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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골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고, 공부하면서 여러 농사일들과 집안일들을 돕고 있는 열네 살이다.

우리 집은 지난 8일부터 며칠 동안 김장김치를 200포기 정도 담그고, 고추장도 담고, 메주도 쒔다. 미루고 있었던 부엌일이며, 장독대 정리도 했다. 메주는 보통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쑤는데, 우리 집은 그냥 김장할 때 한꺼번에 다 하곤 한다.

시렁에 메주 매달았어요
 시렁에 메주 매달았어요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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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외할머니도 오셨다. "외할머니가 오지 않으셔도 우리끼리 잘 할 수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되시나 보다. 특히 메주가.

"일 년 먹을거리인데…. 혼자서 할라면 힘은 또 얼마나 들겠노…."

지금 신도시에 잠시 살고 계신 외할머니는 "집에서 장 담는 일이 번거롭다"고 하셨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번에는 따로 할 것 없이 여기서 같이 해서 가져가세요"라고 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메주를 쑬 때마다 외할머니가 오셨는데, 그때마다 나이 많으신 할머니께 죄송했다. 다음에는 외할머니의 고생을 덜어드려야 겠다. 우리집에서 외할머니 드실 것도 만들어드리는 게 좋겠다. 나는 이번에 메주 만드는 법을 잘 배워둬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과 함께 메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 몸무게가 도움되는 날도 있다니...

메주는 다들 알다시피 콩으로 만든다. 우리 집은 유기농으로 콩 농사를 지었다. (관련기사 : '열네 살 산골농부 "콩 털었어요") 이번에는 그 콩 두 말로 메주를 쑬 것이다. 메주를 쑤려면 콩부터 삶아야 한다. 보통 콩을 삶을 때는 하룻밤을 퉁퉁 불려서 삶으면 쉽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새벽에 잠깐 콩을 불린 후 온종일 뭉근한 불에 삶아야 좋다고 하셨다.

"그래야 콩이 싱겁지 않고 고솜하게 맛이 있지."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을 때고, 어마어마한 양의 콩을 삶았다. 온종일 젓다 보니 콩이 갈색이 된다. 콩을 초콜릿 색이 되게 잘 삶아야 발효가 잘된단다. 이제 콩을 건진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렇게 삶고 나니 짭조름하고 담백한 게 정말 맛있다. 옛 어르신들의 지혜는 대단하다.

콩이 누레졌다 싶으면 이제 콩을 꺼내서 물을 뺀 후 밟아줘야 한다. 우리집은 콩을 절구에 찧는 대신 비닐에 넣은 후, 다시 자루에 꽁꽁 싸매서 꽉꽉 밟아준다. 난 이 일이 자신 있다. 콩이 잘 으깨져야 맛있는데, 어머니나 외할머니가 밟으면 으깨지지 않는다. 내 몸무게가 '좀' 되니까. 올라가기만 해도 콩이 가루가 된다. 내 몸무게가 도움되는 날도 있구나.

콩에서 뺀 물을 고추장에 넣으면 아주 꿀맛이다. 고추장에서 약간의 단맛과 담백한 맛이 왜 나나 했더니 이 콩물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 이 물은 묵은 된장이 뻑뻑할 때 섞어주면 좋다고 한다. 그러고도 남으면 개한테 주고, 밭에 거름으로도 뿌려준다.

콩을 하나하나 집어먹어 본다. 구수하고 담백한 게 정말 맛있다. 난 콩을 싫어하는 편인데, 이 콩을 먹어보니…, 콩이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

"다 먹어버리면 우짤라고?"

외할머니가 불호령을 내리신다. '인제 그만 먹어야지' 하다가 몰래 하나 더 먹을 만큼 맛있다.

방안에 남는 고약한 냄새

삶은 콩을 일부 떼어 짚을 깐 바구니에 담고, 다시 짚을 덮어 아랫목에 담요를 덮어둔다. 청국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렇게 2~3일을 놓은 후, 소금을 넣고 절구에 찧으면 진득진득한 청국장이 된다. 아, 물론 방에는 고약한 냄새가 남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메주를 만들어야 한다. 메주를 만들 때는 네모난 틀에다가 으깨진 콩을 넣고 꾹꾹 눌러 빼내면 쉽다. 우리집엔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틀이 있다. 틀이 있지만,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니어서 외할머니랑 나랑 손으로 네모난 모양을 만들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메주를 만지다 보니 모양이 잘 안 만들어진다. 밑이 펑퍼짐하거나, 무지 크게 됐다. 그걸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잘 다듬어 주셨다.

이 메주들을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방에 옮긴다. 원래는 양지바른 곳에서 이틀 정도 말린 다음 방에 걸어 숙성시키는데, 날이 너무 차서 방에다 짚을 깔아 말렸다. 냄새가 아주 일품이다.

사흘 후, 이제 짚으로 메주를 매달아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외할머니가 걱정되셨는지 메주 빨리 매달라고 여러 번 전화를 주셨다. 그동안 우리는 양파 망에다 짚과 함께 메주를 넣고 매달았는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짚으로 매달아 보자 하신다.

말린 멸치를 조금 들고 메주 묶는 법을 배우러 이장님 댁으로 간다. 짚으로 메주를 묶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열 가닥 정도씩 아래쪽을 묶은 짚을 두 개 준비한다. 그것을 세 가닥으로 나눠 꽁지 쪽을 마주 보게 한다. 그리고 서로 얽히게 놓고 메주를 거기에 세운다. 그런 다음 묶인 바깥쪽을 세 가닥씩 나누고 두 가닥씩을 메주 위로 'X자'로 얽히게 한 뒤, 나머지 한 가닥을 모아 메주 머리 쪽에서 양쪽으로 묶는다. 그리고 양쪽에서 새끼를 꼬아 시렁에 걸어 묶으면 된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것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그런데 이장님댁에 밤마실을 오셨던 할머니 한 분이 참견을 하셨다.

조심해야겠어요... 머리통 깨지긴 싫으니까요

"잠깐! 여기가 (짚이) 빠졌어. 자다가 머리통 안 깨질라면 이걸 밑으로 해서 야무치게 해야지."

'자다가 머리통 안 깨질라면' 메주를 잘 묶어 달아야 한단다. 이 말 때문에라도 메주 묶는 법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메주를 다 매달고 나니 일곱 번째 마지막 메주가 아주 조그맣다. 메주는 짝수로 매다는 게 아니라고 해서, 큰 메주에서 조금을 떼어내 나머지 하나를 만든 것이다.

"이것도 메주구나, 하하."
"그러지마. 얘네들도 들어. 맛없어지면 어쩌려구?"

어이쿠, 그러면 안 되지. 얼른 사과를 한다.

"얘들아 잘 숙성돼서 맛있는 된장이 돼라. 고마워~."

음력 정월 그믐이 되면 우리는 메주를 씻어 소금물에 담글 것이다. 그걸 나중에 분리해서 항아리를 볕을 잘 쪼인 후 숙성시키면 간장과 된장이 된다. 고추장은 햇것이 좋고 간장과 된장은 묵을수록 좋다고 한다.

그래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자다가 머리통 깨지지 않으려면 메주를 잘 묶어 달 것!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네 살 학생기자입니다.



태그:#메주, #된장, #메주 쑤기, #메주 만들기,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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