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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태어나고 12살 때까지 산 집이 있습니다. 아주 큰 정자나무(느티나무)가 큰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한쪽에, 굴뚝이 우뚝 선 할머니 집이 있었습니다. 정자나무 밑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다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고 그 굴뚝에선 할머니 정지(부엌)에 있는 큰 아궁이에서 시작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습니다.

1980년대 초반, 당시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일을 하셨고, 어린 저희 세 자매는 할머니 집에서 지냈습니다. 할머니 집은 크게 3채로 되어 있었습니다. 큰 나무문이 있는 정지(부엌)와 식당방, 그리고 제일 큰방이 붙어있던 안채, 광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던 할아버지가 지내시던 사랑채, 그리고 뚝 떨어져 그 당시 총각이었던 삼촌이 지내던 작은채. 그 방들을 왔다갔다하면서 저희 세 자매는 한 해 한 해 커갔습니다.

가만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 당시에도 연탄은 있었고, 그 동네도 대부분 연탄으로 난방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할머니 집에는 그때 방마다 아궁이가 있었습니다. 부엌에 있던 아궁이에는 제일 큰 가마솥이 걸려 있어 대식구의 밥을 매일 했고, 작은채에 있던 아궁이는 훨씬 작아서 물을 끓이는 작은 솥이 걸려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안방, 할아버지방, 삼촌방, 모두 장작불을 뗐고 큰방 아랫목에는 언제나 검게 녹아버린 장판이 깔려 있었습니다. 싼 비닐장판이 그 뜨거운 아랫목 열기를 견뎌낼 수 없었을 테지요. 우리는 장판을 녹여버리는 그 뜨거운 온돌방에 누워 '뜨겁다, 뜨겁다' 하면서 누운 자리를 이리저리 옮기고 그도 귀찮을 때면 두 다리만 여기서 저기로 옮기곤 했습니다.

춥고 긴 겨울밤이면 할머니는 바깥 장독대에서 내 주먹만 한 동치미를 가지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다 같이 심심한 뱃속을 채웠습니다. 뜨뜻한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차디찬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잘 익은 동치미를 한 입 베어물고, 살얼음이 떠 있는 스테인리스 사발은 그렇게 할머니 손에서 어린 손녀 손으로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 위에는 건조해진 방에서 금세 바싹 말라버린 빨래가 빨래줄에 매달려 있었고요.

온돌방에 장작으로 불을 떼는 아궁이
 온돌방에 장작으로 불을 떼는 아궁이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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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긴 겨울밤, 온돌방과 동치미로 기억되는 할머니의 방

내 나이 12살에 우리 자매는 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이층 벽돌집으로 이사를 하고 곧 할머니 집은 소방도로로 편입되면서 허물어집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모네 작은 문간방으로 들어갑니다. 그 방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결혼 안 했던 할머니의 자식들, 그리고 손녀들이 함께 살았던 아궁이가 있고 마당이 있고 대청마루가 있던 그 넓은 집에 비하면 너무나 작았습니다. 2평이 될까 말까 한 작은 방에 할머니는 몸을 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방에서 할머니는 재봉틀을 돌렸습니다. 사라진 할머니의 큰방에는, 발바닥으로 까딱까딱거리면 앞뒤로 움직이는 발판이 있는 키 큰 재봉틀이 있었는데, 작아진 할머니의 방에는 그 발판이 사라진 작은 재봉틀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작은 방에서 매일 재봉틀을 돌렸습니다.

그 방에는 여러 개의 비닐봉지가 있었고, 그 봉지 안에서 어디 쓸데가 있을까 싶은 자잘한 천 조각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그 천 조각을 크기에 맞게 오렸습니다. 작은 건 작은 대로 큰 건 큰 대로 알맞춤하게 잘라서 이어 붙였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조각보를 만드셨습니다. 우리네 예전 네모난 밥상에 딱 맞는 크기로 밥상보를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만든 조각보를 큰며느리에게도 주고 작은며느리에게도 주고 딸에게도 주었겠죠.

그리고 할머니는 결혼하기엔 아직 어린 손녀들이 시집을 갈 때 주시겠다고 또 조각보를 만드셨습니다. 손녀딸들이 결혼을 하고 그 손녀들이 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에게 밥을 해서 먹이고,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그리하여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할머니는 할머니의 선물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방에서 재봉틀을 돌려 조각보 만드시던 할머니

할머니가 만드신 밥상보입니다
 할머니가 만드신 밥상보입니다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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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운 밤 뜨뜻한 온돌방에서 동치미 국물 마시던 걸 추억하듯이, 할머니는 가족끼리 둘러앉아 잘 먹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할머니는 바늘에 실도 잘 끼지 못하셨지만, 조각조각 난 천을 오리고 다림질하고 재봉질하여 손녀딸들이 그 가족을 생각해서 차릴 밥상을 덮을 밥상보를 만드셨는지도 모릅니다.

