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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OccupyWallStreet) 시위가 석 달째로 접어들었다. '1%'의 가진 자에 대한 '99%'의 반격이다. 경제적 민주화를 위한 저항운동이다. '아랍의 봄'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다. 전례 없는 '미국의 가을'을 만들더니, 다시 국경을 넘어 한 달 만에 전 세계 1500여 개 도시로 확산됐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고용축소, 해고, 실업, 양극화…, 대한민국에서도 '1%대 99%'의 싸움이 진행중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물론, '99%'이다. 그들을 만나봤다. [편집자말]
지난 15일 경찰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의 요람인 뉴욕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파크)를 기습 진압한 직후, 마샤 스펜서(56)씨는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공원안을 바라봤다.
 지난 15일 경찰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의 요람인 뉴욕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파크)를 기습 진압한 직후, 마샤 스펜서(56)씨는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공원안을 바라봤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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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이 새벽에 트럭을 밀고 들어와서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 많은 사람이 연행됐고, 몇 명은 심하게 다쳤다. 심지어 기자도 머리를 다쳐서 병원으로 실려 갔다."

지난 15일(현지시각) 오전 7시, 미국 뉴욕 로어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공원) 앞. 마샤 스펜서(56)씨는 경찰이 설치해놓은 철제 바리케이드를 붙잡고 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공원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러나 그의 주름진 뺨에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뜨개질 바늘을 잡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어갔다.  

월가 시위대 위해 뜨개질하는 할머니들

"이것은 완전히 엿 같은 일이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됐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나와서 내 일을 할 것이다. 물론 내가 늘 앉아 있던 의자를 그들이 가져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른 시위대들도 다시 광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바리케이드에 기대어 선 스펜서씨는 다시 손에 들고 있던 뜨개질 바늘을 부지런히 놀리며 붉은색 털스커트를 짜기 시작했다.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600여 평 규모의 광장에는 수십 명의 경찰에 의해 '점거'된 공원이 허허롭게 펼쳐져 있었다. 전날만 해도 100여 동의 텐트와 침낭이 들어차 있었고,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모여 미국의 정의와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던 곳이다.

이날 새벽 3시경,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경찰과 청소차를 앞세워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의 요람이자 상징인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을 기습적으로 진압했다.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던 식당을 마지노선으로 정한 시위대는 서로의 팔짱을 걸고 버텼지만, 최루액을 뿌리며 곤봉을 들고 달려드는 경찰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5명의 기자를 포함해 200여 명이 연행됐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 시위대가 쓰던 텐트와 침낭, 그리고 수천 권의 책이 압수돼 폐처분됐다.

이틀 뒤인 17일 오후,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을 다시 찾았다. 이날은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에 저항하기 위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시작한 지 2개월째 되는 날이다. 스펜서씨의 말대로 시위대는 다시 자유광장으로 돌아왔다. 광장 전체를 바리케이드로 둘러싼 경찰의 감시 때문에 더 이상 광장에서 침낭을 깔고 잠을 잘 수는 없지만, 시위대의 투쟁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시위대는 이날을 '국제 행동의 날'로 정하고 뉴욕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며 총력 투쟁을 벌였다.

마샤 스펜서(56)씨는 손자들에게 더 나은 미국의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를 지원하고 있다.
 마샤 스펜서(56)씨는 손자들에게 더 나은 미국의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를 지원하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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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스펜서씨는 하루 종일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을 지켰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행진 대열을 따라 나선 적이 없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햇볕이 잘 드는 광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하루 종일 뜨개질을 하는 것이 전부다. 그동안 그가 만든 모자, 장갑, 목도리, 조끼, 스커트 등이 60개가 넘는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차가운 바닥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 시위대에게 나눠주고 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시위대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나 역시 계속 여기에 와서 그들을 위해 뜨개질을 할 것이다. 더 추워질수록 내가 만든 털모자, 털장갑, 털목도리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가 시위대를 위해 털실로 장갑, 모자 등을 짜기 시작한 것은 그의 손자들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하는 손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다.

"나에겐 5명의 손자가 있다. 이제 나이를 먹고 힘이 없어서 그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 사회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잘못돼 있다. 이대로 아이들이 크면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다. 마침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시작됐고, 내 손자들을 위해서 이 시위대를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 자신의 손자들에게 더 나은 미국 사회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차가운 날씨 때문에 손가락이 얼어붙는 것처럼 아리지만, 그가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털실을 뜨고 있는 이유다.

따뜻한 집에 앉아서 만들었다가 가져다줘도 그만이지만, 그는 지난 50여 일 동안 날씨가 궂은 날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광장에 나와 뜨개질을 했다. "(시위대가) 행진을 나가면 누군가는 광장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자신들을 위해 털실을 뜨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이들이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마샤 스펜서(56.왼쪽)씨와 캐런 하프만(69)씨가 자유광장(주코티공원)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에게 줄 털장갑, 털모자, 털목도리 등을 만들기 위해 뜨개질을 하고 있다.
 마샤 스펜서(56.왼쪽)씨와 캐런 하프만(69)씨가 자유광장(주코티공원)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에게 줄 털장갑, 털모자, 털목도리 등을 만들기 위해 뜨개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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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스펜서씨에게 새로운 동료가 생겼다. 철제 바리케이드 안쪽에 그와 나란히 앉아 뜨개질을 하는 캐런 하프만(69)씨는 라디오와 TV를 통해 시위 소식만 듣다가 참을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했다. 

