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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한 코너의 '서울메이트'의 한 장면.
 <개그콘서트> 한 코너의 '서울메이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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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C Meta, DJ Wreckx(메타와 렉스)의 디지털 싱글앨범 <무까끼하이>가 기상천외한 이유로 방송 심의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무까끼하이'는 전라도 방언 '거시기'와 비슷한 뜻으로 이 곡은 대구 지역의 사투리를 이용한 구수한 래핑이 특징인데 경상도 사투리가 일본어 같다고 해 불가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사투리를 일본어 같다고 한다면 서울말만 한국어란 말이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저는 부산에 위치한 부경대에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대학은 한 교육 강좌 때문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바로 '표준어구사능력향상과정'이 그것인데요. 사실 저는 우리 대학에 그런 교육이 있다는 사실을 언론들의 보도를 보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어쨌든 지난 17일 취재를 요청하기 위해 부경대 언어교육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놀랐습니다. 이미 크고 작은 언론사는 물론이고 MBC, KNN 등 방송사에서도 취재를 했고, 방송이 나갔다고 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17일에는 <부산일보>도 취재를 왔습니다.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은 "또 취재 왔나 봐", "방송 보니까 니 얼굴 크게 나왔더라"라며 낄낄 웃어댔습니다.

솔직히 말해 부산의 한 국립대가 '표준어능력향상'이라는 강좌를 연 것이 이처럼 많은 기사가 나올 정도로 특별한 일인지 의아했습니다. 대부분 기사 제목들이 "지방대에 등장한 '사투리 지우기' 강좌"처럼 노골적이거나 "궁디를 주차 뿌까", "서울말은 끝만 올리면 된다면서↑" 등 <개그콘서트>의 '서울 메이트' 코너를 끌어와 희화화했습니다.

지방대생의 자격지심일까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의아함을 넘어서 언짢아졌습니다. 사투리는 표준어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다분히 드러내기도 했고 지방보다 서울이 우위에 있다는 무언의 권력관계가 적잖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강의를 진행하는 구예진 실장도 일부분만을 보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두고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꼭 그렇게 서울말까지 교육하느냐는 식으로 기사가 나간 것을 보면 본래 의도와는 완전 반대된다"며 "강의는 서울말을 표준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부터 깨고 시작하며, 학생들에게 서울말을 쓰고 싶으면 서울말을 가르치는 학원에 가라고 말한다"고 말했습니다. '표준어'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공용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어 "학교에서 '표준어능력향상'이라는 강좌명을 붙였을 뿐이지, 이 교육은 서울말로 억양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의사전달이 원활하도록 스피치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며 "서울말을 써야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식으로 절대 교육하지 않으며, 오히려 잘 쓴 사투리는 강점이 될 수 있다고 교육 한다"고 말했습니다. 단지 사투리를 과도하게 사용하다보면 강한 억양에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고치고자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강의 들어봤더니... 표준말 교육은 없네

21일 '표준어능력향상강좌'를 수강하는 부경대 학생들이 거울을 곁눈질로 보며 자신의 표정을 살펴보고 있다.
 21일 '표준어능력향상강좌'를 수강하는 부경대 학생들이 거울을 곁눈질로 보며 자신의 표정을 살펴보고 있다.
ⓒ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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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저는 지난 21일 오후 6시, 언어교육원을 다시 찾아 학생들과 함께 2시간 동안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사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은 배에 손을 얹고 입꼬리를 올리고는 "나는 잘났다"를 반복해서 말한 뒤 강의가 시작됐습니다. 이날은 발성의 기본이라는 복식 호흡법과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밝은 표정 짓는 법 등을 연습했습니다. 강좌명은 '표준어능력향상'이었지만 강의 내내 사투리를 교정하는 내용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단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자신감 있는 스피치를 유도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언론의 관심을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서울에 본사를 둔 C사 면접 경험이 있다는 허요원(27)씨는 "표준어를 쓰지 않아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억양 차이로 의사전달이 되지 않거나 자칫 화난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고 여겨졌다"며 "부산에서 서울로 면접을 보러 가면 언어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서울권 학생들과 비교해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조수아(25)씨도 "이 강의가 마치 사투리를 쓰지 않기 위한 것처럼 알려지고 있는데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 있는 말투로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해 듣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이 강좌가 유난히 주목받을까요? '표준어능력향상'이라는 강좌명 때문이라면 '표준어는 좋은 말이고 올바른 말인데, 사투리는 나쁜 말이고 잘못된 말'이라는 편견, 즉 '서울 대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표준어 규정 제1항은 표준어를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개념정의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지난 2006년에는 지역 말 연구모임 '탯말두레'는 "지역 언어의 특성과 기능을 무시한 채 서울말만 사용토록 한 표준어 규정과 표준어로 교과서를 만들도록 한 국어기본법은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교육권을 침해 한다"며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문화를 선도하는 점,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점, 지리적으로 중앙에 있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다 하기 어렵고, 서울말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으므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합리적"이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2명의 재판관은 "서울 지역 외의 지역 언어도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으로 이들 지역 언어 모두를 표준어 범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해당 지역민에게 문화적 박탈감을 주는 것이므로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