내 손녀딸들이 차릴 밥상 위에 온기가 식지 않도록, 그 밥상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밥상보를 만드신 걸까요. 할머니는 그렇게 할머니의 사랑을 만들고 계셨던 걸까요. 할머니가 하실 수 있는 가장 큰 내리사랑을 재봉질하고 계셨던 걸까요.

자그마한 키에, 항상 긴 머리를 비녀로 쪽 지우시고 재봉틀 앞에 앉으셨던 모습으로 기억되는 할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훨씬 전부터 재봉틀은 못하셨고, 그 긴머리도 간수되지 않아 싹뚝 잘라야 했던 할머니는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기억나는 음식으로 살얼음이 뜬 동치미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해주신 할머니는, 세 손녀가 결혼할 때 주려고 밥상보를 만드시던 할머니는, 세 손녀 중 그 누구의 결혼식도 보시지 못했습니다. 첫 손녀의 결혼식은 몸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하셨고, 둘째 손녀는 서른 중반이 되어도 결혼하지 않고 있고, 셋째 손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다음 해에 할머니가 계신 그곳으로 떠났으니까요.

남자친구의 할머니 방에서 스르르 잠들어버린 나 

딸이 맡긴 손주를 힘들게 키우는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집으로>의 한 장면.
 딸이 맡긴 손주를 힘들게 키우는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집으로>의 한 장면.
ⓒ 영화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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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전날에는 남자친구의 할머니를 뵈었습니다. 대전터미널에 내려서 대전 시내를 도는 버스를 타고 다시 논산으로 들어가는 버스로 갈아탔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겨울날이었습니다. 남자친구 할머니는 작은 시골집에서 사십니다. 20여 년 전 허물어진 내 할머니집을 그대로 축소해놓은 듯한 집입니다.

집 한쪽엔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부엌이 있고, 작은 마루 앞에는 50cm 정도의 공간을 두고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꼼꼼하게 비닐막이 쳐져 있었습니다. 작은 비닐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마루가 나왔고, 창호지가 조금 찢어져 있는 작은 문에 있는 동그란 문고리를 잡아 당겼습니다.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올리신 할머니는 작은 방에서 도라지 껍질을 벗기고 계셨습니다. 작은 방에는 낮은 가구가 두 개 있고, 작은 텔레비전이 한 대 있고, 그 작은 방에 알맞춤하게 할머니도 작았습니다. 우리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불이 펴져 있는 방 바닥은 따뜻했습니다. 그 마을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장작을 피우는 온돌방이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이불이 펴져 있는 아랫목에 손자와 손자가 데려온 여자를 앉힙니다. 명절답게 텔레비전에서는 명절특집 노래자랑이 방송되고 있고, 마음이 편해진 남자친구는 할머니 곁에서 도란도란 말동무가 되어줍니다. 밖에는 찬 겨울비가 내리고 있고, 온돌방에서는 훈훈한 열기가 감돌고, 스르르 할머니 옆에서 잠을 자고 싶어집니다.

따뜻한 이불 밑에 두 다리와 두 손을 넣고 있으니 할머니는 좀 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머니의 베개와 할머니의 이불을 덮고 그렇게 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염치가 없긴 하지만,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남자친구를 보면서 잠이 들고 맙니다. 오래전 내 어릴 적 할머니 집 아랫목을 떠올리면서, 내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동근란 얼굴을 떠올리면서, 재봉질을 하던 할머니의 작은 방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잠에 빠져듭니다.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그 조각보 한번 꺼내보셨을 텐데

정성 들여 만드신 할머니의 조각보입니다
 정성 들여 만드신 할머니의 조각보입니다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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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그치고 집으로 돌아갈 버스 시간이 되어 인사를 드리고 마을길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갑니다. 동그란 얼굴에 착한 웃음을 지으시는 자그마한 몸집의 할머니가 마을길을 따라 걸어나오십니다. 이미 인사를 드렸으니 굳이 나오지 않으셔도 되건만 정류장까지 나오십니다. 곧 모퉁이에 버스가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제 옷 주머니에다 조금 민망하신 듯 슬그머니 집어넣으십니다. 순간 당황을 했지만 직감적으로 그게 돈이란 걸 압니다. 할머니가, 손자가 데려온 여자에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서른을 훌쩍 넘은 저는 오랜만에 받은 용돈에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하지만, 되돌려 드리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곧 알아챕니다. 제 주머니에서 숨죽이고 가만 있는 건 다시 돌려드릴 수 있는 돈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되돌려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을길을 다시 돌아 들어가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곧게 걸으시는 여든넷의 남자친구의 할머니를 보면서 내 할머니를 떠올립니다. 언제부턴가 지팡이가 없으면 불안해 보였던, 언제부턴가 낡은 유모차가 없으면 앞으로 꼬꾸라질 것만 같았던 내 할머니의 뒷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내 할머니가 아직 살아 계셨더라면, 내 할머니도 멀리 떨어져 사는 손녀가 데리고 온 남자에게, 돌아갈 차비에 보태라고 옷 주머니에 돈 2만 원을 넣어주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손녀가 결혼하면 주려고 만들었던 조각보를 한번 꺼내봤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태그:#할머니, #조각보, #용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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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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