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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부터 전국 초·중·고교가 주5일제 수업을 전면 실시한다. 매주 '노는 토요일(이하 놀토)'이 되는 것이다. 매주 '놀토'가 되면 어떨까. '놀토'를 맞이하게 될 학생들은 신나기만 할까, 학부모는 아이들과 놀토를 보내는 남다른 '스킬'을 가지고 있을까, 선생님은 과연 놀 수 있을까? 지역 공동체는 노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뭐 하는 거 없나?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궁금증을 그들의 목소리로 들어 보자. 매주 '놀토', 과연 누가 가장 좋을까. [편집자말]
주5일제가 전국 모든 학교에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시행하는 학교도 있고 주5일제를 시행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
 주5일제가 전국 모든 학교에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시행하는 학교도 있고 주5일제를 시행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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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여자직업으로 그만한 게 없다는 '교사'를 딸로 둔 엄마에게는 가기 싫다고 가기 싫다고 삼일 밤낮을 밥도 먹지않고 울던 날 어쨌든 교대에 보내 선생 만든 게 늘 뿌듯한 일이다. 그래서 월급날이면 생색 아닌 생색을 내시곤 하는데, 올해 생색낼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그래, 다른 데 다 주 5일제 하는데 선생도 해야지. 그래그래, 이제 하네."

싱글싱글 웃으며 하는 엄마 말에 나도 '올해부터 하더라고'하고 답한다. 뭐, 좋은 일이다. 월급쟁이가 월급 깎이지 않으면서 출근하는 날이 줄어든다는 데 이만한 경사가 어디 있는가. 방학이 좀 줄어들고 개교기념일도 휴업일에서 제외되고, 수요일 5교시가 고정으로 생겼지만 보통 1년 교육과정이 30주가 넘으니 한 달 넘는 날짜만큼이나 출근일이 줄어든 셈. 이만하면 큰 '경사'다.

하지만 주5일제가 전국 모든 학교에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학생과 보호자 그리고 교직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의견을 물었다. 토요일마다 학교수업을 할 것인지, 예년처럼 격주로 할 것인지, 주5일제를 전면시행할 것인지. 선택지에 따라 방학 날짜가 달라져 비교해보고 설문에 응답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에 따라 시행하는 학교도 있고 주5일제를 시행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

우리 학교도 작년 12월 즈음 설문조사를 했다. 전체 통계는 보지 못했으나 우리 반 설문 결과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주5일제 실시를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았던 것이다. 학교에 가기 싫어 배탈을 연기하고 새해 달력을 받으면 빨간 날부터 세는 게 학생들이 아니었나? 난 그랬었는데… 뭐지? 당황스러워 제대로 설문에 응답한 것이 맞는지, 설문지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다시 설명을 하고 있으니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주5일제 찬성으로 대답하라고 지금 설득하시는 거예요? 에이~ 하시려면 그냥 솔직하게 대놓고 하시던가요."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쓸 권리가 없는 아이들

즉, 학생들은 진심으로 주5일제 시행을 반대한 것이다.

"토요일마다 학교에 안 가면 가는 학원이 두 개는 늘 걸요."
"학교 안 가도 어차피 학원 가야 되는데 그러면 한군데 길게 있는 학교가 나아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반응들이었다. 주5일제가 되어 토요일이 휴업일이 되면, 교사인 나는 토요일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학생들은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쓸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이들에게 늘어난 휴일 하루는 또 다른 학원, 또 다른 싫은 무언가로 채워지는 별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중고등학생은 어떨까? 싶어 아는 청소년에게 물어보았다. 웬 걸! 이 사람들도 주5일제 전면시행을 경사스럽게 반기는 느낌은 아니다.

"토요일에 특별활동 같은 걸 다 몰아서 전일제 수업을 했었는데 주5일제가 시행되면 그 특별활동이 다 사라질 거잖아.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하라고 평일에 별도로 시간을 내줄리는 없고. 내가 하는 밴드부가 또 해체될까 봐 오히려 걱정이야."

생각해보니 중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내가 일하는 초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에도 그랬듯 토요일 4교시는 늘 학급학생회 회의시간이었다. 어떤 경우는 선생님이 마음대로 하기도 하고 수업시간으로 대체되기도 하고 딴짓하는 별 의미없는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주일 동안 반에서 있었던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고 다음 한 주를 어떻게 살 것인지 목표도 같이 세워보고. 몇 마디 토론도 해보고 안건도 내어보고. 학생들끼리 회의를 진행하고 표결을 붙여보는, 실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경험해보는 몇 안 되는 시간 중 하나였다. 격주로 토요휴업일을 시행할 때에는 두 주를 묶어 한 달에 두 번씩 학급학생회 회의를 했었는데 토요일이 없어져 버리면 언제 해야 하나… 싶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금요일 6교시에 하면 되나 싶긴 하지만 교육과정 내용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은 채 오히려 어려워진 교과서 내용을(사회과와 과학과를 중심으로 예년 6학년 교육과정들이 5학년으로 한 학년씩 내용이 내려와 교과서가 더 어려워졌다) 진도 나가기도 벅찰 텐데 시간이 나올까. 2012년 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굴려봐도 시간을 빼내 학급학생회 회의를 할 자신이 없다.

주5일제 격주제 시행... 그동안 사회는 어떠한 준비를 하였나

수업시수가 줄어들면 당장 타격을 입는 시간들은 부서활동이나 학급학생회 시간처럼 학생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보는 시간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체육·음악·미술·도덕·특별활동 시간을 절대 감축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교육과정 내용은 그대로인 채 수업시수가 줄어들면 어쩔 도리가 없다.

국어수업 같은 경우에도 생각이나 느낀점 나누기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작품 소개해 보기와 같은 활동들은 축소되고 다음 학년이나 상급학교에 가서 배우는 내용을 위한 지식 위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수업이 더 재미없고 더 의미 없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직접 무엇인가를 해볼 수 있고 실수하고 다시 해보고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이고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고민하고 부딪혀보는 시간이 사라져 간다. 이는 학교 교육이 껍데기만 남은 채 텅 비어가는 중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주5일제가 시행되어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면 학교교육이 좀 껍데기가 된 들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청소년들에게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나? 혹 그런 것을 찾더라도 청소년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가?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은 있나?

주5일제를 처음부터 전면시행하지 않고 격주제 시행을 몇 년 동안 한 것은 학생들이 토요일에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지원할 사회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래서 학교마다 토요일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 하는 등의 과도기를 거쳤다. 맞벌이 가정 등의 학생들이 토요일에 혼자 있게 되는 경우를 위해 대책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래서 주5일제 계획을 발표하고도 점차적으로 도입하고 전면시행을 미루어왔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사회는 어떠한 준비를 하였나.

토요일에 출근 안 해도 되는 건 좋지만 어려워진 교과서를 학생들과 더 짧은 시간 동안 공부할 걱정에 마음은 불안 불안하다. 학급학생회 회의 꼭 해야 되는데… 어쩌나?


태그:#주5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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