21일 '표준어능력향상강좌'를 수강하는 부경대 학생들이 복식호흡을 연습하고 있다
 21일 '표준어능력향상강좌'를 수강하는 부경대 학생들이 복식호흡을 연습하고 있다
ⓒ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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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도 비슷합니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주최한 국어 정책 토론회에 발표자로 나선 윤석민 전북대 국문과 교수는 "표준어가 자연스러운 언어발달을 가로막고, 우열을 띠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멍게'나 '빈대떡'처럼 어느 지역 방언이든 널리 사용되면 표준어가 될 수 있다"며 "지역 방언의 무분별한 사용은 구성원들의 동질감을 해치고 사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표준어의 유용성을 언급했습니다.

반면 반대 토론자 강희숙 조선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교수는 "(표준어는)전 국민의 원활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통일적이고 일관성 있는 교육 또는 대중적 정보 전달과 공통 문화 형성의 도구로 크게 기여해 왔지만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권력화 된 나머지 비표준어에 해당하는 방언 사용자나 다양한 집단의 제한적 의사소통 방식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어떠한 규범이나 인식도 지역 언어의 사용을 부적절한 것으로 평가 절하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좋은 대학과 웬만한 대기업 본사, 방송사 등이 모두 서울에 있고,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기형적인 나라입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너도 나도 서울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수도권은 사람이 몰려들어 미어터지고, 다른 지역은 상대적 박탈감에 속이 터집니다. 그리고 은연 중에 중심에 살고 있다는 우월감을 취해 있는 서울사람들은 사투리를 '격이 떨어지는 신기한 말' 정도로 치부합니다. 이번 부경대의 '표준어능력강화강좌'에 대한 언론의 보도도 그런 얕은 생각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면접에서 사투리를 쓰면 불리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투리 자체보다는 면접관이 어느 지역 출신인가가 평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투리를 쓰더라도 면접관이 그 지역 출신이이거나 사투리에 대한 편견이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만큼 사투리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표준어' 아닌 '공용어'란 말 쓰는 건 어떨까요

서울이 아닌 지방에 태어나 사투리를 배우며 자랐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야 한다면 정당할까요? 또 서울말이 표준어라면 지역 방언들은 비표준어라는 말인데 비표준어를 쓰는 사람은 비표준 인간이 되어버리는 걸까요? '표준어'라는 말은 마치 서울말은 정상이고, 지역 말은 비정상이며, 때문에 비정상인 사투리는 고쳐야 한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심리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의견을 제안해 봅니다. '표준어'보다는 '공용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공용어는 '국가나 공공단체가 정식으로 사용하는 언어'라는 뜻으로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한 언어를 선택하는 것을 말하는데 한국에서는 표준어도 공용어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미상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어감상의 차이는 크기 때문에 사투리에 대한 편견과 위화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지역 언어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사투리라는 용어도 '어머니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탯줄을 통해 들어온 말'이라는 의미를 가진 '탯말'로 바꾸어 쓴다면 좋을 것이라 봅니다. 무엇보다도 표준어를 쓰지 않으면 교양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현 표준어규정 1항만큼은 반드시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지역 말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라질 때, 우리말의 어휘는 더욱 풍성해지고, 서울말을 쓰지 않으면 입조차 막아버리려 하는 서울공화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태그:#표준어능력향상, #표준어, #사투리, #부경대학교, #취업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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