"광장에 와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다가, 뜨개질을 하는 마샤를 발견했다. 나이를 먹어서 다른 일은 할 수 없지만 뜨개질만큼은 자신 있다. 내가 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인 것 같다."

"춥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북부 독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 날씨는 전혀 춥지 않다"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다. 그는 오후에 나와 저녁 일찍 돌아간다. "밤에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하기 때문에 늦게까지 광장에 머물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가 노구를 이끌고 광장까지 나와 뜨개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나라는 뭔가 많이 잘못 됐다. 돈에 의해서 정치가 좌우된다. 여기에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하고 해결 방안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 모두 함께 모여서 미국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서로를 보살펴주고 있다. 그렇게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의회가 돈에 의해서 선출된다. 대기업에 의해서 법안이 만들어지고 의원들은 대기업을 위해 투표한다. 대기업은 워싱턴을 조종하면서, 세금을 적게 낸다. 나는 특히 공교육이 다시 정상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건강보험을 필요로 하지만 혜택을 못 받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

그는 지난 15일 밤 시애틀에서 84세 할머니가 경찰이 뿌린 최루액을 뒤집어쓰고 병원에 실려 간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립대(UC 데이비스)에서 경찰이 학생들의 얼굴 정면에 모기약을 뿌리듯 최루액을 난사해 물의를 빚은 사건도 알고 있었다. 당시 '월스트리트 점령' 동조 농성을 벌이던 학생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길에 줄지어 앉아있었다. 이 사건으로 지난 22일 해당 경찰서장이 직위 해제됐고, 학교 총장이 공식 사과했지만 과잉진압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정말 옳지 않다. 여기 뉴욕시장도 계속해서 시위대를 쫓아내려고 하지만 불가능하다. 뉴욕에는 이런 장소가 매우 많다. 어디서든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계속 될 것이다. 뉴욕시장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도 할 수 있지만, 이 운동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경찰은 엄청난 실수를 하고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다치지 않길 바란다."

"그들에겐 총이 있지만"... '59일째 뜨개질 중'

지난 18일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립대(UC 데이비스)에서 경찰이 '월스트리트 점령' 동조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 정면에 모기약을 뿌리듯 최루액을 난사해 물의를 빚고 있다. (사진 출처 -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 홈페이지)
 지난 18일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립대(UC 데이비스)에서 경찰이 '월스트리트 점령' 동조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 정면에 모기약을 뿌리듯 최루액을 난사해 물의를 빚고 있다. (사진 출처 -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 홈페이지)

시위대가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절반 이상 규모가 줄었다.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광장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점이고, 추운 날씨도 부담이다. 점거 운동에 있어서 24시간 활동할 수 있는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타격이다. 26일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은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더욱 썰렁한 모습이었다.

50여 명의 시위대는 광장 한편에 모여 시국토론이 한창이었고, 30여 명의 시위대는 철제 바리케이드를 따라 늘어서서 손팻말을 든 채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미국 금융자본가들의 부패와 탐욕을 성토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스펜서씨와 하프만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시위대 한복판에서 뜨개질을 하는 사람들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 주변으로 4~5명이 더 붙어서 '뜨개질 그룹'을 만들었다. 두 사람과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도 있었지만, 20대 젊은 여성들의 모습도 보였다. 시위대는 줄었지만 뜨개질 작업은 오히려 규모가 확대된 것이다. 스펜서의 앞치마에는 '59일 째 뜨개질 중'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과 거의 같은 시간 동안 뜨개질을 해온 셈이다.

주닌 가르시아(29)씨는 뜨개질을 배운 지는 1년 됐고, 스펜서씨 등과 함께 뜨개질하기 시작한 것은 2주일이 채 안됐다고 했다. 그는 "(시위를 하는) 친구들을 주기 위해 스카프를 짜고 있다"며 "장갑 등은 너무 어려워서 못하고 스카프만 3개째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추워한다. 상점에서 사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서 주면 더 따뜻하고 사랑을 담을 수 있지 않겠나. 친구들이 여기서 캠핑을 하는데 밤에는 상당히 춥다. 내가 만든 것이 그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면 좋겠다."

"시위대 규모가 많이 줄었다"고 하자, 가르시아씨는 "많은 사람들이 낮에는 일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연휴여서 집으로 갔기 때문"이고 말했다가, 뒤늦게 기자의 질문 의도를 파악했는지 "그렇지만 우리의 운동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닌 가르시아(29)씨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할머니들과 함께 스카프를 뜨고 있다.
 주닌 가르시아(29)씨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할머니들과 함께 스카프를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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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더긴(55)씨는 뜨개질 바늘 대신 재미있는 손팻말을 들고 나왔다. 1960년대 말 미국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전설적인 록 밴드 '도어즈'의 노래 'Five to One'의 가사 중 한 단락이 적혀 있었다.

"They got the guns / But we got the numbers / Gonna win, yeah / We're taking over, come on! (그들에게는 총이 있지만 / 수적 우리가 우세하니 / 우리는 이길 거야 / 우리가 점령하는 거야!)"

이 노래는 '도어즈'의 보컬인 짐 모리슨이 베트남전의 영향을 받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긴씨는 "우리가 젊었을 때 많이 불렸던 노래"라면서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 뒤, 시위대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스펜서씨의 '뜨개질 그룹' 뒤편으로 짧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스펜서씨를 비롯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 할머니들은 치열한 투쟁의 공간에서 젊은이들과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황혼을 불태우고 있었다.


태그:#뜨개질 할머니, #월스트리트 점령, #월가 시위대, #경찰 진압, #최루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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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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