 변산바람꽃을 보러간다. 이른 봄에 피어나는 변산바람꽃은 자생지가 몇 곳 안 된다. 변산바람꽃이 처음 발견된 변산, 그리고 제주도, 여수 등. 그래서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먼 곳을 마다않고 자생지를 찾아간다.
변산바람꽃을 보았는가? 몇 해 전에 변산바람꽃을 처음 보았을 때 감동을 잊지 못한다. 정말 꽃이 필 것 같지 않은 넝쿨로 우거진 숲속에 하얀 꽃들이 고개를 들고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가까이 다가가니 꽃은 가녀린 줄기에 커다란 얼굴로 환하게 웃는 모습에 또 놀랬다. 꽃을 더 가까이 보면 뭔가 떠오른다. 암술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슈렉의 귀 모양이라서 앙증맞다. 그냥 웃었다. 귀여워서….
향일암으로 향한다. 남도의 끝자락에는 봄도 일찍 온다. 바람꽃이 핀다는 곳은 벌써 몇 년 째 사람들이 드나들어 길이 났다. 작은 돌무더기 사이로 핀 하얀 꽃은 여전히 화사하다. 올해는 꽃이 더 큰 것처럼 느껴진다. 봄이 환하게 웃는다.
봄 기운은 바다로부터향일암은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봄을 알리는 동백꽃이 겨울부터 피다가 핏빛 붉은 빛을 토해낸다. 올해는 유난히 추웠는지 꽃망울을 터트린 동백은 더욱 붉다. 윤기가 반짝거리는 동백나무 잎은 싱싱함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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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일암은 원효대사가 원통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수도한 곳이다. 숙종 때 인묵대사가 다시 지으면서 향일암이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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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동백꽃을 보면서 오르는 향일암은 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석문을 몇 개 구불구불 돌아들어 가면 바다를 바라보는 암자가 자리 잡았다.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을 때는 이곳까지 오기도 힘들었겠다. 그런데 이런 곳에 나무를 옮기고, 기와를 가져와 절집을 지었다고 생각하면 그저 옛 스님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대웅전은 한창 단청을 칠하는 중이다. 몇 해 전 불타버린 것을 다시 지었다. 주변 나무들은 아직도 그날의 상처를 안고 있다. 가지마다 타다 만 자국은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대웅전 뒤로 관음전 올라가는 길은 또 다른 석문을 지나야 한다. 석문이 길어서 마치 동굴을 지나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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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일암 관음전에서 본 바다. 돌 거북이들이 봄을 마중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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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을 나오면 동백나무 숲에 쌓인 절집이 있다. 동백들은 가지마다 붉은 꽃을 터트리고서 무거운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다. 관음전 옆에는 돌로 세운 관음상이 있다. 관음전을 찾은 신도들이 기도를 드린다. 바다를 바라보는 관음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다. 봄기운은 바다로부터 불어온다.
덧붙이는 글 | 3월 3일 향일암 풍경입니다.
향일암은 여수 돌산도 끝자락에 바다를 향한 암자다.
동백숲으로 유명한 관음기도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