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고재 '소호와 해강의 난죽'전 포스터
 학고재 '소호와 해강의 난죽'전 포스터
ⓒ 학고재

관련사진보기


한국 전통미술에 애착을 가지고 이를 꾸준히 소개해온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본관에서 임진년 새해맞이 첫 전시로 한말과 일제강점기 사이에 활동한 두 작가를 조명하는 '소호와 해강의 난죽' 전을 연다. 출품작은 소호의 작품 20점, 해강의 작품 13점, 합작품 1점이다.

소호 김응원(小湖 金應元, 1855~1921)은 대원군의 제자로 예서와 행서에 능했고 스승의 석파란을 계승했다. 그의 난은 그의 호를 붙여 '소호란(小湖蘭)'이라고 할 정도로 독자적이다. 또한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은 왕세자 영친왕의 스승으로 묵죽의 새 화풍을 일으켰다. 1915년에는 '서화연구회'를 창설했고 이응로 같은 수제자도 낳았다.

근대기에 사군자는 서예와 회화의 중간 위치에 놓이면서 서화라 불렸다. 한말에도 사군자 열기가 식지는 않았으나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 제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문화적 상징성과 역사성, 예술적 가치가 많이 훼손된 것이다.

문사의 '선비정신' 빼닮은 난죽(蘭竹)

학고재 갤러리 본관 1층 전시실. 작품을 직접 설명하는 학고재 우찬규 대표
 학고재 갤러리 본관 1층 전시실. 작품을 직접 설명하는 학고재 우찬규 대표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옛 문사나 조선의 지식인은 자연 중에서 선비정신을 빼닮은 사군자에 깊이 탐닉했다. 사군자도 시대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져 조선시대에는 매죽(梅竹)이 성행했으나 한말과 근대기로 가면서는 난죽(蘭竹)이 더 인기가 있었다.

난(蘭)은 '문향십리(聞香十里)'라고 하여 그 맑은 향기가 십 리나 간다고 한다. 또한 죽(竹)은 추운 세한에도 그 푸르름을 잃지 않는 미덕과 그 올곧음으로 군자의 삶에 비유된다. '묵란'이 곡선미의 정수를 보여준다면 '묵죽'은 직선미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소호의 난(蘭), 단아하고 유려하다

소호 김응원 I '묵란도(墨蘭圖)' 137.5×34.5cm. 소호 김응원 I '석란도(石蘭圖)' 124.5×33.5cm 19-20세기
 소호 김응원 I '묵란도(墨蘭圖)' 137.5×34.5cm. 소호 김응원 I '석란도(石蘭圖)' 124.5×33.5cm 19-20세기
ⓒ 학고재

관련사진보기


위 소호의 두 '묵란도'와 '석란도'에 적혀 있는 시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山深日長(산심일장), 人靜香透(인정향투)
산 깊고 해 긴데, 사람 자취 고요하니 향기만 살고 있다 - 묵란도

綠玉樷中紫玉條(녹옥총중자옥조), 幽花踈淡更香饒(유화소담갱향요)
푸른 무더기 가운데 붉은 줄기, 그간 꽃은 소담한데 향기는 넘친다 - 석란도

이 두 편의 시에 담긴 주제는 같다. 난(蘭)은 궁핍해도 굴하지 않고 덕을 쌓고 학문을 익히는 선비처럼 인적 끊어진 곳에서도 그 그윽한 향기를 소담하게 뿜어낸다는 뜻이다.

소호의 난(蘭)은 기품 있고 단아하고 유려하다. 가는 선과 굵은 선의 변주로 선율감이 넘친다. 또한 힘찬 움직임이 넘치고 그런 기운이 몸에 느껴질 정도다. 행서, 초서 등 서예를 터득한 후에야 난을 칠 수 있다는데 소호가 서예에 능한 건 그런 면에서 당연하다.

