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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추진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강정마을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폭염의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왔고, 어떤 이는 프랑스에서 왔고, 또 어떤 이는 날 때부터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평화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강정마을 찾은 이들을 '자발적 평화유배자'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자발적 평화유배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열여섯 번째로 여균동 감독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여균동 감독이 지난 9월 3일 열린 강정평화 콘서트 사회를 보며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치고 있다. 평화콘서트가 열리기 하루 전인 9월 2일 강정마을엔 공권력이 투입돼 모두 38명이 연행됐었다.
 여균동 감독이 지난 9월 3일 열린 강정평화 콘서트 사회를 보며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치고 있다. 평화콘서트가 열리기 하루 전인 9월 2일 강정마을엔 공권력이 투입돼 모두 38명이 연행됐었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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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균동 감독이 즐겨 말하듯 모든 로드 무비(road movie)의 결론은 세 가지다. 떠나거나 남거나 죽거나! 그래서 주인공도 최소한 세 명이다. 떠나는 사람, 주저앉는 사람, 처참하게 죽는 사람.

여 감독은 요즘 '트위터 단편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실험하고 있다. 5분이 채 넘지 않는 런닝 타임(running time), 단촐한 배역. 하지만 여 감독 특유의 미학적 풍자와 상징은 여전하다.

이를테면 그의 트위터 영화 2편 격인 <강정 로맨스>의 주인공 이름은 구보씨. 구보씨가 누구던가. 소설가 박태원이 1935년에 발표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등장한 이래 여러 문화예술작품에 오마주되며 하릴없이 소일하는 무목적성 인간의 상징으로 등극한 존재 아니던가. 물론 구보씨의 무목적성은 다분히 불의한 세상에 저 나름의 방식대로 대드는 불온한 게으름이었고!

여 감독은 왜 하필이면 이 게으르고 삶의 목표가 모호한 존재를 강정마을이라고 하는 가장 첨예한 지역으로 데려온 것일까? 그는 또 어떤 로드 무비를 세상에 상영하고 싶은 것일까?

# 1. 제주공항에서 강정마을로 가는 낡은 승용차 안

굳이 그가 나설 일도 아니었다. 동네엔 청년도 많았고, 살가운 미소로 환영인사 건넬 이 역시 정해져 있었다. 첫 평화비행기가 제주공항에 도착하던 9월 3일, 여 감독은 혼자서 괜히 바빴다.

"그래도 얼굴 알 만한 사람이 환영 인사를 해주면 더 즐겁지 않을까?"
"그냥 맨 손으로 '환영합니다' 하는 것 보단 뭐라도 하나 들고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강정마을 초입에 멀쩡하게 걸려있던 평화콘서트 플래카드는 순식간에 평화비행기 환영 플래카드로 둔갑했다. 제주공항 주차장에서 그는 그 플래카드를 들고 평화비행기를 타고 온 이들에게 일일이 인사했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 마치 육지에서 여름성경학교 하러 온 대학생을 맞이하는 섬소년 같았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돌아가는 길. 평화비행기를 타고 온 이들을 안내할 이가 부족하다며 차 주인은 제 차를 그에게 맡겼다. 찬바람을 좀 쐴라치면 늙은 LPG차는 컥컥거리기 일쑤였다. 차라리 차창을 열고 달리는 게 나았다. 그는 여름 무더위에 뻑뻑거리는 기어에 땀을 뻘뻘 흘렸다.

얼마쯤 달렸을까. 혼잣말하듯 그가 입을 열었다.

"이 고갯길을 넘는데 그리 낯설지 않은 길이란 느낌이 들어. 누구에게나 마음에 남는 첫 풍경이 있나 봐. 사람들 마음마다 자기 마을이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난 강정마을이 그래. 마을회관 뒷길을 걷거나 마을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이곳이 내가 살았던 마을인데 한동안 잃어버리고 살았던 마을 같아.

어느 과학자가 조사해서 발표한 것이라는데 사람은 열여섯 살이나 열일곱 살이 되면 성장이 멈춘대. 키가 크는 육체적 성장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성장 역시 멈춘다는 거야. 그래서 그 이후 깨달은 지식이랄지 경험 같은 것은 새로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대.

