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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초, 갑자기 밀어닥친 구제역에 한국의 축산 농가들은 15만 마리의 소와 333만 마리의 돼지를 땅에 묻어야 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은 물론 우유 가격까지 민감하게 반응했다. 매몰된 가축들이 초래하는 환경 피해까지 합치면 구제역의 피해액은 3조 원을 훌쩍 넘는다.

전문가들은 2011년 하반기 겨울에도 구제역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인근 국가인 대만은 7월, 중국은 9월에 이미 구제역이 발생했으며 베트남 또한 간헐적으로 구제역 발생이 확인되고 있다. 좁은 축사에서 영양제가 배합된 사료들과 고단위 항생제를 맞으며 빠른 시간에 살을 불려 도축하는 공장식 축산이 초래하는 대규모 참사들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공장식 축산은 이미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그렇다면 항생제가 도처에 널려있는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한 가축의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인간인 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이미 20년 전에 이 질문에 대한 지혜로운 답을 내린 농부가 있다. 출판사 '낮은산'에서는 문명비판가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를 번역 출간했다. 이 책은 먹거리를 소재로 다양한 지점에서 공장식 축산과 공장식 농업 등 자연에 대한 착취를 묵인하는 사회가 가진 철학의 문제를 짚고 있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먹거리에 관심가져야"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
ⓒ 낮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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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델 베리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이면서 15만 평의 크기의 농장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문제에 관해 가장 오랫동안 천착했고, 또 많이 읽히는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그는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로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장소에서 생활하며 40권이 넘는 시, 소설, 에세이를 발표했다. <온 삶을 먹다>는 웬델 베리의 에세이와 소설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낸 책이다. 

책은 3부로 이뤄져 있는데, 1부는 베리가 생각하는 건실한 농업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성찰적 내용의 수필, 2부는 다른 건실한 농부들을 탐방하고 쓴 수필, 3부는 건실한 먹거리를 따뜻하게 나누는 소설 장면들과 먹는 즐거움을 논하는 수필로 구성되어 있다.

베리는 모든 주제에서 산업화와 과학의 거대한 위협을 비판하며 먹거리가 어떻게 망가져 가고 있는지 그와 함께 우리와 우리가 사는 이세상도 얼마나 망가져 가고 있는지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리 조리된 식품이나 패스트푸드 앞에 앉은 미국의 수동적인 소비자는 싱싱하지 못하고 무언지 모를 내용물로 범벅이 된 접시를 마주한다. 더구나 이 내용물들은 가공되고, 착색되고, 빵가루나 소스나 고기즙을 뒤집어쓰고 살균처리가 된 것이며 살아있던 생명체의 어느 한 부분과도 닮은 데가 없어 보인다. 자연과 농업의 산물이던 것이 어느 모로 보나 산업의 생산품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하여 먹는 자도 먹히는 대상도 생물학적 진실로부터 외떨어져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인간의 경험에서 전례가 없던 외로움이다."

농부인 베리가 농업의 산업화를 경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농사는 본래 순환적이며 스스로 재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산업이 되면 여느 산업 활동과 다를 바 없이 파괴적이고 자기소모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대단위 농업이 활성화 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 농업으로 인한 자연훼손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미국 아이오와 주의 농토는 2050년이면 고갈될 것이라고 한다. 현대 과학기술과 농업의 효율성을 신봉하는 독자들에게 베리는 '흙이 없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농사가 산업이 되면 파괴적이고 자기소모적인 것이 된다"

그는 "지금 우리는 전례없이 많은 도시 인구를 갖게 되었는데 그들에게는 먹거리를 기를 땅도, 먹거리를 길러 먹을 지식도 없다"고 지적한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사람들을 밭에서 자연스럽게 떠나게 만들었지만 우리는 먹거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만큼 농사를 직접 짓지 않더라도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베리는 이런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삶 전반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으로 가져가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인다.

"먹거리의 정치학은 우리의 자유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과 목소리가 다른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경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은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먹거리와 그 원천이 다른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경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간과해 왔다. 수동적인 먹거리 소비자로서의 조건은 민주적인 조건이 아니다. 책임 있게 먹어야 하는 이유 하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책 속에서 웬델 베리는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통해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삶'이란 넘치지 않는 기술을 이용해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하고, 이웃과 땅을 보살피고 살리며, 건실한 먹을거리를 즐기는 삶이다. 그리고 그가 꿈꾸는 사회의 반대편에는 산업화된 농업과 삶 자체의 산업화, 무지, 인간의 오만, 탐욕, 그리고 자연에 대한 폭력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계가 있다.

산업화의 세례를 받은 현대 문명에 대해 다분히 비판적인 저자의 태도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친자연, 친환경적인 대안이 요구되는 시대에 사는 이들이 읽고 생각해 볼 만한 꺼리는 충분하다.


온 삶을 먹다 - 대지의 청지기 웬델 베리의 먹거리, 농사, 땅에 대한 성찰

웬델 베리 지음, 이한중 옮김, 낮은산(2011)


태그:#온삶을먹다, #낮은산, #웬델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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