해강의 죽(竹), 넉넉함과 풍요로움 주다

해강 김규진 I '월하죽림도 10폭병풍(月下竹林圖十曲屛)' 130×375cm
 해강 김규진 I '월하죽림도 10폭병풍(月下竹林圖十曲屛)' 130×375cm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해강 김규진 I '수죽도(脩竹圖)' 견본수묵 128×43cm. 해강 김규진 I '풍죽도(風竹圖)' 견본수묵126×36cm19-20세기(오른쪽)
 해강 김규진 I '수죽도(脩竹圖)' 견본수묵 128×43cm. 해강 김규진 I '풍죽도(風竹圖)' 견본수묵126×36cm19-20세기(오른쪽)
ⓒ 학고재

관련사진보기


예로부터 '죽보평안(竹報平安)'이라고 하여 대나무 그림은 사람 맘을 편하게 해준다고 봤다. 위 '월하죽림도'에도 숲 뒤로 둥근 달이 휘영청 떠 있어 마음이 넉넉하고 푸근해진다. 세찬 바람에 스치는 짧은 댓잎들이 실제 같다. 해강은 특히 통죽 그림에 빼어났다.

해강의 죽(竹)은 '수죽도'나 풍죽도'에서 보듯 입체감과 볼륨감이 풍부하다. 뒷면의 흐린 먹, 중간의 보통 먹, 앞면의 진한 먹이 오버랩 효과를 준다. 이런 참신한 필법은 추종자도 많을 정도로 당대작가들을 매료시킨다. 해강은 이렇게 젊은 시절부터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려 '죽사(竹士)'라는 호까지 얻는다.

이응로 화백, 해강의 직속제자

이응노 I '용' 한지에 묵 69×68cm 1984
 이응노 I '용' 한지에 묵 69×68cm 1984
ⓒ 이응노

관련사진보기


이런 해강은 우리 현대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암 이응로(顧菴 李應魯, 1904~1989) 화백은 바로 그의 직속 제자다. 이응로의 초기작에는 전통형식은 붕괴되고 서양양식이 들어오는 과도기적 성격이 보인다. 이런 시기에 우리 스스로 뭔가를 해볼 기회를 놓친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로 우린 결국 근대 없이 어설픈 현대를 맞았다.

중국 전통화, 베이징 옥션에서 700억 원에 거래

중국은 우리와 다르게 전통을 잇는 서화가들이 큰 대접을 받는다. 그 대표적 인물로는 장다첸(張大千, 1899~1983)과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가 있다. 치바이스는 해강과 동시대 작가인데 2011년 5월 베이징 옥션에서 '송백도립도'가 718억 원에 낙찰되었다. 이 점에 대해 이번 전을 기획한 우찬규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 큰 이유는 일제의 우리문화 말살정책 때문이다. 그 영향은 지금도 남아 있다. 게다가 이 시기에 이렇다 할 작가가 나오지 못했다. 치바이스는 작년에 베이징 옥션에서 700여 억에 팔렸는데 해강은 최고가가 2억 정도일 뿐, 미술시장에서 저평가돼 있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다음과 같은 말로 잇는다.

"우리도 중국처럼 전통미술에서 뿌리를 찾는 운동을 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도 근대기 작품은 거의 컬렉션을 하지 않는다. 수준이 떨어진다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우수작도 많다. 어떻게 조명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한국근대서화는 거의 다 일본에 있다. 그걸 볼 기회조차 없다. 이번 작품들도 일본에서 온 거다."

고전의 고마움과 소중함 다시 생각

해강 김규진 I '죽석도(竹石圖)' 138×41cm 19-20세기
 해강 김규진 I '죽석도(竹石圖)' 138×41cm 19-20세기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제 끝으로 해강의 '죽석도'를 감상해보자. '죽석도'에 적힌 시 한 구절을 보면 "시인도 품평하기 어려워한다(詩人猶豫品題難, 시인유예품제난)"라고 적고 있다. 옛 시인도 가는 바람에 나부끼는 대나무의 그윽한 멋과 그 아름다움을 다 형용할 수 없었나보다.

어쨌든 한국인의 기백과 전통을 담은 우리 회화가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안목을 갖춘다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작품이 나올까. 하긴 이우환의 조응미학이나 한국미술을 세계화한 김환기의 추상화도 이런 전통에 그 바탕을 두었을 것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전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이번 전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덧붙이는 글 | 장소 : 학고재(서울 종로구 소격동)
일시 : 2012. 1. 11. ~ 2. 19. (무료 관람)
www.hakgojae.com



태그:#난죽(蘭竹), #소호 김응원, #해강 김규진, #사군자, #이응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