잃어버리고 살았던 원형질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래. 그 어느 날엔가 내 안에 축적되어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지식, 깨달음, 느낌, 감정 등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지. 한참 까먹고 살다가 내가 자랐던 마을공동체를 다시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시인 고은은 "저무는 들길로 늙은 것과 어린 것이 돌아오듯이 돌아오라"고 황홀하게 노래했던가. 여 감독은 그렇게 고향마을 찾아가듯 강정마을에 흘러든 것이었다.

 여균동 감독이 강정마을을 봉쇄하고 있는 '육지경찰'의 이동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그는 트위터 영화를 만들어 강정마을 상황을 전하고 있다.
 여균동 감독이 강정마을을 봉쇄하고 있는 '육지경찰'의 이동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그는 트위터 영화를 만들어 강정마을 상황을 전하고 있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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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정에서 혹은 강정 속으로

'친 노무현' 인사들은 혹은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이들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를 말하는 것을 대개 꺼려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말을 바꿔가며 참여정부가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건설예정지로 선정했던 것을 강변하기까지 한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입지선정을 한 정권이 바로 바로 '노무현 정권'이었다는 불편한 사실을 들춰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 감독은 잘 알려진 이른바 '친노' 인사다. 그런데 왜 그는 이 껄끄러운 상황에 성큼 들어온 것일까.  

"미안함이 제일 먼저였을 거야. 사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는 접근하기 까다로운 게 사실이야. 입지 결정단계에서 실제 의도와는 달리 노무현 정권이 결정과정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개인적 생각으론 (입지 결정단계에서) 국방부의 농간에 넘어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더욱 심각한 것은 이명박 정권이 왜곡되고 변형된 형태로 사업을 추진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고….  환경영향평가조차 제대로 안하고 막 밀어붙이려는 이유가 뭔지 가서 직접 봐야겠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을 여러 사람과 공유해야 겠다 생각했어. 참여정부가 결정한 것은 결정한 것이고 지금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고. 절차에 문제가 있었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바로 잡으려고 함께 노력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막연한 미안함에 한 번 두 번 왔다 갔다 한 것이 중독이 됐다. 이제 강정마을에서 그를 '외지인' 취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마을회관 강당에서 쌀 포대를 베개 삼아 곤히 자고, 공동식당에서 식판에 밥을 함께 나눠먹는 사람.

주민들과 자원활동가들은 여 감독을 보면 부러 "하는 일없이 밥만 축내는 사람"이라 즐거운 시비를 건다.

"사실 내가 마을에서 밥 먹고 특별히 하는 일은 없잖아? 욕먹어도 싸지. 근데 누가 그랬어? 이놈들을 그냥.... 하하하하. 이 눈물겨운 공동체를 봐. 구럼비 바위와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아무 대가 없이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어제(9월 2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잡혀갔어? 서른 명이 넘게 연행되니까 마을이 초상집 같았잖아. 근데 오늘 아침에 저 사람들 표정 좀 봐.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즐겁기까지 한 얼굴이잖아. 이 눈물겨운 공동체를 보면서 마음이 확 풀려버려. 단순하게 얘기하면 구체적으로 삶의 한 부분을 바꿔버려.

개인적으론 마을이랄지 공동체, 평화라는 이런 개념들을 20대 이후엔 잃어버리고 살았어. 근데 이게 나의 신경을 툭 치고 들어와. '국민의 명령'이나 '혁신과 통합' 일에 관여하면서 도 마음은 자꾸 강정에 가 있어. 사회의 틀을 바꾸는 새로운 민주진보세력의 판을 짜는 일은 명분도 맞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도 있어. 이런 명분과 확신이 내 개인의 욕망이라면 그  끄트머리에 있는 강정과 어떻게 연결시켜 낼까가 지금 나의 고민이야."

그래서 그는 부산 영도 가는 희망버스를 타고, 제주도 강정마을 가는 평화비행기를 타는 이들에 대한 이해를 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표현을 직접 빌리자면 '환호작약(歡呼雀躍)하는 자발적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와 행복'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도에, 강정에 자발적으로 가는 사람들을 '운동'이라는 협소한 용어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봐. 그들에겐 거창한 이유가 없어. 매번 흔들리면서 있어야할 자리에 있는 것,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일시켜내는 박테리아 같고 버섯 같은 느슨하지만 강력한 연대. 이들의 상상력을 이해해야 해." 

