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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은 우리 부부의 혼인 25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987년 1월 10일 태안성당에서 혼인미사로 하느님 앞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답니다. 세월은 유수 같고 바람 같다더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혼인을 한 때가 어제 같건만 어느새 25년, 사반세기가 흘렀습니다.  

혼인 25주년을 일러 '은혼(銀婚)'이라고 하지요. 50주년은 '금혼(金婚)'이고, 60주년은 '회혼(回婚)'이라고 한다지요. 천주교 사제님들은 사제서품 25주년을 '은경(銀慶)'이라고 하고, 50주년을 '금경(金慶)'이라고 하는데, 신자들은 독신 사제의 은경축과 금경축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하곤 하지요.

부부의 혼인 25주년과 천주교 사제의 서품 25주년을 은혼과 은경으로 부르며 각별히 기념하는 것은 '25'라는 수가 각별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50년은 100년의 절반이고, 25년은 50년의 절반이니, 25년은 그대로 사반세기를 뜻하면서 한 세대를 상징하는 숫자일 듯싶습니다. 혼인한 부부가 정상적으로 아이들을 낳으면 그 아이들은 대개 성년을 넘기거나 성년이 되니, 25년은 며느리나 사위를 보게 되는 세월이기도 하지요.

지난해 8월 18일, 아내의 57회 생일을 맞아 가족이 점심 외식을 했다. 2012년 1월 20일 혼인 25주년 기념일에는 사진 한 장 찍지 못해, 지난해 여름 사진을 대신 올려서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 가족 외식 지난해 8월 18일, 아내의 57회 생일을 맞아 가족이 점심 외식을 했다. 2012년 1월 20일 혼인 25주년 기념일에는 사진 한 장 찍지 못해, 지난해 여름 사진을 대신 올려서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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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혼인 25주년, '은혼'을 기념하는 것은 서양에서 온 풍습이라고 합니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주로 그리스도교 국가들로 전파되었는데, 25년 전의 결혼식을 재현하면서 친지들에게서 은으로 된 선물을 받거나 부부가 교환하기도 한다는군요.

요즘은 인간의 자연수명이 길어진 관계로 금혼식 행사를 하는 부부도 많고, 회혼례 행사를 치르는 부부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혼인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례는 자녀나 며느리, 사위, 손자손녀들 중에 앞세운 사람이 하나도 없어야 예식을 올릴 수 있다니, 혼인 60주년이 되었다고 해서 누구나 회혼례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런데 우리 부부는 금혼이나 회혼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일 듯싶습니다. 내가 마흔 살을 먹고서야 혼인을 했으니까요. 나이 마흔에 서른네 살 처자를 아내로 맞았으니, 우리 부부는 서로를 구원해 준 셈일 것도 같습니다.

하여간 내 나이 마흔에 혼인을 하여 어언 25년을 살고 보니 나는 60대 중반, 노년 초입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내도 환갑을 이태 앞둔 나이가 되었고…. 이래저래 우리 부부에게는 혼인 25주년이 좀 더 각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은혼식 행사를 아주 조촐하게, 소리 소문 없이 치렀습니다. 아무에게도 '은혼'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대학생인 딸아이와 아들 녀석은 미리 알고 3일 전인 주말에 작은 선물들을 사 가지고 왔지만, 당일에는 우리 부부만 서로 얼굴을 마주보아야 했습니다.

올해 연세 89세가 되신 모친께는 아예 알려 드리지 않았습니다. 노친은 평생 동안 혼인기념일을 모르고 살아오신 분입니다. 당신의 혼인 날짜도 기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낭군님과 살아오시는 동안 한 번도 혼인기념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았지요.

그런 노친께 우리 부부의 혼인기념일 얘기를 한다는 것은 죄송스럽고 무안한 일이기도 할 터여서 오래 전부터 우리 부부는 노친 앞에서는 혼인기념일 얘기를 일체 비치지도 않고 살아왔지요.

