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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여성민우회는 식당여성노동자에 대한 호칭 공모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 한국여성민우회는 식당여성노동자를 직접 한 분 한 분 만나 실태조사를 하였고 그 실태조사결과를 9월 22일에 발표했습니다. 설문 문항 가운데 호칭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손님에게서 주로 어떻게 불리나요?'라는 질문에 가장 많이 답변한 내용은 '이모, 엄마, 고모' 같은 가족관계 호칭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아줌마', '여기요'라는 답변이 그 뒤를 이은 답변이었습니다.

호칭 공모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응모해 주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좋은 의견도 많이 있지만 가끔은 '엄마'라는 뜻을 담아 지은 호칭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호칭을 공모하는 취지를 이 자리를 빌어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마트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분들을 '엄마'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가정관리사나 요양보호사나 청소노동자에게 '엄마, 이모'하고 일상적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식당노동자를 유독 그렇게 부르는 걸까요?

그것은 밥을 주는 일이 집안에서 엄마가 하던 일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엄마가 따뜻하게 해주던 밥을 식당에서 대신 먹는다는 연상에서 그리 부르게 됩니다. 이 말을 친근하게 느끼고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식당노동자도 있습니다. 가족같이 불린다는 것이 기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의 위험

하지만 식당일은 단순히 집에서 세 끼 밥 하는 일과는 다릅니다. 설문조사 결과, 근무시간에 대해 열두 시간 일한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습니다. 대량의 식재료를 다듬고 무거운 그릇을 나르며 뜨거운 불 앞에서 조리하고 쉴새없이 설거지하고 고기를 굽고 자르고, 주방과 홀에서 쉬지 않고 밤늦도록 일합니다. 허리, 어깨, 팔다리 같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칼이나 절단기에 베이고 화상을 입어도 대부분은 참거나 자기 돈으로 치료하게 됩니다. 일하다가 다친 것이지만 산재승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적용되지 못합니다.

다른 노동자에게는 적어도 상식적으로 통하는 주 40시간 근무나, 주말을 쉰다거나 하는 문제가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는 요원한 이야기가 됩니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집에 돌아가면 돌볼 가족이 있고 밀린 가사일에 잠조차 푹 잘 수 없는 형편인데 말이죠. 그렇게 내내 일해서 받는 임금을 조사해 보니 시간당 임금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런 일이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은 식당에서 하는 여성의 일이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밥하고 나르고 씻고 치우는 것은 여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기고 집안일의 연장으로 치부하지요. 집안일이 여성의 몫으로 전담 지워진 성별 분업 사회에서 육아 등의 이유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밖에 나와 하는 일이 식당일입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일입니다. 노동이라는 이름을 듣지 못한 일입니다. 식당에서 하는 일이 노동이라는 것은 집에서 여성이 하는 일이 노동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만큼이나 아직 사회에서는 낯선 이야기입니다.

식당노동자는 여성노동자들 가운데서도 보이지 않고 당연히 그 자리에 묵묵히 일하는 존재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열두 시간 내내 식사시간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채 일하고 일주일에 한 번도 채 쉬지 못하는 것이 그렇듯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식당노동자를 '엄마, 사모님' 부르는 그 호칭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여자라면, 엄마라면 하는 일'이라는 전제가 바로 식당노동자의 일을 장시간 저임금의 낮은 가치의 일로 묶는 논리입니다.

새로운 이름을 찾는 이유

'엄마, 이모, 여기요'가 아닌 다른 이름이 필요합니다. 단지 듣기 좋은 말로, 식당노동자의 기분을 좋게 하거나 우리 입에 붙는 소리를 찾자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 집단에 대한 낮은 가치부여나 편견이 아닌,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인간으로서 쉬고 가정을 유지하며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노동자로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요. 그랬을 때 식당노동자의 호칭을 찾는 것은, 그림자처럼 여겨졌던 이들의 일을 노동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일을 하는 이들을 사회적인 '노동자'로서 인정하는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겹다 여겨지는 가족 호칭이나 '여사님, 사모님' 같이 여성에게만 붙이는 존칭은 이들의 노동을 더욱 가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름은 그냥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부르는 이름은 그와 나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에 대한 나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여성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일이 아니라, 삶과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인식, 우리와 마찬가지로 임금을 받기 위해 일하는 그들을 노동자로 여기는 것이 식당노동자의 노동권을 자리잡게 하는 데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름을 찾습니다
▲ 식당여성노동자 호칭 공모 이름을 찾습니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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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낭미님은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식당노동자, #호칭공모,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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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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