 지난 9월 3일 열린 1회 강정평화 콘서트 사회를 보고 있는 여균동 감독.
 지난 9월 3일 열린 1회 강정평화 콘서트 사회를 보고 있는 여균동 감독.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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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화 같은 너무나 영화 같은 현실

영화는 감상하면 되지만 현실은 견뎌내야 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두 해도 아니고 4년이 넘었다. 끝이 보일 것 같다가 다시 서면 처음이다. 태풍보다 큰 희망이 몰아치다 태풍보다 큰 절망이 된다. 지겹고 잔인한 반복의 세월. 대체 이 지겹고 잔인한 영화 같은 현실은 언제 끝나려는 것일까.

"영화로 치면 기승전결에서 전개부로 넘어 왔어. 저쪽도 쓸 카드는 다 썼어. 공권력 투입하고, 나올 수 있는 갈등구조는 다 나왔어. 이쪽도 할 얘기는 다했고…. 이걸 기초로 해서 마침내 대반전이 있지 않을까. 대반전의 시기가 곧 오는 거야. 

이미 잔인한 침략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해결은 어렵겠지. 그 상처를 쓰다듬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까? 거대한 평화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해군기지 안 만들어지겠지만 공동체가 깨져나간 아픔과 이런 식으로 국책사업을 국가권력이 횡행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아픈 화두를 던져놓은 채 말이야."

그는 "국가안보라는 막무가내 앞에서 몸부림쳤던 주민들의 모습을 '싸움'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를 '질긴 견딤'이라고 했다. "싸움이라고 생각했으면 마을사람들 모두 복창 터지거나 홧병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여 감독은 '질긴 견딤'을 가능케 하는 어떤 힘을 강정에서 찾아내려고 한다.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내는 질김, 그리고 그 질김들의 수소 같은 느슨한 연대. 강정에서 트위터 영화를 작업하는 까닭은 질긴 견딤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강정의 절박함을 많은 이들과 효과적으로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트위터 영화를 만드는 것은 노동자들과 함께 급박한 선전 포스터 만드는 것과 같아. 1986년 1987년에 사진 슬라이드 쇼 만들고 영상물 제작하면서 참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체질에 맞았나봐, 그때도 굉장히 재미있게 일했거든. 나에게 부박(浮薄)한 아마추어리즘이 있는 것 같아. 개폼잡지 않고 비록 소모품처럼 느껴질지라도 환기시키고 공유하는 문화예술의 중요한 기능을 하려고 하는. 긴 영화 만들고 싶기도 한데 이 일도 재밌어.

그리고 얼굴이 좀 알려져 있으니까 '함께 합시다' 하면 '해요' 하고. 스마트 폰으로 영화를 만들다보니까 그야말로 가벼운 전단지 같고, 단발 같은 비명이 나와. 근데 나 이러다가 진짜루 '가끔 감독'이 되겠어, 하하하."

영화도 끝이 있듯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끝이 있음을 알기에 '질긴 견딤'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안타까운 건 끝은 하나인데 가진 입장에 따라 꿈꾸는 끝은 다르다는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강정 해군기지 문제'의 엔딩(ending 영화의 결말)을 물었다. 

"어떤 식으로든 결말은 나겠지만 좋은 결말이 났으면 좋겠어. 이 일을 '로드 무비'로 비유하자면 해군은 악당으로 잠깐 출연한 별 볼일 없는 조연일 뿐이야. 그들은 그들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포악한 발언하다가 맞아죽는 사소한 악역에 불과해. 진정한 주인공은 마을주민과 매번 흔들리면서도 그들과 함께 앉은 이들이야. 그들의 드라마를 주목하라, 그들이 길이다."

 강정마을 도로를 봉쇄한 경찰 바리케이드 앞에 서있는 여균동 감독과 문규현 신부.
 강정마을 도로를 봉쇄한 경찰 바리케이드 앞에 서있는 여균동 감독과 문규현 신부.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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