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말이야,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봐. 나는 좀, 그러니까 뭐라고 말해야 되나. 그냥 좀 무의미한 일을 하고 싶어."

소설 <퀴즈쇼>의 주인공, 천애고아에 백수인 스물일곱 민수가 '정신차리고 열심히 살자'고 말하는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선언하자, 그 여자친구는 민수를 떠나버린다. 세상엔 '쓸데없는 것'과 '유용한 것'을 가르는 나름의 기준이 존재하기에, 대놓고 무의미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민수 같은 이들에게는 이별 통보와 같은 합당한 처벌(?)이 부과되기 마련이다.

9월 25일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연하고 있는 요앤조이 팀원들.
 9월 25일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연하고 있는 요앤조이 팀원들.
ⓒ 김정현

관련사진보기



여기! 대학생이 되도록 '요요'를 갖고 노는 이들이 있다. 스물넷에서 영화 속 민수와 같은 스물일곱까지, 애들 장난감을 갖고 놀기엔 나이가 과히 지긋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시작한 장난감을 10년이 넘도록 손에서 놓지 못하다가, '요앤조이(Yo&Joy)'라는 이름의 팀까지 만들어 공연을 하고 있다. 세간의 기준으로는 쓸데없는 일을 참 오래도 해 온 셈인데, 철이 덜 들어도 단단히 덜 든 모양이다.

이들은 지난 3월 평화재단과 EBS가 함께 주최한 '지식채널e 시청자공모전'에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요즘을 묻는 당신에게'의 주인공들이기도 하다(EBS 지식채널e '요즘을 묻는 당신에게' 동영상 링크). 도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지금껏 요요를 만지게 하는 것일까? 지난 9월 말 상수동 부근의 한 식당에서 공연을 마친 요앤조이 팀원들을 만났다.

취미로 시작해서 최고의 요요팀을 만들기까지

이동훈 : EBS에서 '요즘을 묻는 당신에게' 방송 시작될 무렵에 조마조마했어요. 부모님이 학원을 하시는데, 애들이 EBS를 볼 거 아녜요. 그거 보고 부모님한테 "선생님 아들 티브이에 나왔어요" 하면 어떡해(웃음). 에딘버러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 직후였는데 비행기 티켓을 환불하라고 당장 전화왔겠지. 다행히 그러진 않았는데, 우리 부모님은 내가 에딘버러 가서 공연한 줄 몰라요. 그냥 여행간 줄 알아. 걱정하실까 봐 말하기가 싫더라구요.

방송 이후 별다른 일은 없었냐는 물음에 이동훈(27, 숭실대)씨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번 공연만 하고 그만 둘 거'라고, 2007년부터 매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가 신청을 위해 사무국을 들를 때마다 직원들에게 해왔던 말이지만 그렇게 4년을 끌어 왔다.

이동훈 : 자꾸 그러니까 나중엔 스탭들이 제 말을 안 믿어요. 작년에 갔을 때에는 "이번에도 그만 둘 거라고 얘기하실 거죠?" 하길래 "아뇨, 에딘버러 갈 건데요" 그랬지.(웃음)

지난 8월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거리공연에 나선 요앤조이 팀원들. 왼쪽부터 이대열, 곽동건, 문현웅, 이동훈씨.
 지난 8월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거리공연에 나선 요앤조이 팀원들. 왼쪽부터 이대열, 곽동건, 문현웅, 이동훈씨.
ⓒ 이동훈

관련사진보기



이날 인터뷰에 함께한 팀원은 이동훈씨 외에 곽동건(25, 중앙대), 문현웅(26, 휴학생), 이대열(27, 고려대)씨 등 네 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대학생 신분으로 대부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 나이 때까지 요요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요요를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됐다.

