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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비정규교수노조가 대학본부 앞에 걸어놓은 현수막
▲ 대학시간강사의 절규 조선대학교비정규교수노조가 대학본부 앞에 걸어놓은 현수막
ⓒ 심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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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겨울답게 눈이 내리고 날씨도 차다. 대학은 방학 중이다. 학부의 계절학기나 교육대학원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겨울의 캠퍼스를 오가는 이가 없다. 적막하다. 조선대학교 비정규교수 노조에서 대학본부 앞에 걸어놓은 현수막의 내용이 처절하지만,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나는 대학의 시간강사다. 국립대 두 곳과 사립대 한 곳에서 강의를 한다. 학기 때는 그래도 괜찮다. 전임교수들과의 위계, 동료 강사들과의 위계, 차별적 임금, 연구공간의 부재, 몇 군데 대학을 오가며 강의를 해야 하는 고됨, 방학 아니고는 연구할 여력이 없는 것, 전임교수 될 가망 전혀 없는 것, 교수인지 아닌지 가끔 정체성에 회의를 갖게 하는 여러 씁쓸함 등, 그런 것 다 따지고 살면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그냥 괜찮다. 가족들의 최소한의 생활비는 벌 수 있으니까,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학기가 끝날 즈음 다음 학기 강의를 배정받는 문제에서부터 고뇌가 시작된다. 현행 시간강사의 계약은 한 학기 단위로 이뤄진다. 형식상 한 학기가 끝나면 계약이 끝나고, 학교에선 채용공고를 내고, 우린 서류 갖춰 응모하고 과목 배정받곤 한다. 문제는, 다음 학기 과목을 배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혹은 강의 시수가 줄어 들 수 있다는 데 있다.

고용불안의 문제다. 과목이야 상관없다. 감당할 수 있는 과목들 사이에서 배정되니까. 강의 시수가 줄어들면 생계불안으로 이어지니까 그게 가장 큰 문제다. 강의 시수가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많아야 한 학교에서 6시간에서 최대 9시간을 주니까. 그 강의 시수만 변함 없어도 좋겠다.

그래서 정부가 시간강사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겠다고 여러 고민을 하는 척하다가 고등교육법을 일부 개정해서 국회에 냈다. 교과위에서는 지난 연말 그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계약기간을 1년으로 하잔다. 최소 9시간의 강의를 맡기고.

그런데 전국비정규교수노조에서는 그 개정안을 개악안이라고 반대한다. 정부가 고등교육재정을 확충해 비정규교수에게 인건비를 대지 않으면서, 대학 보고 알아서 하라고만 한다면 대량해고와 같은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과위원장이 야당인 통합민주당 소속(변재일 의원)인데도 소용없다. 절망스럽다.

계약기간 연장하고 9시간씩 강의 시수 보장하라고 하면 대학 측에선 어떻게 나올까. 물론 법이니까 그렇게 하겠지. 단, 현재의 시간강사 절반은 해고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재정부담을 최소화하려면 내가 대학총장이어도 그 방법밖엔 없어 보인다.

1년에 4개월, 방학 동안 한 푼도 나오지 않는 임금

전임교수의 임금이 얼만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별 관심도 없다. 다만 시간강사의 임금이 시급제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그래도 괜찮다. 앞에서 말했지만 현재대로의 강의 시수만 보장된다면 최소한의 생활은 가능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방학이다. 시간강사에게는 방학에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여름방학 두 달, 겨울방학 두 달, 그러니까 1년에 무려 4개월 동안 한 푼의 임금도 지급되지 않는다. 시간강사는 방학에 굶어 죽으란 말인가? 저 현수막의 처절함은 그래서 나를 울린다. 학생들은 학기 단위로 등록금을 낸다. 전임교수와 교직원들 역시 방학 중에도 임금이 지급된다. 연말 보너스, 명절 보너스도 나올 것이다. 그런데 시간강사들에겐 한 푼도 없다. 어떻게 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건 방학 중에, 그러니까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기간에도 근무기간으로 산정되어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뭐하러 고용보험료는 매달 떼가는 지 모르겠다.

전남대비정규교수노조의 파업 및 천막농성
▲ 대학시간강사의 절규 전남대비정규교수노조의 파업 및 천막농성
ⓒ 심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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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비정규교수 노조에서는 지난해 12월 13일, 임금협상을 위한 단체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파업 및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시간당 강의료를 3000원 올려달라는 게 요구의 핵심이었다.

추운 겨울, 천막농성을 한 지 14일 만에 학교 측과 협상이 타결되었다. 전업강사료는 시간당 5만4000원에서 7500원 인상된 6만1500원으로, 비전업강사료는 2만9000원에서 3만2000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또한 매 학기 지급되는 강의준비금도 17만5000원에서 18만 원으로 올렸다.

근본적인 대책은 시간강사의 법적 지위를 교원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 고용불안이나 임금차별 등의 문제가 해소될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시간강사를 모두 전임교원으로 처우하기는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강사가 양산되었다. 재정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해법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현재의 시간강사 제도는 매우 기형적이고 불완전한 제도이기에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간강사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참여하고 실천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대체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노동자라는 표지가 짐스럽거나 혹은 창피한 일인지 모르겠다. 분노하고 저항하고 참여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그런데 노조의 파업이나 그 결과만 놓고 보면 너무 실망스럽다. 몇 푼의 강의료 인상이 분노와 저항과 참여의 결과라는 게.

대학 시간강사의 미래는 절망스러울 뿐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단다. 그 발언이 있기 전후, 대통령의 말을 우습게 아는 일, 혹은 대통령이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보이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보도를 보면, 12월 31일 밤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던 비정규노동자 30여 명이 해고됐다. 노사발전재단에서도 12월 30일 31명에게 해고통지를 했단다.

문제는 비정규직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적 임금과 처우가 광범위한 분야에서 상시로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다음 학기 시간강사들의 과목 배정을 마쳤거나 진행 중이다.

대학 시간강사들의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학기마다 학과에서 몇 명씩 박사학위자를 배출하는 데 그들에게 강의를 맡길 교과목이 다 어디서 떨어질 것인가. 기존의 강사들이 전임으로 나갈 길이 막혀 있는데, 이제 강사들끼리의 좀 더 노골적이고 비정한 경쟁이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지난달 말에 교과위를 통과한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은 그런 비인간적이고 비학문적인 경쟁에 불을 붙일 것이고….

그러니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의 변화를 몰고 올 한 해, 투표를 통해 부패하고 무능력하고 반역사적인 정권은 심판할 수 있을지 모르나, 대학의 시간강사를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너무도 요원해 보인다. 무엇을 어떻게 해볼 것이 없다. 절망스러울 뿐.


태그:#대학시간강사, #비정규직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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