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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이 마석 모란 공원에 누웠다. 거의 대부분의 야당 인사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선생을 고문하며 정권을 유지했던 당의 후예들 조차도 훌륭한 분이라고 애도한다. 그런데 왜 김근태 선생은 국립묘지에 못가고 사설묘지에 갔을까.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대부'이자 '세계의 양심수'라고 추앙 받으면서도 말이다. 나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값어치가 이것 밖에 안 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선생이 죽어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이땅의 현실 만큼이나 모란 공원 민주열사 묘역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2011년까지 공식적으로 모란공원에 잠든 민주인사들은 총 118분이다. 이제 119분이 이곳에 잠들었다. 집계되지 않은 인사들이 훨씬 더 많긴 하지만. 

 

나는 묘역을 보면 '민주주의의 값어치가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에 가서 공무중 사망한 망인을 국립묘지에 안장시키는 대한민국은 왜 '민주주의'를 이토록 천대하는가. 나는 민주인사들도 국립묘지에 안장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이라면 모름지기 '민주'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도 실제는 영 딴판인가 보다. 

 

김근태 선생의 절친한 벗인 '조영래' 변호사는 김근태 선생이 누운 자리의 건너편 응달진 곳에 누워 있다. 200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말이다. 조영래 변호사의 묘에는 아무런 비문도 없다.

 

김근태 선생의 하관식 날, 마침 무덤에 인사 올리는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에게 물었다. 왜 아무런 약력 소개도 비문도 없이 표지석만 있는가라고. 표지석은 원주에 계시던 한살림 창립자이신 '장일순' 선생이 썼다고 한다(김근태 선생의 비문은 신영복 선생이 쓰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영래 변호사 가족 분들에게 무언가 써서 놓아야 하는게 아니냐고 했더니, 아무 것도 쓸게 없다라고 해서 그렇게 이름 석자만 새겨 놓았단다. 너무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라고 덧붙인다.  

 

그 윗편 응달진 곳에는 통일운동의 선구자 '문익환'목사가 누워있다. 가로 119.5cm 세로 116.5cm의 조그만 무덤. 국가보안법을 무수히 짓밟고 그는 '통일'을 외쳤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통일로 가는 대화는 없고 전쟁이 터질 듯한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통일'을 마지막 인사치레 정도로 다루고 있을 정도이고, 한나라당은 '북한'을 국내 정치 위기돌파용으로 이용해 먹는 상대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문 목사 바로 옆엔 '엄성준' 농민운동가가 누워 있다. 35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분이다. 농활온 학생들을 태우고 오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유족이 잘 찾아오지 않는지 꽃 한송이 없다.

 

대부분의 노동 열사들 무덤에는 책이며 꽃이며 고인을 외롭지 않게 해줄 뭔가가 있다. 하지만 노동조직의 후원을 못받는 인사들의 묘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몸담았던 과거 민주화운동 조직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조직의 핵심인물들 대부분 운동을 발판삼아 정치계로 진출했으니, 묘는 버려진 골방 모양이다.

 

묘역을 거닐다 발에 치이는 최고장이 붙은 곳에 섰다. 2011년 10월,11월 묘지관리비 23만2000원이 미납됐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죽어서도 가난을 떨치지 못하는 민주인사 앞에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유족들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어떤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인가. '고정희. 남. 1988년 5월 13일 당시 28세의 나이로 정신병원 강제 입원 중 의문의 운명. 전남 광주 생. 연대 전기공학과 졸. 김대중 후보 청년단체 민애청 중앙기획위원으로 활동.' 민주당은 이런 인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김대중 후보는 훗날 대통령이 됐고, 지금은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전태일 열사 묘 바로 옆에는 '박래전'씨가 누워있다. 무수히 많은 꽃다발이 놓인 묘지 옆에 누운 덕(?)에 더 쓸쓸해 보인다.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그는 1988년 6월 6일 '군사파쇼 타도'를 외치며 재학중이던 숭실대 교정에 분신했다. 당시 나이 25세였단다. 1988년, 군사독재정권의 합법적 등장이 시작된 해였다.

 

'장창욱'님의 묘도 보인다. 2004년 4월 3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무효'를 외치며 한강에 분신 후 투신 사망했다. 당시 나이 46세.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단다. 대부분의 민주열사 신위에는 '민족민주열사 / 희생자 범국민추모제 행사위원회'의 명패와 알림글이 있으나, 이 묘에는 아무런 푯말도 없이 약력이 묘비명 뒤에 있다. '노무현 계승자'라고 자처하는 분들은 왜 여길 들르지 않는 것일까. 공식 민주열사로 대접하면 안 되기 때문일까.

 

'박동진'님. 의료보험노조활동 중, 현 전남 지사인 박태영씨가 의보공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235명을 해고하고, 500여명을 징계 혹은 수배조치되게 한 처사에 극렬히 반대운동하다 42세에 암으로 운명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안내글에는 '박 이사장의 부정부패를 고발했으나 검찰은 수사를 피했고, 그 하수인들만 구속 또는 파면 조치됐다'고 적혀있다. 민주당 소속으로 전남 지사가 돼 MB의 4대강 사업을 찬성하고 유치했던 인물, 구 민주당 인사들의 쌩얼이 이 묘비에 노출돼 있다. 이번 민주당 개혁은 어떻게 될까? 썩은 민주인사, 입으로만 민주를 외치는 정당 위장 취업자들이 판칠까? 

 

'박종철'님의 묘에 닿았다. 전두환 군부독재를 끝장내는 기폭제를 던진 분. 1987년 김근태 선생이 고문받던 방 옆에서 물고문을 당하다 숨졌다. 그것도 '박종운'의 정보를 대라는 걸 온몸으로 저항하다가 말이다. 김근태 선생은 1985년, 바로 앞방에 있던 '문용식'의 배후라는 걸 조작하는 고문을 당했다. '문용식'은 현재 민주당 인터넷소통위원장. 그는 2008년 촛불정국 당시 SNS 역할을 했던 '아프리카TV'를 경영했던 사람이다. 이제 총선에 출마한다고 한다. 박종철이 숨겼던 '박종운'은 2004년 한나라당 후보로 부천에 출마했다 떨어졌다. 여전히 한나라당 후보로 이번 총선을 준비 중이란다. 이런 그를 '박종철'님은 죽음으로 보호했다. 민주주의가 이런건가? 당시에는 군사 독재정권이라 보수도 진보도 없이 오로지 함께 자유와 민주를 외쳤다. 그런데 왜 이리 간극이 넓어졌을까.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하나 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어느새 가요 <사랑으로>를 흥얼거리면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을 다 돌았다.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가 아직 정성으로 민주인사들을 대접해 주지 않아도 민주주의는 외롭지 않았다. 이 땅에 이름 없이 살아가는 민주주의자들 덕택 때문이다. 적어도 출세한 권력자들 덕으로 민주주의가 숨쉬는건 아니라는 걸 모란공원의 이름없는 민주 인사들은 죽음으로 증명해 보여줬다. 훗날 여기 계신 인사들이 모두 국립묘지로 옮겨져 국가적 대우를 받을 것임을 확신하며 외쳤다. 민주주의 만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위키트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근태, #모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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