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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떡을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 않다. 삼국시대의 유물에 이미 시루가 발견 된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떡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점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요즘에야 곳곳에 떡집이 있고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누구나 간식 혹은 선물용으로 떡을 애용하지만 쌀이 귀하게 여겼던 옛날에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고 본다. 내가 어린 시절에도 명절, 아이의 돌, 결혼, 회갑, 상(喪) 등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떡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전남의 서남부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도장 떡살 전남의 서남부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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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관혼상제 등 의례에 따라 떡의 종류도 달랐다. 설에는 가래떡 추석에는 송편을 만들었고 아이의 돌에는 무지개떡과 경단, 제사에는 인절미와 황금색 콩고물을 바른 시루떡, 생일에는 팥을 묻힌 떡 등을 먹었는데 대체로 어느 곳에서나 빠지지 않는 것이 절편이었다. 절편은 시루에 찐 쌀을 떡메로 쳐서 납작하게 만든 떡으로 고물을 바르지 않는 아직 미완의 떡이라고 할 수 있다.

경사스러운 날에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 나비가 새겨진 떡살 경사스러운 날에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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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살은 그런 절편에 문양을 찍어 완성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물건이었다. 떡살의 소재가 되는 나무는 주로 감나무, 은행나무, 대추나무 등이었다는데, 복숭아 나무는 귀신을 쫓는다는 복숭아나무, 신주(神主)를 만드는 밤나무 등은 제외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벼락 맞은 나무나 당산 나무 등도 떡살을 만드는데 사용하지 않았다니 나무를 선별하는 과정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떡살의 문양은 기하학적인 빗살무늬, 목단 국화를 비롯한 각종 꽃, 나비와 같은 곤충, 잉어로 대표되는 물고기, 수복강녕 같은 글씨, 당초문, 태극무늬, 포도 등 길상(吉祥) 사물을 새겼다고 하는데 집집마다 떡살을 만드는 솜씨가 달라 똑같은 물건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임술년에 제작된 것으로 명문이 남았다. 굉장히 정교한 작품이다.
▲ 빗살무늬 떡살 임술년에 제작된 것으로 명문이 남았다. 굉장히 정교한 작품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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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을 새긴 떡살의 용도 또한 달랐음은 물론이다. 목단은 부귀, 국화는 장수, 연꽃은 축복, 매화는 맑은 우정, 물고기 박쥐 학 거북이 사슴은 5복을 상징하고 나비는 부부 금슬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아이의 돌, 회갑 등에 맞는 떡살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선조들에게 떡살은 일종의 벽사기복(辟邪祈福)을 담은 주술적인 의미를 담았으면서 맛과 멋을 느끼게 작은 예술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떡살은 집집마다 용도에 따라 몇 개씩 주인의 이름, 만든 날짜를 새겨 비치하고 다른 집에 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집안의 문양을 바꾸려면 문중회의를 열 정도였다니 우리 선조들이 작은 떡살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떡살보다 그 양이 많지 않다. 물고기 문양이 있다.
▲ 다식판 떡살보다 그 양이 많지 않다. 물고기 문양이 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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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다가온다. 이제 시루에 떡을 찌는 집은 거의 없다. 떡메로 떡을 치는 광경은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단순히 먹기 위한 놀이가 되었다. 아마 시루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떡살 무늬에 부귀다남과 수복강녕을 기원을 담았다고 한다면 알아듣지 못 할 젊은이들도 많을 것이다. 당연히 떡살은 찾기 어려운 물건이 되었다.

어떤 이는 떡살을 음양오행의 철학을 담은 예술품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조선시대의 판화라고도 한다. 맞는 말이다.

결코 풍요롭지 않았음에도 좋은 나무를 가려 섬세한 손끝으로 아름다움을 새길 줄 알았던 선인들의 멋이 다시 보이는 명절이다. 더러는 여인들에 의해 투박하게 조각되기도 했다는 떡살. 여인들에 의해 지켜졌던 가문의 명예. 그 떡살에 문양을 새겼던 선인들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다가오는 설날에 선인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떡살을 잠시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떡살, #다식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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