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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박사의 '철학 고전읽기'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강신주 박사의 '철학 고전읽기'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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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분들은 거울을 잘 안 봅니다. 젊었을 때는 거울을 많이 봤는데 나이가 들면 거울을 보지 않게 되는 것은 거울 속에 자기 얼굴이 아니라 젊음이 없다는 것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젊고 아름다운 나를 '실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가까워지기 위해 두터운 화장을 하고 집착하게 됩니다. 사실 어떤 실체는 없는데 말이죠. 나가르주나의 '공(空)'은 바로 '어떤 것에게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개념입니다."

수수께끼 하나. '비가 내린다'라는 문장과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문장은 철학적으로 옳은 문장일까? 잘못된 문장일까?

<철학 VS 철학>의 저자 강신주 박사는 "인도 철학자 나가르주나 식으로 생각하면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쓸 수 없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강 박사는 지난 11월 28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철학 고전읽기' 일곱 번째 수업에서 인도 철학자 나가르주나와 그의 저서인 <중론>에 대해 강의했다.

그는 이날 강의에서 "무엇인가 영원 불변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변하거나 없어질 때 우리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며 "나가르주나는 영혼이든 해탈이든 불변하는 실체는 없으며, 실체가 있다는 생각이 집착과 고통을 낳는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나가르주나, "모든 것이 공(空) 하다"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는 인도의 불교 승려이자 철학자이다. 아르주나 나무 밑에서 태어났고 용(인도어로 '나가')의 도움을 받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나가르주나'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같은 이유로 중국, 일본, 한국 등 한자권 국가에서는 용수(龍樹)라고 불리기도 한다. 강 박사는 나가르주나의 사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불교의 사성제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불교에는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 도제(道諦)의 네 가지 깨달음이 있는데 이를 사성제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고'는 고통, '집'은 집착이나 편집, '멸은 소멸, '도'는 길을 의미하는 것인데 '고'의 원인을 '집', '멸'의 원인을 '도'로 설명합니다. 간략히 말하면 집착이 고통을 낳으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수단은 도라는 얘기이지요. 이렇듯 불교에서 집착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입니다."

강 박사는 "불교의 가르침은 '머릿속에 있는 것들에게서 어떻게 자유로워질까'를 고민하는 내용들"이라며 "깨달음을 의미하는 '해탈'이라는 용어도 문자 그대로 옮기면 '묶였던 것에서 풀려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나가르주나는 어떻게 하면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보았을까? 강 박사는 '인(因, hetu)'과 '연(緣, pratītya)'에 따라 모든 관계가 맺어지는 불교 연기론을 언급하며 나가르주나의 '공(空)' 개념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불교에서 인(因, hetu)은 직접 원인을, 그리고 연(緣, pratītya)은 간접적인 조건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이 '인'과 '연'은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난 이후에 그 일을 설명하는데 쓰이지요. 어떤 사람을 만난 이후에야 그 인연을 따져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개체들이나 사건들이 인연의 마주침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메커니즘을 불교에서는 보통 연기(pratītyasamutpāda, 緣起)라고 부릅니다. 모든 관계가 자성(自性)으로 인해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의존하여(緣) 일어난다(起)'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나가르주나가 '모든 것이 공(空)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성이 있다고 상정하는 모든 주장들은 결국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비가 내리고 있고 그것이 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우리는 '비가 내린다'라고 이야기하겠지요. 비의 자성에 '내린다'는 속성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전자의 경우 '비가 내린다'는 '내리는 비가 내린다'가 됩니다. 후자의 경우는 '내리지 않는 비가 내린다'가 되지요. 전자는 '중복의 오류'에 빠지게 되고, 후자는 '사실에 위배되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비가 내린다'는 문장으로 보았을 때 비가 자성을 가진다면 어느 경우나 오류가 발생하는 셈이다. 반대로 비에게 자성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비가 내린다'는 표현에는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게 되지요. 공(空)해지는 것입니다. 강 박사는 "세계와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공(空)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형이상학적 실체도 상정하지 않아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강생들이 '철학 고전읽기'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철학 고전읽기'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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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실체로 본다면 집착하고 있는 것"

그렇다면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어떨까? 나가르주나식 관점에서 보면 '비가 내리지 않는다' 는 잘못된 표현이다. 강 박사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표현은 비라는 실체를 정의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문장"이라며 "철학자 니체 역시 비슷한 표현으로 실체에 대해 집착하는 우리의 언어습관을 지적한 바 있다"고 말했다.

"실체라는 것은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근데 사람의 삶은 인연에 따라 앞을 모르고 흘러가는 것이지요. 내일 어찌될지 알 수가 없어요. 인연이 있어서 잠시 머무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무엇이든 실체로 본다면 그것은 집착하는 게 됩니다. 가령 다리가 잘린 사람이 우울해하는 이유는 있어야 할 게 없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두 다리가 있는 모습을 자신의 실체로 파악하는 것이지요."

강 박사는 "나가르주나는 불변하는 자아도 없고, 부처도 해탈도 모두 공(空)하다고, 심지어는 공(空)도 공(空)하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불변하는 자아란 불교에서 사람이 죽어서 윤회한다고 할 때 말하는 자아를 말한다. 그야말로 집착을 낳을 수 있는 모든 실체에 대한 차단인 셈이다.

강 박사는 "이러한 나가르주나의 철학은 불교 내부에 유입되어 들어왔던 일체의 형이상학적 사유를 제거하려는 노력이었다"며 "그의 공(空)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론>을, 철학적인 접근을 원한다면 <회쟁론>을 읽으면 된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태그:#강신주 , #철학 고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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