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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한 주택에서 김현아씨가 정상길 두꺼비하우징 팀장에게 웃풍이 거센 낡은 현관문을 보여주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한 주택에서 김현아씨가 정상길 두꺼비하우징 팀장에게 웃풍이 거센 낡은 현관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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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틈으로 웃풍이 너무 세요. 웃풍 막는 커튼을 3개나 달아도 한기가 느껴져요."

1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동 237번지 끝자락에 있는 한 주택. 이곳 주인인 김현아(32)씨는 정상길 두꺼비 하우징 팀장과 함께 1층 세입자의 방에 들어섰다. 나무 창틀과 낡은 현관문으로 웃풍이 그대로 느껴졌다. 김씨는 "20년 전 날림으로 지은 집으로, 벽을 긁으면 모래가 나올 정도로 단열이 형편없다"며 "여름에는 물이 샜다"고 말했다.

김씨의 남편은 열쇠 수리공이다. 김씨 부부가 살고 있는 3층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김씨는 현재 세입자의 집을 고칠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그는 "5년 전에 아이 방 창문과 창틀을 싼 제품으로 바꿨는데도 수십만 원이 들었다"며 "1, 2층 세입자 방도 고쳐줘야 하는데 비용을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씨 집에는 3가구가 세 들어 살고 있다. 집 크기는 23~50㎡(7~15평)로 보증금은 500만~700만 원, 월세 20~30만 원이다. 김씨는 "모녀 가정인 1층 세입자는 다른 집을 알아보고 있다, 추운 겨울에 이사를 하게 돼 안타깝다"며 "집을 수리만 하면, 세입자도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고 우리도 보증금 반환 걱정 안 해도 될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정상길 팀장은 김씨의 말을 노트에 꼼꼼히 적었다. 그는 "구조진단을 통해 웃풍을 잡아낸 후 문과 창을 바꾸고 단열재를 보강하면 열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모녀 가정에 위한 무상 집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집주인 부담은 많이 줄어든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번 여름에 우연히 마을 모임에서 참석해 두꺼비 하우징을 알게 됐고, 이렇게 집수리를 해준다고 해서 너무 감동적"이라며 "쫓겨나는 재개발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전면 철거 방식의 재개발·뉴타운 사업을 하지 않아도, 낡은 주택을 수리하고 기반 시설을 갖추면 마을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다"고 전했다.

차도 못 올라가는 낙후된 동네로 들어간 두꺼비 하우징

최근 서울 은평구의 두꺼비 하우징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전면 철거 방식의 뉴타운·재개발 사업이 가진 부작용이 큰 상황에서 서울시가 두꺼비 하우징을 하나의 대안 모델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선 전부터 이 사업에 관심을 보여 온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2년 이 사업을 확대 시행하는 데 474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두꺼비 하우징은 김우영 은평구청장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내건 공약에서 시작됐다. 이미경 민주당 의원(서울 은평갑) 보좌관 출신인 김 구청장은 "은평구에서 주민은 쫓겨나고 건설사만 배불리는 재개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며 "용산사태 이후 민주당 뉴타운·재개발대책특별위원회에서 실무를 맡으면서 대안을 고민했다"고 전했다.

김 구청장은 또한 "재건축이 되면 보일러 판매점, 철물점 등 소상공인의 일거리가 없어지는 등 지역경제가 죽는다, 반대로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지역 소상공인들과 함께 집을 고치도록 하면 지역 경제가 선순환되고 주민들도 마을공동체를 이루면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구청장 당선 이후, 은평구는 지난해 12월 주거복지·환경단체인 나눔과 미래, 녹색연합, 환경정의와 함께 민간합자 사회적 기업 두꺼비 하우징을 설립했다. 황영범 은평구청 두꺼비 하우징 팀장은 "관에서 주도하면 주민참여의 어려움이 있고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민간 주도의 민관합자회사를 세웠다"고 밝혔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 237번지는 전체 주택 106호 중 77호가 지은 지 20년이 넘었을 정도로, 낙후된 동네다. 이곳은 지난 6월 두꺼비 하우징 시범단지로 선정돼, 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 237번지는 전체 주택 106호 중 77호가 지은 지 20년이 넘었을 정도로, 낙후된 동네다. 이곳은 지난 6월 두꺼비 하우징 시범단지로 선정돼, 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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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에는 은평구 신사동 237번지가 시범단지로 선정됐다. 1만5600㎡의 면적에 234세대 587명이 살고 있다. 전체 주택 106호 중 77호가, 지어진 지 20년이 넘을 정도로 낙후된 곳이다. 한 주민은 "겨울에 차가 올라가기 힘들 정도로 골목길이 가파르다, 택시 기사도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라며 "주변에서 못사는 동네로 알려진 곳"이라고 말했다.

이후 두꺼비 하우징은 집수리 사업에 나섰다. 은평구 전체에서 100가구 가량을 수리했다. 은평구가 한국주택금융공사, 우리은행과 함께 연 이자 4.9~6%의 신용 대출 상품인 두꺼비하우징론을 출시해, 주민들의 부담을 덜어줬다. 저소득, 장애인, 한부모 가정 등에는 공모를 통해 사업비를 지원받아 무상으로 집을 수리해줬다. 주택관리 서비스도 시작했다.

