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 요즘 남편 말 잘 들어. 지금도 남편 심부름 갔다 오는 길이야."
"풉."

이 아줌마가 내 말이 장난으로 들리나, 웃긴 왜 웃어?

"나, 벌금 나왔거든."
"무슨 벌금?"
"희망버스 벌금. 200 나왔어"

지난해,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전국에서 출발한 희망버스에 나도 몸을 실었다. 희망버스에 탔고 한진중공업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2월 10일 벌금 200만 원을 내라는 우편을 받았다. 우편물을 받고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남편은 "소득공제 환급받으면 대출금 갚을까?" 하고 해맑게 웃었는데…. 그런 남편에게 벌금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 벌금 액수를 들으면 남편이 뭐라 할까? 일단, 희망버스 법률지원단에 소식을 알렸다.

"다른 분들도 이렇게 많이 나왔나요?"
"1차 가신 분들은 100에서 300까지 나왔어요."
"생각보다 많이 나왔네요."
"그러니까 정식재판 청구해야죠."

부산이 아닌 서울에서 재판을 받게 이송신청 할 수 있는가 물었더니 안 될 거라고 한다. 재판을 신청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머리가 멍하다. 정식재판을 청구하면 어떻게 될까? 벌금은 깎일까? 부산에 가려면 차비는 얼마이며, 몇 번이나 가야 하나? 내가 부산에 가면, 유치원에서 3시에 돌아오는 여섯 살 셋째는 누가 받아주나? 주변에 도움을 청할 친척이 없다. 결국 남편이 휴가를 내야 한다.

내 재판 때문에 남편이 회사에 휴가를 내는 게 쉬운 일일까? 한 번 가지고 될 일도 아니고 수 차례는 가야 할 텐데…. 나는 지금까지 재판정 구경도 한 번 못해봤다. 그러니 정식재판을 청구할 경우 닥칠 일들이 상상이 잘 안 된다.

희망버스 참가 때문에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희망버스 참가 때문에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 강정민

관련사진보기


부산까지 왕복 10시간... 정식재판 청구해야 하나

그런데 부산까지 가려면 차비는 얼마나 들까? KTX 가격을 찾아보니 왕복으로 11만 원이다. 우리 집에서 서울역까지 한 시간 반, 서울역서 부산역까지 세 시간, 부산역에서 부산지방법원까지 30분만 잡아도 왕복 10시간이 걸린다.

재판시간과 밥 먹는 시간까지 합치면 재판을 참석하기 위해 밖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12시간이 넘는다. 이것도 기차나 차량 대기시간이 없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 이야기다. 아침 9시에 집에서 출발하면 저녁 9시는 되야 집에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재판이 열리는 시간에 따라 더 일찍 출발해 더 늦게 돌아올 수도 있다.

이렇게 수차례 나를 위해 남편이 휴가를 내다보면, 제아무리 김진숙을 지지하는 남편이라도 남편은 "왜 이렇게 나를 곤란하게 하느냐?"며 화를 낼 것 같다. 나는 또 어떤가? 내가 집에 돌아오면 여섯 살 막내는 형들 구박에 매번 울고 있을 것 같다. 난 막내를 안고 다독여 줄 기운과 여유가 있을까? 아이들만 생각하면 재판을 포기하는 게 좋은 선택이다.

게다가 3월과 4월에 문화센터에서 뭐 하나 배우겠다고 신청한 강좌가 있는데 이것도 차질을 빚을 것 같다. 그리고 재판을 하면 벌금이 줄어들까? 많이 줄어든다 치더라도 100만 원. 차비에 남편 일당에 아이들 고생시키는 것까지 합하면 그냥 200만 원 벌금을 내는 게 경제적으로도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언젠가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인터뷰를 할 때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오랜만에 집에 가면 기다리는 것이라고는 소환장이나 압류장, 독촉장 뭐 그런 뿐이에요."

