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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의 <귀천> 중에서

시 한 편을 오랜만에 꺼내 읽는다. 바로 천상병의 <귀천>이다. 많은 이들이 이 시를 아름답다고 말해온 까닭은 무엇보다 삶을 '소풍'에 비유한 데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러한 비유로 말미암아 우리는 천상병과 더불어 삶에 대한 낙관, 죽음에 대한 찬미, 그리고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해온 삶과 죽음에 대한 담론 등을 동시에 넘어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을 소풍이나 여행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 어디 천상병만의 공(功)이랴. 우리가 이처럼 삶을 하나의 여정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생물학적 삶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또 그만큼 우리네의 오래된 생각이 아니겠는가. 개인적인 견해를 조금 덧붙이자면, 나는 아버지가 여행 채널의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계신 모습을 볼 때마다 비슷한 생각들을 종종 하곤 했다. 어쩌면 아버지가 보고 계신 것은 카메라를 통해 전달되는 풍경이 아니라 삶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다고.

 책 표지에는 '농촌총각의 투르크원정기'라는 설명과 함께 '테쉐큐르 에데림'이란 낯선 말이 보인다. '고맙습니다'라는 뜻의 터키어라고 한다.
 책 표지에는 '농촌총각의 투르크원정기'라는 설명과 함께 '테쉐큐르 에데림'이란 낯선 말이 보인다. '고맙습니다'라는 뜻의 터키어라고 한다.
ⓒ 이야기쟁이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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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여행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나 자신이 여행기를 읽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뜻밖의 제목을 달고 출간된 여행기 한 권 때문이다. 바로 안효원이 쓴 <고맙습니다>라는 책이 그것이다. 투르크를 여행한 기록인 이 책에 반드시 "투르크 여행기"나 "투르크에서 보낸 19일"과 같은 상투적인 제목을 붙일 필요는 없지만, 이 책의 제목 "고맙습니다"가 앞의 제목들보다 낫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니, 이 책을 펴보기 전까지는 그런 비판적인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러니까 책을 처음 펴들었을 때만 해도 나의 머릿속에는 "잘못 붙인 제목"이라는 선입견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는 저자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를 겪어본 나름의 감각으로 저 '잘못'은 분명 저자의 지나친 겸손에서 비롯됐을 것이라 짐작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지만 간혹 사람이 미워질 때가 있다."라고 쓰고 있지만, 내가 겪어본 그는 누군가 사람 자체를 미워할만한 사람이 못 된다. 그는 만인에게 겸손하게 굴었고, 나는 사실 그의 겸손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여러 번 하곤 했다.

어느 불치병 환자의 새로운 도전

이처럼 내가 이 책을 정독하게 된 이유는 투르크 지역이 궁금했기 때문은 아니었고, '우리 삶에서 여행의 의미란 무엇인가' 따위의 무거운 주제의 사색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고맙습니다"라는 책 제목에 대해 내가 가졌던 비판적인 선입견 때문이었다. 여행기에 저 '겸손한' 제목을 붙이고 싶었던 저자의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던 게 솔직한 이유였다고만 말해두자.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나는 시쳇말로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 부분을 읽고 난 후였다.

"이비인후과, 내과, 정형외과, 한의원, 대학병원가지 안 가본 병원이 없었다. 그런데 어디가 안 좋은지는 어느 곳도 알아내지 못했다. 종합검진을 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1년 사이에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 넘게 줄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걱정을 했고, 가족들의 마음은 무너져갔다."

이 책의 저자 안효원은 어느새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던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그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불치병, 그는 50만 명 중에 한 명이 걸린다는 불치병을 얻었다. 이 책의 근간이 된 여행 '투르크 원정'은 불치병 판정에서 시작된 셈이다. 그러니까 그는 '죽음'을 팔아 여행을 했고, 그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에 관한 자신만의 답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얻은 답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이 질문을 저자에게 던진다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테쉐큐르 에데림!" 우리말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의 저 터키어로 표상되는 감사의 마음이 그가 이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소득이었으리라. 그가 이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소득은 삶 그 자체에 대한 감사, 그리고 삶을 영위하는 동안 만난(그리고 만날)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사진을 통해 삶을 말하다

앞서 일러두었던 바처럼 내가 이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여행기에 이토록 '겸손'한 제목을 붙이고 싶었던 저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고 싶었던 '불손'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여행기를 읽으며 저자의 겸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자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은 부분이 떠올랐다. 바로 "사진에 대한 단상"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토막글 몇 편들이다. 비록 미학적으로 달리 뛰어난 글들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사진을 통해 얻은 삶에 대한 이해가 번뜩이고 있다.

총 네 편으로 나눠 쓴 글에서 그는 사진을 통해 얻은 '선택', '불안', '만남', 그리고 '생명' 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아래에 인용하는 글은 그 중 세 번째 '만남'에 관한 단상 중 일부분이다.

"가끔씩 그 분노가 민망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림 방해자'가 생각지도 못한 좋은 그림을 연출하는 경우이다. 그는 뷰파인더 속으로 씩씩하게 들어가 알맞은 자리에 선다. 그리고 찰칵! 이 우연한 재미를 알면 일부러 누군가를 기다려 사진을 찍게 되기도 한다.

'나'라는 사람은 그다지 안목이 탁월하거나 지혜롭지 못한 관계로 인생의 그림을 풍성하게 해줄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망설이지 말고 어서들 들어오시길!"

누구나 한번쯤은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상황에 맞닥뜨려봤을 것이다. 사진을 찍다보면, 게다가 여행 중에 사진을 찍다보면 저 '그림 방해자'들과 만나지 않던가. 저자는 그러한 상황에서 치미는 '분노'를 '우연'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우연들을 자신과의 만남으로 초대하려고 한다. 저자가 체험하고 있는 병적 상황 탓일까, 나는 그의 '초대'가 한없이 슬프게 여겨진다. 하지만 저런 인식조차도 병적 체험에 기초하지 않고는 쉽게 쓰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야박한 생각까지도 해보는 것이다.

<고맙습니다>라는 이 책을 통해서 저자의 건강을 가늠해보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일 게다. 다만 책에 나온 병리적 진단대로 그는 불치병 환자이다. 그것은 그가 점점 소멸을 향해 걷고 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들 누구나가 죽음을 향해 걷고 있음은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여, 사진에 관한 몇 개의 단상들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했던 '선택', '불안', '만남', '생명'이란 주제들이 우리의 삶에서도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가늠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따라서 우리에게도 판에 박힌 듯한 '좋은 사진'을 찍으려하기보다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마다 마음에서 욕망을 덜어내는 노력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삶'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사진'을 지우고 '삶'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싶다. 그리고 그 문을 통해 누구라도 찾아온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테쉐큐르 에데림!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고맙습니다> / 안효원 / 이야기쟁이낙타 / 2011-06-30 / 1만4000원



고맙습니다 - 농촌총각의 투르크 원정기

안효원 지음, 이야기쟁이낙타(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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