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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의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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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찬란히 빛나는 아침 햇빛'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Aurumdm. 인류 역사에서 이 황금만큼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은 금속이 있었을까? 모든 귀하고 좋은 것에는 황금이라는 말을 붙였다. 황금연휴, 황금비율, 황금들녘처럼.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받은 황금은 부귀영화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우리네 풍습 중에는 아이가 태어나 돌이 되면 건강하게 자라 부자가 되라는 의미로 금반지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돌에 금반지를 선물하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다. 왜? 금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2012년 2월 1일 현재 서울 소매가 기준으로 금 한 돈의 가격이 27만2800원이라고 한다. 2001년 9·11 테러 이전 온스당 300달러에 못 미치던 국제 금 가격은 이제 1750달러까지 치솟았다. 십년 전에 비해 무려 여섯 배 가까이 뛴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란다. 삼천 달러, 심지어 만 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통상적으로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때, 통화가치가 요동칠 때, 특히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때,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릴 때, 전쟁이 발발할 때, 약탈이 횡행할 때 금값이 오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 펀드에 돈이 몰리고 금 테크에 관심들이 많다. 그렇다면 금값을 이렇게 폭등하게 만든 배경과 원인은 무엇이며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될까?

중국의 경제 칼럼니스트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루안총샤오는 <금의 전쟁, 세계 경제는 왜 금을 원하는가?>에서 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고 있다. 국가경제에서 금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 및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금을 중심으로 한 제도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하고 있다.

후춧가루 가격이 황금가격과 같다고?

고대 이집트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에서 알 수 있듯이 장신구로서 부귀와 권위를 상징하던 황금은 무역의 발달과 더불어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가 세계 최초로 금화를 주조하였고 여기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오늘날 세계 각지의 화폐에 자민족의 '국부급' 인물을 새겨 넣는 풍습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돌고 돈다고 해서 돈이라 한 것처럼, 서양 사람들 역시 화폐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물처럼 흘러 다시 돌아오는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1400년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유럽인들은 중국이나 인도의 향료와 비단을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중국인이나 인도인은 유럽의 물건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서양의 금·은이 동양으로 들어가기만 할 뿐 나오지 않았고 따라서 유럽인들은 동양의 물건을 사오기 위해 더 많은 금과 은이 필요했다. 금과 은이 부족해지자 여러 곳에서 다시 물물교환이 시작되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후춧가루의 가격이 같은 무게의 황금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금·은 부족현상은 새로운 세계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고, 이것이 신대륙 정복으로 이어졌다. 애덤 스미스는 "탐험가와 정복자를 신대륙으로 이끈 것은 바로 '종교화된 황금에 대한 갈망'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흘러들어간 금과 은은 기존의 경제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과유불급, 금이 넘치니 독이 되네

유럽은 유입된 금·은으로 넘쳐났지만, 이렇게 넘쳐나는 금과 은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금과 은이 안락한 생활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농업, 목축, 어업의 실제 생산량이 증가해야 부가 늘어나는데 현실은 경제의 이런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무시한 것이다.

스페인은 아메리카로부터 들여 온 금과 은을 생산 자본을 확대하는 데 이용한 것이 아니라 주로 다른 나라의 상품을 소비하는데 이용했다. 이러한 행위는 오늘날의 미국과 매우 흡사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매년 무역적자를 기록하면서 중국과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완제품을 대량으로 수입해 소비한다는 것이다.

단지 스페인은 진짜 금과 은으로 소비했지만, 미국은 각종 금융파생상품에 힘입어 조폐기에서 마구 찍어내는 달러로 구매력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실물 경제가 죽어 있는데, 시중에 도는 돈이 많으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1세기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스페인의 밀 가격은 3배가 올랐고, 화폐 구매력은 80%나 하락하면서 가격혁명이 일어났다.

가격혁명은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져왔다. 지주와 노동자, 즉 봉건 지주와 농민의 지위는 하락하고, 자본가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상승했다. 또한 농업의 형태 또한 변화했는데 과거의 생존형 농업이 전문화된 상업성 농업으로 변화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럽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달러는 그저 녹색 종이일 뿐

1971년 닉슨 대통령의 금 태환 정지 선언으로 금은 오랜 세월 누렸던 영광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처럼 달러가 이제는 금과 연계되지 않자 문제가 생겼다. 바로 미국 중앙은행이 자국 거시경제 상황에 따라 달러정책을 수립해 알게 모르게 달러 환율이 세계 무역과 투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전 세계의 달러 공급량은 수십 배 증가하였고 평균 인플레이션 수준은 과거 인류가 겪었던 모든 인플레이션의 합을 능가하게 되었다. 홍수처럼 불어난 달러 때문에 수시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금융경제와 실물경제의 괴리가 심각해졌으며 이로써 인류의 진정한 경제성장 속도는 눈에 띄게 완만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더구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따른 막대한 지출, 1980년대 이후 발행한 기한이 만료된 각종 국채, 점점 불어나는 이자 지출 등으로 인해 미국은 마치 카드 돌려막기 하듯이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해 기존의 국채를 대신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미국은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구제하기 위해 결과는 고려하지 않고 금리를 6%에서 1%로 내렸다.

하락한 금리로 인해 달러의 신용대출이 폭증하고 달러가 전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재난이 발생했다. 결국 그 재난은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터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마침내 사람들은 달러가 그저 녹색 무늬가 찍혀 있는 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다시 금으로?

달러화의 가치하락은 더 이상 특별한 예측이 아닌 매일 발생하는 누수와도 같은 현상이지만 일단 재방이 붕괴하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외환보유액 중 일부를 금이나 은으로 전환해 위험을 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금과 은이 부를 가장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노아의 방주라고 주장한다.

한 나라의 화폐를 세계화폐로 삼는 현행의 국제 화폐체계는 화폐의 남발을 가져오게 되며, 이것이 이번 금융위기 발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자 근 30년 동안 세계 금융위기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 제도적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한국은행도 뒤늦게 금 매입에 나섰다.

한국은행은 지난 6~7월 외환보유액으로 국제 금시장에서 금 25t을 사들였다고 한다. 1998년 4월 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에서 모인 금반지·팔찌 등으로 3t을 사들인 이후 13년 3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금본위제가 국제통화질서에서 퇴출당한 지 40년이 지난 현재 금이 다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재기를 꿈꾸고 있는 셈이다.

세계 경제위기 상황에서 달러 혹은 유로화가 세계적인 지불수단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황금이 다시 한번 최후 중재자로서 제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주식도 불안하고 부동산도 걱정인데 경제의 흐름을 잘 못 읽겠다면 금을 통해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경제현상을 진단한 이 책이 사뭇 유용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 <금의 전쟁, 세계 경제는 왜 금을 원하는가?>, 루안총샤오 지음, 정영선 옮김, 평단 펴냄, 2012, 18000원.



금의 전쟁 - 세계 경제는 왜 금을 원하는가?

루안총샤오 지음, 정영선 옮김, 평단(평단문화사)(2012)


태그:#금의 전쟁 , #루안총샤오,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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