이대열 : 처음엔 요요 기술을 익히고 남들한테 보여주는 게 재밌었어요. 그 다음엔 대회에 나가는 거. 그러다 중학교 때부터 동대문 쇼핑몰 같은 데에서 공연을 시작했죠. 대회 1등도 해볼 만큼 해보고, 이제는 요요를 잘 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게 됐어요.

다들 고개를 주억거린다. 1990년대 유행이 불었던 요요를 한번쯤 만져보지 않은 20대 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요' 유행이 끝난 이후에도 어떤 이유에선지 이들은 그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요요 잘하는 애' 혹은 '요요 마니아'가 되고, 공연을 나가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팀을 만들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전례가 없는 팀 단위의 요요 거리공연을 시작했다. 어느덧 이들은 국내에서 최고의 요요팀으로 꼽히고 있다.

이대열 : 요요를 계속하다가 무대공연까지 왔는데, 이제는 그런 기획된 공연을 잘 하고 싶어진 거예요. 근데 할 줄 아는 게 요요밖에 없으니까 요요공연을 하고 있는 거죠.

이대훈 : 거리공연을 시작하면서 굉장히 발전을 많이 했어요.

세계최대의 거리 축제 에딘버러 프린지페스티벌을 가

요앤조이 팀원들이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참가 중에 찍은 사진
 요앤조이 팀원들이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참가 중에 찍은 사진
ⓒ 곽동건

관련사진보기



팀원들은 국내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여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거리공연예술제가 열리는,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The Edinburgh Festival Fringe)에 다녀왔다.

축제기간 거리공연자들은 매일 주최 측이 여는 아침 모임에 참가해, 추첨을 통해 정해진 장소와 시간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다. 시민들에게 관람료 성격의 팁을 받는 버스킹(busking, 거리공연)도 가능하다.

이동훈 : 에딘버러 간 첫날 공연에서 관객들 반응이 너무 시큰둥한 거예요. 박수도 하나도 안 나왔어요. 그날 밤 숙소에 가서 '완전 망했다, 한국 돌아가야 되는 거 아냐?' 이런 분위기였죠.

곽동건 : 근데 공연 촬영한 것 모니터링을 하니까 뒤에 있던 관객들이 보이잖아요. 생각 외로 우리 공연을 보면서 웃고 좋아하는 거예요. '관객들한테 박수 칠 타이밍을 주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해서 다음 날부터 구성을 많이 바꿨죠.

에딘버러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곽동건 씨. "처음 닷새 간은 공연 구성을 수정하는 데에 몰두했다"고 한다.
 에딘버러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곽동건 씨. "처음 닷새 간은 공연 구성을 수정하는 데에 몰두했다"고 한다.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특별히 호응을 유도하지 않아도 알아서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질러주는 한국과는 달리, 에딘버러에서 만난 공연 관객들은 자율적인 호응에 인색하단다. 물론 그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공연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지만···.

이들은 페스티벌에 참가한 후 처음 닷새 동안 공연 구성을 수정하는 데 몰두했다. 한국과 다른 에딘버러만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서다. 그때 새로 짠 공연 구성이 한국에서도 꽤 유효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한국과 다른 에딘버러만의 분위기는 어떤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대훈 : 버스킹할 때 좋아요. 잘한만큼 관객들이 돈을 주고, 그런 것에 인색하지 않죠. 한국에서는 모금하면 민원이 들어올 때가 있어요. 사람들 인식이 '그냥 거리를 가다가 공연을 본 건데 왜 돈을 내야 하느냐' 이런 거죠. 법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고.

이대열 : 에딘버러에서 느낀 건 관객이나 공연팀이나 그런 것에 거리낌이 없다는 거예요. "극장에 가서 재미있을지 재미없을지도 모르는 영화를 10유로씩이나 먼저 내고 보는데, 우리 공연이 재밌어서 끝까지 남은 여러분들이 돈을 내는 것이 맞지 않느냐?" 이런 얘기 하면 사람들 호응이 아주 좋죠.

