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9일 민간어린이집들이 집단 파업을 철회했다. 파업을 한 어린이집은 폐업 조치하겠다는 복지부의 강경발언이 있었다. 비록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부모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실제 휴원률은 높지 않았으나 파급력은 컸다.

민간어린이집은 왜 파업을 했을까. 이들은 정부의 국공립어린이집 우선지원에 반발했다. 보육교사 처우개선 등도 주장했지만, 본질은 민간어린이집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라는 것이었다. 국민들의 대다수가 바라는 공공 어린이집 확충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같은 민간어린이집들의 반발 때문이다.

어린이집 파업으로 돌아보는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한국어린이총연합회는 29일 집단 파업을 철회했다.
 한국어린이총연합회는 29일 집단 파업을 철회했다.
ⓒ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누리집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사회서비스 분야는 공공성을 담보해야 한다. 의료·교육·보육·돌봄 등 전통적으로 개인과 가정에서 담당해왔던 서비스들이 여성의 사회진출과 사회발전에 조응해 사회화되는 과정은 모든 산업 사회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서구 대부분 국가들은 사회서비스를 공적으로 제공, 관리하고 있다. 이는 사회서비스가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기 때문이다. 의료나 교육, 보육 등은 사회전체의 이익에 기여하지만 민간시장을 통한 제공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공공재정을 이용해 공적기관에서 제공하는 것이 저소득층 등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계층에 대한 형평성을 달성할 뿐 아니라 적절하고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화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이래 사회서비스 영역은 크게 확대돼 왔다. 건강보험과 공교육 도입, 보육료 지원 등의 발전은 정부재정 확대에 의해 견인됐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 크게 확대된 사회서비스 산업 역시 국가의 재정 투입에 기반하고 있다. 문제는 재정은 국가에서 담당한 반면, 서비스제공은 철저히 민간에 의지해 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취약한 서비스 인프라를 빠르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과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시장 우선의 신자유주의 철학이 주원인이었다.

지나치게 시장화된 의료서비스 산업

한국 사회에서 사회서비스 산업은 경제성장을 위한 블루오션으로 취급되고 있다. 의료산업화는 삼성 등 재벌의 미래성장동력이 되고 있으며 사교육시장은 이미 상장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정부 정책 역시 표류하고 있다. 복지를 확충하고 공적 사회서비스를 확충한다고 하면서도 정책수단은 시장을 활용하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 나아가 사회서비스 산업의 경제성장 가치에만 더 주목하는 상황이다.

선거시기 복지논쟁에서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민간시장에 대한 합리적 규제정책은 거의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시장은 공공의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지고 있으며 공급분야의 구조조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복지국가 건설은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영역이 의료산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산업을 '의료'의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는 입장과 '산업'의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의료를 산업적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는 측은 병원·제약·보험 등의 자본세력과 경제성장을 중심에 놓는 경제관료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2005년 의료산업선진화 논의를 시작으로 의료산업이야말로 저성장 시대 경제성장을 이끌어갈 가장 강력한 블루오션이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의료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영리병원 도입, 당연지정제 폐지, 의료기관 MSO 허용 등 규제를 완화하자는 주장을 거세게 제기한다.

개인 자산이 돼버린 대형병원

영화 <하얀정글> 중 한 장면
 영화 <하얀정글> 중 한 장면
ⓒ 제유필름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의료산업은 보건의료체계의 일부분이며 시장중심으로만 구축돼서는 안 된다. 보건의료의 공공재적 성격, 시장실패와 국가 개입의 필요성, 지나친 의료산업화가 갖는 폐해 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 의료산업은 과도한 시장중심, 독점으로 인해 치료서비스 중심의 의료서비스, 왜곡된 의료정보, 불필요하거나 유해한 치료 강제, 고가의 의료비 지출 등의 결과를 낳고 있다. 다국적 제약회사와 국내 제약회사의 연계로 인한 약제비 문제, 병원자본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산업화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현상을 낳고 있다.

특히 병원의 문제가 심각하다. 병원은 환자 진단 및 치료, 보건 전문가들이 훈련받는 장소 이상의 사회적 역할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나라 병원은 병원 소유자의 개인 자산으로 인정돼 왔으며 대형 병원의 출현 이후 효과적인 자본 축적의 대상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공병상 확충과 민간병원 규제가 필수적

우리나라 병원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과제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①병원의 지속적 증가와 병상과잉 해소 ②의료기관간 기능 재정립으로 대형병원 환자 집중현상 해소 ③질적으로 낙후된 병원의 개혁 ④병원서비스의 질개선과 병원인력 확충 등이 있으며 가장 강력하게 제시되는 방안은 일차의료 강화와 공공의료 확충이다.

매우 고착화된 민간의료기관의 영리적 운영을 건강보험 수가만으로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건강보험 수가 협상 과정이 의료인의 영향력 하에 장악돼 있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정책은 추진조차 불가능했다. 따라서 건강보험 강화를 통한 의료질서 확충이 갖는 한계를 명확히 봐야 한다. 건강보험 강화는 보장성 확대라는 다른 정책목표를 위해 추진돼야 하며 공급구조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다른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공공의료의 확충을 통한 합리적 의료시스템의 구축과 민간의료의 선도, 1차 의료의 강화이다. 또한 대부분 해체된 병원개설과 운영에 관한 직접적 규제를 부활시켜야 한다.

이상의 과제들은 선거 때 인기를 끌 수 있는 정책은 아니다. 복지를 확충하고 혜택을 늘리는 것은 재정을 일부 충원하면 달성할 수 있는 과제지만 서비스산업의 구조를 개혁하고 공공의 직접 공급을 늘리며 민간병의원에서 최소한의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과정은 매우 지난하다.

하지만 의료공공성의 회복없이 무상의료나 보장성 확대정책은 실현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민간서비스 시설의 파업과 같은 강경한 집단행동에 맞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적 영역이 존재해야 하고, 시장과 경쟁해 올바르게 견인해낼 수 있어야 한다.

시장중심의 사회서비스 구조 개혁해야

우리나라 사회서비스 분야의 핵심 논쟁 중 하나는 한국 사회서비스가 시장중심 구조로 고착화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인지 아니면 구조개혁이 가능한지 여부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재벌 개혁, 신자유주의 개혁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는 것을 본다면 사회서비스 분야의 개혁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이러한 과제를 정치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 복지논쟁에서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일 수 있다. 선거시기 보다 근본적인 사회개혁의 이슈가 전면화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이은경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태그:#의료공공화, #사회서비스
댓글

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