두꺼비 하우징이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업은 마을 만들기다. 우선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마을 모임을 열고 마을 신문을 만들었다. 주민들이 원하는 시설 등을 조사했다. 내년 6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신사동 237번에는 주민커뮤니티 센터, 쓰레기분리수거 시설 등이 설치될 예정이다.

"방안에서 입김이 나오던 집... 이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

두꺼비 하우징이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정상길 팀장은 "여러 차례 주민 설명회와 주민 모임을 통해 두꺼비 하우징 사업을 설명해도 공감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았다"며 "사업을 설명하고 마을의 불편한 점을 조사하기 위해 10번 가까이 방문한 집도 많다"고 밝혔다.

이후 집수리 사업이 진행되면서 주민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김이동(66)씨도 그런 주민 중 하나다. 김씨는 인테리어업을 하는 남편,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35살 된 아들과 함께 지은 지 45년 된 50㎡(15평)짜리 단층 주택에서 살고 있다. 단열이 안 돼 한 겨울에는 방에서 입김이 나왔다. 그렇다고 형편 상 보일러를 자주 틀 수 없는 노릇이었다.

김씨 가족은 리모델링을 하려 했지만, 수천만 원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김씨는 "재개발이라도 돼서 작은 아파트라도 들어가는 게 희망이었지만, 재개발은 몇 년 전 무산됐다"며 "이후 두꺼비 하우징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큰 관심이 없었다"고 전했다.

두꺼비 하우징은 집수리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했다. 사진은 집수리가 이뤄진 김이동(66)씨의 집이다. 한겨울 방 안에서 입김이 나올 정도로 낡은 주택이었다. 벽에 단열재를 넣고 창문을 바꾸는 등의 집수리가 이뤄졌다.
 두꺼비 하우징은 집수리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했다. 사진은 집수리가 이뤄진 김이동(66)씨의 집이다. 한겨울 방 안에서 입김이 나올 정도로 낡은 주택이었다. 벽에 단열재를 넣고 창문을 바꾸는 등의 집수리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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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두꺼비 하우징은 김씨 가족의 어려운 상황을 전해 듣고 무상 집수리에 나섰다. 벽에 단열재를 넣었고, 창문도 열손실이 적은 제품으로 교체했다. 기와도 새로 단장했고 외벽도 깔끔하게 바뀌었다. 김씨는 "이제는 벌벌 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너무 고맙다"며 "다른 주민들에게 두꺼비 하우징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행순(78)씨 부부도 처음에는 두꺼비 하우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씨는 "기와를 고치는 데 두꺼비 하우징에서는 500만 원을 달라고 했다, 매우 비싸다"며 "다른 인테리어업자에게 300만 원을 주고 기와를 고쳤다"고 전했다. 정 팀장은 "구조 진단을 한 결과, 지붕 전체를 고치려 했다는데, 오해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정 팀장은 이씨 부부를 방문해 두꺼비 하우징 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적극 알렸다. 또한 주민들이 직접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노인정, 목욕탕 등의 시설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이씨는 "예전에 구청에서 주민 의견도 듣지 않고 산에 몇 억 원을 들여 공원을 만들었다, 올라가기도 힘들고 비행청소년들이 많아 이용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두꺼비 하우징은 직접 주민들의 얘기를 듣는다, 고향 같은 곳에 계속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니 좋은 일을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무료 집수리가 선거법 위반?... 법·제도 미비, 인식부족 극복해야

두꺼비 하우징은 이제 첫발을 뗐다. 처음 가는 길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적지 않은 주민들은 아직까지 완전히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한 주민은 "두꺼비 하우징을 하면 전체 주민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나타난 게 없다"며 "집수리 비용은 싸지 않은 것 같다, 하루 빨리 재개발을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상길 팀장은 "이 마을에서는 다른 기반시설 지원보다 집수리가 가장 시급한데, 현재 집을 무료로 수리해줄 법적·제도적 근거가 없고, 오히려 선거법 위반에 해당된다"며 "또한 좋은 자재로 최대한 싸게 시공하고 있지만, 사회적 기업을 유지하고 지역협력업체의 적정한 이윤을 보장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두꺼비 하우징에 대한 지역의 인식 부족도 문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9석씩을 차지하고 있는 은평구의회는 은평구가 두꺼비 하우징에 9800만 원을 출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을 2차례 부결시켰다. 또한 은평구가 내년 기반시설 설치비 13억 원(시비 지원 포함)을 편성했지만, 구의회는 이를 아직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주원 두꺼비 하우징 대표는 "두꺼비 하우징이 당장 뉴타운·재개발의 대안 중의 하나"라며 "사업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법·제도 미비 등을 개선해야 한다"며 "뉴타운·재개발을 모두 두꺼비 하우징으로 바꿔야 한다거나 반대로 무조건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김우영 구청장은 "두꺼비 하우징은 규모의 경제를 이뤄 존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또한 사업에 대한 신뢰를 더 쌓아야 한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이 두꺼비 하우징을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한 만큼, 뉴타운·재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시각이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태그:#복지는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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