그 말을 들으며 '많이 힘들겠구나' 했다. 그런데 그 말의 주인공이 내가 되고 보니 그 말의 무게가 차원이 다르게 다가온다. 난 단 한 가지 사건뿐인데, 이 사건 때문에 경찰과 검찰, 은행, 법원으로부터 내가 받은 우편물만 아홉 통이다. 처음 경찰 소환장을 받았을 때는 마음이 얼마나 새가슴처럼 팔딱팔딱 뛰었는지 모른다.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011년 6월 12일로 158일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고공농성 중인 가운데,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13시간 가량 크레인 아래에서 머문 뒤 떠나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011년 6월 12일로 158일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고공농성 중인 가운데,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13시간 가량 크레인 아래에서 머문 뒤 떠나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남편이 퇴근했다. 정식재판 신청서는 7일 안에 법원에 접수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그러니 가능한 한 빨리 남편에게 말해야 한다.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뭐?"
"벌금 나왔어."
"얼마?"

나는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다.

"20만 원?"

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백?!"

고개를 끄덕였다.

"뭐? 200만 원?!"

흥분한 남편은 정식재판을 청구해 끝까지 싸우자고 한다. 그런데 저녁을 먹던 남편이 갑자기 "그러게 진술거부를 하지 말았어야지. 그때 진술거부 안 했으면 벌금이 200까진 안 나왔을 거 아니야" 한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재판은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마음이 왔다 갔다 하니 재판을 시작하면 남편 마음이 얼마나 요동칠까? 밥을 다 먹고 신문 보던 남편은 "그냥 벌금 내버릴까?" 한다.  

"그런데, 법률지원을 도대체 얼마나 해준대? 변호사가 부산까지 와서 당신 재판에 출석해 줄 수 있대?"

남편이 묻는다.

"몰라."
"그런 것도 안 물어보고 뭐 했어? 그런 걸 물어봐야지. 벌금 200만 원짜리 재판에 우리가 따로 변호사를 선임할 수는 없잖아?" 

생각해보니 남편 말이 다 맞는 말이다. 나는 도대체 법률지원단에 그런 걸 안 물어보고 뭘 물어본 걸까? 지금 이 상황에서 나에게는 남편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그러니 남편이 궁금해하는 것을 물어봐야 한다. 남편의 도움 없이는 재판정에도 갈 수가 없고 남편 몰래 벌금을 낼 돈도 없다. 벌금을 내든 재판을 신청하든 남편의 의사가 중요하다. 어떤 결정이든 남편에게 결정권을 주는 게 뒤탈을 적게 하는 길이란 판단이 든다. (실제 희망버스 법률대응팀에서는 "변호와 변호에 드는 비용은 끝까지 책임진다"고 한다.)

그래도 '원하던 것'을 얻었으니 행복한 것 아닐까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2011년 11월 10일 오후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2011년 11월 10일 오후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사실 내가 희망버스에 오른 이유는 단순했다. 150일이 넘도록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김진숙을 살리고 싶었다. 김진숙을 향해 손 한 번 흔들어 주고 싶었다. 아이 셋과 집에서 씨름하느라 옴짝달싹 못하는 나였지만 진솔한 삶을 가슴 절절한 글로 적어낸 김진숙을 살리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원하는 것을 얻은 것이다. 내가 한 일의 정당성을 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살아내려오기 힘들 것 같은 크레인에서 김진숙은 죽은 김주익의 영혼까지 안고 내려왔다. 그러니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룬 것이다.

그 대가로 내게 전과가 남고, 그 대가로 20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해도 나는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행복하다. 생각하기도 싫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는 백만 배 천만 배 더 행복하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지게 쓴 200만 원이라 생각할 것 같다.

다음 날, 출근하는 남편에게 "(재판청구는)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할게. 당신이 결정해서 알려 줘" 하고 말을 전했다. 남편은 알았다는 답을 남기고 출근을 했다. 남편 배웅을 마치고 중학생 큰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재판 청구하는 거, 아빠 결정에 따르겠다고 한 거, 진짜 잘한 거 같지 않니?"
"그렇지. 아빠가 딴소리를 할지 모르니까? 엄마가 잘 생각한 거지."
"그런데 엄마가 재판하다가 힘들면 너희한테도 짜증낼 텐데 어떡하니?"
"그렇지. 나도 그게 좀 걱정이 되지." 
"풉!"

웃음이 나왔다. 짜식, 제법인데…? 그런데 이 녀석, 엄마 아빠 속이 그렇게 뻔히 보이나?


태그:#희망버스, #김진숙, #벌금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3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