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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금요일 오후 5시 대학생들이 서울 명동 청어람에 모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길자연 목사) 해체를 촉구하는 기독 대학생 선언식' 때문. 행사장에는 '해체' '선언' 등 사뭇 비장한 단어들이 걸려 있었지만 "얼씨구~ 좋다! 잘한다" 같은 흥겨운 추임새도 흘러나왔다.

 

강단 앞에서 연한 노란색 저고리와 벚꽃색 한복 치마를 입은 학생이 흥부가 한 대목을 개사해 불렀다. 학생은 손을 들어 참석자를 가리키기도 하고, 가볍게 어깨를 덩실대며 판소리를 했다. 드디어 마지막, 창자는 돈을 주고 관직을 사려는 놀부를 향해 일갈을 날렸다.

 

"어찌 자리를 돈 주고 산단 말이냐. 허허~ 답답한 세상사~ 이곳 마저 놀부가 더럽혔구나. 야 이놈의 놀부야."

 

웃음, 박수, 환호 속에 판소리는 끝났다. 학생들은 지난 7월 26일 열린 '한기총 해체를 위한 목회자·평신도·전문인 100인 선언'에 자극받아 기독 학생 선언을 준비했다. 100명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701명이 선언에 동참했다.

 

"기독교 단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하라"

 

청년들은 엄중하고 간곡하게 한기총 해체를 촉구했다. 최한림 학생(경상대)은 "한기총이 하나님 진리를 수호하는 단체인지, 아니면 단순히 정치적 권력욕을 발현하는 단체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 단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고 했다.

 

그러나 선언을 모두가 반기지는 않았다. 학생들은 '어려서 잘 모른다'는 편견에 부딪혀야 했다.

 

지난 4월 28일 김믿음 학생(총신대)은 학교가 속해 있는 예장합동을 향해 한기총을 탈퇴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금권 선거 의혹을 받는 목사들 대부분이 예장합동이었기에 총신대 학생들의 선언은 환영받지 못했다. 김 군은 "'누군가로부터 사주를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애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절망했고 안타까웠습니다"고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호의적이지 않은 질문이 나왔다. 한 기자는 한기총 해체 운동은 금권 선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며, 초점을 잘못 맞춘 것 같다고 했다.

 

학생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자신의 주장을 정리해 말했다. 정다정 학생(서울여대)은 "우리의 주장이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희생하고 연대해서 외쳐야 구체적인 대안까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희의 한계이자 가능성입니다"라고 했다.

 

학생들을 위축시키는 표현은 학생들 입에서도, 질문자들 입에서도 나왔다. 자칫 학생들이 의기소침해 질 수 있었다.

 

김선욱 교수(숭실대 철학과)는 "여러분이 개신교인의 정치적 제자도를 실천한 것입니다. 특정 목적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첫 성명서를 쓸 때 떨렸습니다. 오늘 선언이 사회에서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첫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라고 격려했다.

 

남오성 국장(교회개혁실천연대)은 "'어리니까, 학생이니까'라는 말이 많이 나와 상당히 거슬렸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의로움을 따르려는 열정이 있습니다. 그런 열정이 없다면 청년이 아니라 시체입니다"고 했다.

 

선언식을 주도한 백소망 학생(한국예술종합대학교)은 "바빴고 힘들었지만 감격스럽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함께해 고마웠고, 희망을 느꼈습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어른들을 향해 자신의 주장을 외친 청년들은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기총 , #대학생, #해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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