이동훈 : 가끔 한국에서 모금이 가능할 때엔 구걸하듯 얘기해요. 저기서 파는 옥수수가 2천 원인데, 그래도 우리가 옥수수보다는 낫다는 걸 입증시켜달라고. (웃음)

아직은 망설여지는 길... 그냥 남겨둘까, 치고 나갈까

이동훈 : 이 일이 아무리 좋아도 안정적인 삶에 대한 욕심이 있죠. 어떻게 보면 그만큼 안 미쳐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곽동건 : 거리 공연 차원에서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지는 것 이상으론 어려워요. 에딘버러에서 실내공연을 봤는데 거리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가능하니까, 관객들 집중도도 다르고 공연의 질도 급이 다르고.

이대열 : 요요공연자 열 명, 스무 명이 함께 음악, 미디어아트, 조명이 갖추어진 무대에서 공연을 해 보고 싶어요. 세계무대로 갈 수 있다면 더 좋겠죠.

이들은 단순한 길거리 공연을 새로운 예술양식으로 승화시키려는 구상, 그리고 그러한 판을 짜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꿈으로 남겨 두느냐 혹은 치고 나갈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은 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요요와 함께한 십여년의 시간을 들려주는 이대열(27)씨. 이 씨는 "단순한 거리공연을 넘어선 종합무대예술로서의 요요를 꿈꾼다"고 말했다.
 요요와 함께한 십여년의 시간을 들려주는 이대열(27)씨. 이 씨는 "단순한 거리공연을 넘어선 종합무대예술로서의 요요를 꿈꾼다"고 말했다.
ⓒ 박솔희

관련사진보기


이대열 : 불안하죠. 내가 진짜 꾸는 꿈을 향해 달려가자니 무섭고, 옆에서 가는 애들과 보조를 맞추자니 재미가 없고. 공연기획을 해볼까 싶기도 한데 아무리 공연기획자로 성공한다고 해도 블루멘그룹(미국의 유명한 행위예술그룹)처럼 되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잘 안 되면 또 난감해지죠. 취업시즌 놓치고 남들한테 했던 말들 다 물러야 되고, 부모님의 기대는 기대대로 있는 거잖아요.

이동훈 :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가겠다고 결정하기 전에는 이번 여름에 마지막으로 공연을 한 번 하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취업을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을 했어요. 전공이 언론 쪽이라 고시반을 들어갔죠.

이대열 : 얘 고시반 들어갔을 때 제가 외국에 있었는데 국제전화로 "야, 때려치고 에딘버러가자" 그랬죠.

이동훈 : 그래서 잠시 접었죠. 근데 거기서 방송기자로 두 명이나 붙었어요.(폭소)

슬픈 이야기일 법도 한데, 다들 거리낌 없이 웃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그들은 아직까지 요요를 갖고 노는 게 후회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물었다.

"요앤조이에게 요요란?"

팀 요앤조이가 지난 5월 국내에서 가진 거리공연
 팀 요앤조이가 지난 5월 국내에서 가진 거리공연
ⓒ 이동훈

관련사진보기


문현웅 : 자랑할 수 있는 장난감? 걔 누구지 누구지 할 때, '아 그 요요하는 애'. 그럼 한 방에 다 알지.

곽동건 : 내 일촌명? 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내 일촌명이 다 요요야.(폭소)

또 한번 터진 웃음 끝에 동훈씨는 "다들 너무 말을 잘 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대열씨에게 바통을 넘겼다. 잠시 고민하던 대열씨가 인터뷰를 마무리해 주었다.

이대열 : 내 인생에서 내 돈 주고 산 가장 비싼 장난감이기도 하지만, (웃음) 지금 내가 제일 잘 하는 거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에딘버러에서 공연한 것이 제일 뿌듯하다"고 말하는 대열씨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다른 팀원들도 같이 웃었다. 요앤조이 팀원들이 요요를 하며 웃는 모습을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김정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요요, #요앤조이, #20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