더욱이 2004년 제수씨가 서른아홉 나이에 세상을 뜬 후로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우리 부부의 혼인기념일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수씨가 살아 있을 때는 제수씨 쪽에서 우리 부부의 혼인기념일을 기억했다가 축하를 해주고, 또 우리 부부도 동생 부부의 혼인기념일을 기억했다가 축하를 해주곤 했는데, 제수씨가 세상을 뜬 후로는 그 일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동생이 40대 중후반 나이에 짝을 잃고 홀아비 신세가 된 후로는 정말 가족들 앞에서 우리 부부의 혼인기념일 얘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우리 부부는 혼인기념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채로, 그냥 무덤덤하게 그날을 보내곤 했지요.

하지만 25주년만큼은 우리 부부만이라도 조촐하게나마 행사를 갖고 싶었습니다. 우선 내가 아내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서 아내에게 교우가 운영하는 '보석당'을 가자고 했습니다. 언젠가 혼인기념일에 자수정 목걸이를 하나 선물했다가, 마누라를 데리고 가서 본인 맘에 드는 걸로 고르게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볼품없는 것을 사왔다고 핀잔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난해 8월 18일, 아내의 57회 생일에는 서울에서 공부 중인 아들 녀석만 빠지고 가족이 함께 하는 외식 행사를 가졌다.
▲ 가족 외식 지난해 8월 18일, 아내의 57회 생일에는 서울에서 공부 중인 아들 녀석만 빠지고 가족이 함께 하는 외식 행사를 가졌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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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내는 사양을 했습니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쪼들리는 경제사정을 감안하여 사양을 하니 나로서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집사람은 선물 대신 저녁에 우리 부부만 밖에 나가 외식을 하자고 했습니다. 나는 분위기 있는 집에 가서 음악 듣고 칼질을 하며 와인 한 잔 마실 생각을 하면서 잔뜩 기대를 품었습니다.

저녁 6시쯤 노친께 저녁을 차려 드렸습니다. 노친은 당신 혼자 식사를 하게 된 연유를 물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모임'이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노친께 그런 거짓말을 하고 우리 부부만 저녁에 외식을 하러 가기는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매일 저녁 하는 일인 노친께 홍삼 엑기스 드리는 일을 7시쯤에 하고, 회전전자파광합성 녹말을 탄 기공수를 컵에 따라서 식탁에다 놓고 그 옆에 마늘 환 상자와 작은 숟가락을 놓은 다음 노친께 한 시간 쯤 후에 그것들을 손수 드시도록 이르고 우리 부부는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차에 오른 우리 부부는 동쪽 하늘의 보름달을 보며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습니다. 그때서야 아내는 내게 목적지를 지시했습니다. 나는 드라이브를 겸해 전원 속의 모양 좋은 집으로 가서 칼질을 하게 될 것을 기대했는데, 아내는 의외로 시내의 중국음식점을 내게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우리 부부는 탕수육 한 접시 놓고 자장면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우리 부부의 혼인 25주년임을 알게 된 음식점 주인이 서둘러 근처 마트에 가서 와인 한 병을 사 가지고 와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술을 못 마시는 아내는 사이다로 축배를 들며 그런대로 즐거워했습니다.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천안시 축구센터 세미나실에서 거행된 '2011충남문학축전'에서 제4회 '충남문학공로대상'을 수상하고, 부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충남문학공로상 수상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천안시 축구센터 세미나실에서 거행된 '2011충남문학축전'에서 제4회 '충남문학공로대상'을 수상하고, 부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충남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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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나온 우리 부부는 맑은 하늘의 보름달을 보며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읍내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천천히 차를 몰며 보름달을 보곤 했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보름달처럼 내 가슴에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내는 노친을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인 탓에 겨울방학임에도 자유롭지 못한 처지였습니다.

노친을 모시고 사는 자식으로서 나나 집사람이나 노친께 최선을 다하지만, 솔직히 말해 자유롭지 못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불편을 말없이 감수해주는 아내가 나는 고맙고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 그런 마음을 다시 한 번 가슴 가득 안으면서 나는 한적한 곳에 잠시 차를 세우고 보름달이 들여다보건 말건 한 팔로 아내를 안고 뺨에 힘껏 입을 맞춰 주었습니다. 보름달이 빙그레 웃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부부의 혼인 25주년, 내 나이 60대 중반 시절에 맞는 은혼식을 보름달이 환한 얼굴로 축복을 해주는 셈이었습니다.


태그:#은혼식, #금혼식, #회혼식, #혼인 25주년, #부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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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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