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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민족을 위해 민주화운동을 하다 병을 얻어 젊디 젊은 33세의 나이에 '좋은 세상이 오는 것 같은데 나는 못 보고 가겠구나'는 말을 남기고 이 땅을 하직할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이의 한(恨)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아파해 주길 바랍니다."

이정숙 고신의대 교수가 16일 오후 부산 민주공원에서 열린 '제32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 흐느끼며 한 말이다. 이 교수는 '항쟁 참가 유족발언'을 통해 오빠(고 이용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민주공원에서 "제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은 이정숙 고신의대 교수가 '항쟁 참가 유족 발언'에서 오빠인 고 이용수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민주공원에서 "제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은 이정숙 고신의대 교수가 '항쟁 참가 유족 발언'에서 오빠인 고 이용수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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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기념사업회에서 연락이 왔을 때, 많이 망설였다"는 말로 시작한 이 교수는 "비록 우리 가족에게는 현재진행형인 아픔이고 상처라해도, 많은 분들에게는 잊힐 수 있는 30여 년이 지난 일인데 새삼스럽기도 하고, 개인 가족사를 여러분 앞에 나서서 이야기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오빠에 대해 "군입대 후 훈련소에서 선발되어 공수부대에서 복무하였고, 거기에서도 대표를 지냈을 정도로 건강한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다"고 소개했다.

고 이용수씨는 제대 뒤 복학해 1979년 동아대 총학생회장(당시 학도호국단 사단장)이 되었다. 고인은 그해 10월 17일 있었던 부마항쟁 당시 교내 시위와 부산 남포동, 부영극장 앞 시위를 주도했다. 그리고 그는 이틀 뒤인 19일 주동자 중 제일 먼저 검거돼 부산 영도경찰서에 잡혀갔던 것.

여동생은 "거기서 매일 피똥을 싸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같이 고문당했던 친구나 후배들에 의하면, 초주검 상태로 유치장으로 끌려 돌아왔고 말 대답은 커녕 친한 친구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며 과거를 들추어냈다.

"너무 심한 고문을 견디다 못해 4층 조사실에서 창문을 깨고 뛰어 내려서 독재정권의 만행을 온천하에 알려야겠다고 자살 시도까지 하였는데, 놀란 경찰이 저지하였다. 이때 생긴 이마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군사재판을 받을 당시 머리 가르마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꾸고 있었다."

고통은 계속 되었다. 이 교수는 "오빠는 석방된 뒤 만신창이가 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다시 1980년 5월 17일 부마항쟁 주동인물 예비검속령에 의해 보안수사대(삼일공사)에 끌려가 전구를 눈 앞에 놓고 잠을 못 자게 하면서 20일 정도 엄청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들려주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민주공원에서 "제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은 송기인 신부, 정성헌 이사장, 박정기씨 등이 묵념하는 모습.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민주공원에서 "제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은 송기인 신부, 정성헌 이사장, 박정기씨 등이 묵념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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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민주공원에서 "제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은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민주공원에서 "제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은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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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의 후유증으로 심신은 많은 고통을 당하였고, 이후 잠을 자다가 희미한 불빛만 보여도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날 정도였다"면서 "후에 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해 혼수상태를 넘나들 때에도 침대 옆의 보호대는 올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왜냐하면 감옥의 창살 같아서 너무 지긋지긋하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오빠는 1987년 9월 14일 사망했다. 여동생은 "6·29선언이 있었고, 정국에 상당한 변화가 올 것으로 온국민이 기대하고 들 떠 있을 때 병상에서 '좋은 세상이 오는 것 같은데 나는 못 보고 가겠구나'하던 오빠의 탄식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며 흐느꼈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고 이용수씨를 부마항쟁 당시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정숙 교수는 "보상심의위원회는 당시의 법으로는 오빠 같은 사망자에 대해 보상해 줄 길이 없다고 했다. 전화로 다시 확인했을 때 담당자는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부마항쟁이 민주화의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당시 가게의 셔터를 내리면서 시위 학생들을 감춰주셨던 국제시장, 남포동 상가의 많은 어르신들, 시위학생들에게 빵과 김밥, 음료수를 앞 다투어 건네셨던 어머님 아버님들,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혹은 육교 위에서 시위학생들에게 응원을 보내셨던 많은 시민들의 동참이 있었기 때문임을 저는 똑똑히 기억한다."

이 교수는 "정부는 우리 가족을 두 번 죽인 셈이다"며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엄연히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인정을 받아도 현행법으로는 보상 받지 못하는 사안도 많다고 들었다.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민주공원에서 "제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은 국민의례 모습.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민주공원에서 "제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은 국민의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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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민주공원에서 "제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가졌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민주공원에서 "제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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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상 시상... '늘펼쳐보임방' 문 열어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이날 민주공원에서 "민주, 불꽃, 그리고 바람이 되어"라는 제목으로 기념식·문화제를 열었다. 김재규 이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역사적 진실 규명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부마민주항쟁이 올곧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에는 배다지 민주광장 대표, 이규정 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송기인 신부, 고 박종철 열사 부친 박정기씨, 이정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부산본부 대표, 최현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울산본부 대표, 이내길 산청 간디학교 교장, 이광영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지역사무소장, 유영란 부산여성단체연합 대표 등이 참석했다.

민주공원은 16일 오후 송기인 신부, 박재동 화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상설전시실인 '민주공원 늘펼쳐보임방' 개관식을 가졌다.
 민주공원은 16일 오후 송기인 신부, 박재동 화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상설전시실인 '민주공원 늘펼쳐보임방' 개관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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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인 신부와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이 16일 오후 개관한 부산 민주공원의 기획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송기인 신부와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이 16일 오후 개관한 부산 민주공원의 기획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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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범도 부산시 정무특보가 허남식 부산시장의 축사를 대신 읽었으며,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정성기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마산) 회장이 축사·연대사를 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제20회 민주시민상'(부문별 각 200만원) 시상식도 열렸다. 민주주의부문은 청소년 환경·통일운동 등을 벌인 청소년희망공동체 '숲', 인권부문은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진중공업 가족 대책위', 평화통일부문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간디학교 최보경 교사, 환경자치부문은 4대강정비사업 반대 활동을 벌인 최수영(부산환경연합)·이환문(진주환경연합) 사무(처)국장이 받았다.

한편 이날 오후 민주공원은 부마민주항쟁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늘펼쳐보임방' 개관식을 가졌다. 전시장은 '민주의 길머리' '민주항쟁의 현장' '악압과 통제의 감옥' '질곡을 넘어 승리로' '희망의 너른 품' '비췸마당' '세상 속으로' 등의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송기인 신부와 박영관 민주공원 관장이 16일 오후 문을 연 '민주공원 늘펼쳐보임방'의 전시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송기인 신부와 박영관 민주공원 관장이 16일 오후 문을 연 '민주공원 늘펼쳐보임방'의 전시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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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종철 열사 부친 박정기(왼쪽)씨가 16일 오후 민주공원 '늘펼쳐보임방' 개관식에 참석한 마산 부마민족항쟁기념사업회 정성기 회장(왼쪽 세번째) 등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고 박종철 열사 부친 박정기(왼쪽)씨가 16일 오후 민주공원 '늘펼쳐보임방' 개관식에 참석한 마산 부마민족항쟁기념사업회 정성기 회장(왼쪽 세번째) 등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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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부마민주항쟁, #민주공원, #민주시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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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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