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 년에 한두 번,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 추정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가장 최근의 기사로는 11월 3일 자 <매일경제신문> 기사를 들 수 있겠는데, 이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규모는 외환위기 이전 약 22.7%에서 2003년 17.7%까지 축소되었다가 최근에는 다시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기사 또는 기사가 인용한 연구결과들은 선진국과 비교해 과도한 규모인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를 축소시키기 위한 정책 대안 중 하나로 한결같이 세율인하를 주장한다.

높은 세율이 납세자로 하여금 조세를 회피하려는 동기를 제공하므로 세율을 낮추면 지하경제 규모가 축소되고 이에 따른 세원 확대로 세수가 증대될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럴까?
경제학에 레이거노믹스의 기초가 된 이론인 래퍼 곡선이라는 것이 있다. 높은 세율이 경제활동 주체로 하여금 생산활동을 억제하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하므로 세율을 낮추면 생산활동이 활발해지고 이에 따른 세원 확대로 세수가 증대될 것이라는 논리다. 눈치 채셨는지?

지하경제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 보자. 지하경제는 마약이나 밀수품처럼 법이 금지한 상품을 거래하는 부문, 가사처럼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공식 경제활동으로 잡히지 않는 부문, 그리고 조세부담을 회피하려는 변호사, 의사 등의 고소득 전문 직종을 포함한 자영업자 부문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 세율인하를 통해 그 규모가 축소될 수 있는 부문은 어떤 방식으로든 조세를 회피하고 있는 자영업자 부문이 될 것이다.

여기서 던져야할 질문은 왜 지하경제 규모를 축소시켜야하는가이다. 첫 번째는 조세부담의 공평성 확보다. 두 번째는 세원 확대를 통한 세수 증대다. 그렇다면 세율 인하는 이러한 지하경제규모 축소의 목적 달성에 적절한 정책수단인가? 세율 인하가 첫 번째 목적의 달성을 위한 것이라면 큰 이의는 없다. 전반적 세율 인하는 기존 조세 납부자들의 부담을 줄여준다. 동시에 조세회피에 따른 이익이 그 비용보다 커 지하경제에 머물던 이들 중 일부도 세율 인하로 조세회피에 따른 이익이 줄어듦에 따라 양성화될 것이고 이는 조세부담의 공평성을 개선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율인하가 세수증대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세율인하는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통한 세원확대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는 세율 인하를 통해 달성되므로 최종적인 세수의 변화는 세원확대에 따른 증가분과 세율인하에 따른 감소분의 상대적 크기에 달려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조세 관련 자료를 이용한 엄밀한 실증분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겠으나 기존 세원이 세율 인하로 양성화될 세원에 비해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세수가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가 큰 원인이 높은 세율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 연구에서 자주 인용되는 슈나이더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2005년 기준 27.6%로 OECD 회원국중 멕시코와 터키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반면 세율은 OECD 통계 데이터베이스가 제공하는 조세부담율 기준으로 2006년 기준 26.8%로서 역시 멕시코와 터키 다음으로 낮다. 조세부담이 낮은 나라에서 지하경제 규모가 오히려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하경제가 큰 나라들을 살펴보면 준법지수(Rule of Law)가 낮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은행의 데이터베이스인 WDI에 따르면 멕시코와 터키의 준법지수는 OECD 국가중 최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하위권에 속한다. 이는 지하경제 규모 축소를 위해서는 추가 인하여지도 작은 세율 조정보다는 행정력의 강화를 통해 공평조세부담이 이루어지는 것이 더 수월한 정책대안임을 의미한다.

세상에 세금 내는 것 좋아하는 사람 없다. 세율이 낮아진다고 세금을 기꺼이 낼 가능성도 없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려고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세율 인하로 지하경제 규모도 줄이고 세수도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이 고소득자들의 세율인하를 위한 억지논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이유다. 래퍼곡선이 사실상 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논리라는 것이 입증된 지금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세율인하를 위한 논리로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태그:#지하경제, #세율인하, #준법지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경상대학 경제학부 부교수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